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5

4월은 갈아엎는 달



김귀정 열사 추모제를 다녀왔다. 여느 때처럼 민중의례를 하고, 몇몇 분이 말씀하시고, 노래패에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김귀정 열사 어머니께서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사람들은 다들 “어머니 건강하세요”라고 외쳤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묘소에서 헌화하고 참배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행사를 마치려고 할 때, 맨 앞줄에 앉아있던 어떤 분이 사회자에게 끝나기 전에 한 마디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덕우 변호사였다.

앞에 나온 이덕우 변호사는 기동민 전 의원이 올해 환갑이라는 말을 꺼냈다. 추모제 시작할 때 사회자가 내빈을 소개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몇 학번 누구 오셨습니다”라고 하는데 유독 기동민 전 의원만은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기동민 전 의원 오셨습니다”라고 소개해서 참석자들의 웃음이 터졌었다. 사회자가 22학번이니 사회자 본인이 그런 문구를 짜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졸업생 중 누군가가 사회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을 것이다.

이덕우 변호사는 “기동민 전 의원은 올해 환갑이고 김귀정 열사가 살아있었다면 내년에 환갑을 맞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환갑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축시를 읊겠다고 했다. 신동엽의 <4월은 갈아엎는 달>이었다.

4월은 갈아엎는 달 /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4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심저(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연안(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

시 낭송이 끝나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움직이지도 않았고 소리 내지도 않았다. 이덕우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다가온 환갑. 축하합니다, 다가올 환갑.”

행사가 끝나자마자 한 구석에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났다. 이덕우 변호사와 기동민 전 의원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이덕우 변호사가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기동민이가 나보고 늙어서 총기가 떨어졌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총기를 보여줬지.”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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