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 싸가지 없다는 것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인데, 이준석은 자신이 마치 기득권에 저항해서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며, 이준석이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의 연장선인 것처럼 군다.
싸가지가 없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어떤 사람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예의나 관례를 어기고 다른 사람(대개는 연장자)에게 언행을 함부로 하여 사람들이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불쾌감을 느낄 때, 우리는 그러한 언행에 대해 “싸가지 없다”고 표현한다. 이준석 같은 사람들은 싸가지 없음의 두 가지 요소인 주관적인 측면(불쾌감)과 상대방의 지위(연장자 또는 기득권 여부)를 파고든다. 당신 기분이 나쁘지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히 지적할 수 없지 않느냐, 또는 설사 내가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인간관계에서의 사소한 잘못이지 정치인으로서의 결함은 아니지 않느냐는 식으로 넘어간 다음, 기득권에 저항했거나 옳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여 대중의 분노를 샀던 사람들의 사례를 제시하고, 그러한 사례의 연장선에 자신의 싸가지 없음이 있는 것처럼 얄팍하게 속임수를 쓴다.
그런데 누군가가 싸가지 없다고 할 때 반드시 그 사람의 상대방이 연장자(또는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시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공무원이 한 손으로 다 집을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문서 더미를 들고 나와 뒤적거리며 “그래서 정확히 뭐가 문제라는 거죠?”라고 민원인에게 묻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도 많은 한국 사람들은 공무원이 싸가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는 싸가지 없다는 표현이 단순히 연장자에게 언행을 불손하게 한다는 의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준다. 공무원은 적어도 민원인보다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능력이 있거나 그러한 위치에 있는데, 해당 공무원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지위나 능력을 이용하여 민원인의 문제 제기를 일부러 뭉갰다는 점에서 싸가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공무원 사례에서는 연장자 사례에 등장하지 않은 세 가지 요소가 나온다. 첫 번째는 행위자의 능력이다. 만일 공무원이 두꺼운 문서 더미를 들고 나온 이유가 민원인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무원이 정말로 무능해서였다면, 해당 공무원은 멍청한 공무원이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싸가지 없는 공무원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행위자의 고의성이다. 만일 공무원이 똑같은 말과 행동을 했더라도 업무가 과중해서 정말로 해당 민원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여 동일한 언행을 한 것이라면, 민원인이 해당 공무원의 언행을 오해하여 싸가지 없는 공무원이라고 욕했더라도 이후에 그러한 판단을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는 행위자의 태도다. 공무원이 서류 뭉치를 들고 나와 민원인에게 벌어진 일이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아무런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는 상황과 민원인이 (할 능력이 있다면) 적법하게 문제 제기를 해보라고 말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결과적인 행정 처리는 같더라도 해당 공무원의 태도는 싸가지의 유무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싸가지 없는 공무원이 후자를 택하는 것은, 벌어진 일 자체가 명백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공무원이 직접적으로 말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민원인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뭉개기 위한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본다면, 한국어에서 ‘싸가지 없다’는 표현은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좁은 의미의 싸가지 없음은 연장자 사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젊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행동 양식을 익히지 못했거나 익히지 않은 채로 연장자에게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넓은 의미의 싸가지 없음은 연장자 사례와 공무원 사례를 모두 포함한다. 정치인의 싸가지 없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좁은 의미로 싸가지 없어서 표를 주기 싫다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 사례에서처럼 정치인이 공직에서 자기 편의를 위해 책임을 다 하지 않거나 일부러 태업하거나 일을 망칠 가능성이 높아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준석은 넓은 의미에서 싸가지 없는 정치인인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이준석은 패널로 출연한 여자 변호사에게 “변호사가 되기까지 어떤 차별을 겪었느냐?”고 물었다. 이 경우 해당 여자 변호사의 답변 유형은 정해져 있다. 변호사가 못 될 뻔한 결정적인 차별이 아닌 사소한 차별을 겪었을 경우, 이준석은 이미 변호사가 된 것을 보니 차별받지 않았다고 답변하면 된다. 결정적인 차별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일반화 할 수 있느냐고 입증 책임을 떠넘기면 된다. 인간관계로 엮였거나 범죄 피해 사실 등 말하기 힘든 것이 있었다면, 당연히 여자 변호사는 제대로 말을 못 하게 된다. “변호사가 되기까지 어떤 차별을 겪었느냐?”는 질문은 문제 제기 자체를 틀어막는 일종의 필살기인 셈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준석이 정말로 여성이 어떤 차별을 받는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무지한 상태로 토론에 나갔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이준석의 태도는 정치인으로서 적절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 대해 개떡 같이 말해도 정치인이 그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상대방의 말을 최대한 잘 해석하려고 할 것이고, 상대방이 말하지 못했으나 충분히 가능한 다른 문제점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 것을 잘 하라고 대다수 유권자들보다 잘 배우고 똑똑한 사람을 정치인이 만드는 것이다.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때 이준석의 언행을 보자. 전장연에서 시위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이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것이 심통 나서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그러한 요구사항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따지고, 정당한 요구일 경우 소요되는 예산이나 절차나 기한이 어떤지 따지고,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지, 더 빨리 할 수 있는지 등을 조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준석은 어떻게 했는가? 전장연 대표하고 토론 배틀을 붙어서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이동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하네 마네 했다. 정치철학 수업을 듣나? 정치인은 일을 해결하라고 있는 사람 아닌가?
