2025/12/05

밤나무와 효도



어제 어머니가 둘째 이모하고 통화했다. 이모는 올해 추석에 이종사촌 동생이 안 온다고 하면서 “요새는 장모가 다 챙겨줘서 아들 있는 집은 편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어머니한테 “아들이든 딸이든 성인이면 자기 집을 어떻게 만들고 꾸릴지를 생각해야지 그게 무슨 어린애 같은 소리냐?”고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혼자 밥 해 먹고 사는 건 아니다.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산다.

벌초는 지난주에 끝냈다. 올해 봄에 정원용 예초기를 14만 원 주고 구입했다. 밥 먹고 나면 산책 삼아 예초기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풀을 깎고 잔디를 다듬었다. 예초기를 샀을 때 이미 산소 위쪽에는 억새가 꽤나 자라서 손을 대지 못했지만(가정용 예초기로는 억센 풀은 못 깎는다), 그래도 봉분 네 개는 여름 내내 풀에 덮이지 않고 드러나도록 했다. 가을까지 그렇게 유지하니 추석을 앞두고 벌초할 때는 예년보다 할 일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어제는 밤나무 밑에 떨어진 밤을 주웠다. 밤나무는 두 그루밖에 없지만, 밤을 줍는 김에 풀도 베고 주변을 돌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그동안 다른 곳에 신경 쓰느라 밤나무 쪽은 돌보지 않아서 손 볼 것이 많았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어제 밤을 주웠는데, 예년보다 꽤 많이 밤을 주웠다. 밤나무가 도랑 옆 비탈에 있어서 원래 밤의 반 이상은 물에 떠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 겨울 내가 도랑에 들어가 내경 500mm짜리 PE 이중관을 묻고 다리 비슷한 것을 만들어놓으니, 도랑 쪽으로 떨어지는 밤 중 상당 부분을 주울 수 있었다. 도랑 쪽이 햇볕이 드는 쪽이라 그 쪽에 매달린 밤이 반대쪽에 매달린 밤보다 훨씬 컸다. 같은 나무에서 열린 밤이 아닌 것처럼 크기가 달랐다. 어머니는 내가 따온 밤을 보고 참 크고 좋다고 좋아하시면서 그 중 3분의 1은 친척 할머니께 드렸다.

어머니는 밤을 보고 나서 예전 명절 때 이야기를 하셨다. 예전에는 명절 때 친가 쪽 친척들이 우리집에 많이 왔다. 관광버스 대절해서 온 적도 있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예전 일을 회상하며 친가 쪽 친척들이 하나도 도움 되는 것 없이 싸가지 없는 것들이라고 하셨다. 미친 것들이 추석 때 와서 밤나무에 달려들어서 밤을 따가는 통에 집 안에 밤나무가 있어도 밤을 먹을 수가 없고, 밭에 뭐가 남아 있으면 집 주인 허락도 없이 죄다 훑어가고, 어머니가 친정에서 가져온 마늘까지 할머니를 통해서 가져갔다고 한다. 외가 쪽 식구들은 어쩌다 우리집에 오면 일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친가 쪽 것들은 그 모양이었던 것이다.

원래는 친가 쪽 친척들하고 우리집하고 특별히 왕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증조할머니 두 분인데, 본처 증조할머니의 장남이 나의 할아버지다. 본처 증조할머니가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고, 첩 증조할머니가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낳았다. 두 증조할머니 사이가 좋지 않았고 원수가 졌으니 증조할아버지 사후에 양측 간 왕래가 없었던 모양인데, 나의 아버지가 워낙 주책맞은 분이라서 본인 결혼을 전후하여 친척들을 죄다 부르고 왕래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첩 증조할머니의 장남인 옥◯가 나의 할아버지의 땅을 집어먹었고 내놓지 않았다. 누구 소유로 할지 합의되지 않은 토지를 집어먹은 것이 아니라 명확히 명의가 구분된 땅인데 집어먹은 것이다. 기생 첩은 본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아있는 증조할머니를 사망신고하려고 하더니(당시 이장이 이를 막았다고 한다), 기생 첩의 아들놈은 장남의 땅을 집어먹은 것이다. 첩의 새끼가 장손의 땅을 넘보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인데, 아버지가 같은 할아버지의 자손이니 핏줄이니 혈통이니 하는 소리나 할 뿐 일을 전혀 수습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나서서 다 정리하고 땅을 받아냈다. 지난번 경찰조사 받으러 갔을 때 변호사님이 그 당시 일을 언급하면서 내가 그런 식으로 일을 해결할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며 재미있어 하셨다.

내가 그 일을 해결하면서 친가 쪽 친척들 중에서 우리집에 오면 될 집과 안 될 집을 나누었다. 옥◯네 새끼들한테는 우리집과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집임을 진작에 알려주었다. 상황 판단 못 하고 옥◯네한테 붙은 것들도 우리집에 못 온다.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데 협조한 집들은 내가 따뜻하게 환영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라서 그런지 우리집에 오지 않고 있다. 올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오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굳이 청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내가 주워 온 밤을 보며 예전 명절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게 친가 쪽 친척들이 다 정리되어 우리집과 발길을 끊으니, 명절인데도 세상 이렇게 편하다며 좋아하신다. 어머니가 심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면 효도할 맛이 안 났을 텐데,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보니 효도할 맛이 난다.

(202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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