이준석이 정말 몰라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 매거진>(Harvard Magazine)과의 인터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준석은 개혁신당이 젠더 관련 정책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기를 바란다. 그는 여전히 여성의 직장 진출에 장애물이 남아 있음을 인정했다. 예를 들어, 절반에 가까운 여성이 출산 후 직장을 떠나며, 여성들이 30대 후반에 진입하면 경제활동 참여율이 약 10%포인트 감소한다. 이준석은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혜택에 반대하며, 그 대신 직장 근처 보육 시설에 대한 지원 등 개별 여성들이 더 쉽게 노동 시장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출산 후 일을 그만두게 하는 압박은 개인의 믿음이나 행동을 넘어선다. 이는 집단적인 문화적 규범과 기대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Lee hopes the NRP can provide a forum to debate other policies—including those related to gender. He acknowledges that barriers remain to women’s workplace advancement: nearly half of women leave their jobs after giving birth, for example, and women’s labor-force participation drops by about 10 percentage points when they enter their late thirties. Lee says he is opposed to group benefits to address this inequity, proposing instead solutions that make it easier for individual women to remain in the workforce, such as subsidizing child-care centers near workplaces. But the pressure experienced by new mothers to quit their jobs extends beyond individual beliefs and actions; it is deeply rooted in collective cultural norms and expectations.)
그러니까, 이준석도 다 안다는 것이다. <100분 토론>에 나와서 여자 변호사에게 “변호사가 되기까지 어떤 차별을 겪었느냐?”고 물으면서 여성이 겪는 차별이 있다면 증명해 보라는 식으로 굴지만, 사실은 이준석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 알면서도, 2030 남성들의 지도자이자 토론판의 여포가 되려고 하니, 정치인으로서의 의무나 덕목 같은 것은 알 바가 아니다. 이런데도 어떻게 이준석이 싸가지 없는 정치인이 아닐 수 있는가? 여성과 노인과 장애인과는 전심전력으로 싸우지만 정작 자기가 억울하면 윤석열 당선의 1등 공신이라며 기자회견장에서 쳐울고,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물으면 “정치를 잘못한 문재인이 1등 공신이지 왜 내가 1등 공신이냐”고 묻는, 이런 정치인이 어떻게 싸가지 없는 정치인이 아닐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준석은 좁은 의미에서 싸가지가 있는가? 당연히 없다.
대전 유성에서 있었다고 하는 어떤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한 이준석의 발언을 보자. 김소연 변호사에 따르면, 이준석이 일을 수습하느라 장 이사라는 사람에게 김철근을 보내며 “사람 하나 내려보내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무슨 시동(侍童)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삼촌뻘 되는 사람 보내는 건데 “사람 하나 내려보내겠습니다”라고 한다. 제갈량이 비단 주머니 내놓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말버릇인가? 강용석 변호사가 윾머(배유근)를 직원으로 데리고 다닐 때, 다른 사람에게 윾머를 직원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꼭 “동업자”라고 했다는데, 이준석은 삼촌뻘 되는 사람을 보내며 “사람 하나 내려보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준석의 주장대로 대전 유성에서의 일이 이준석과는 무관하고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치자. 그러면 칠불사에서의 싸가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주술이고 명태균이고 뭐고 싸가지의 관점에서만 보자. 구두 신은 천하람은 오밤중에 삽 들고 나무를 심는데, 혼자 편한 신발을 신은 이준석은 코를 파며 그걸 구경하고 있다.
이래 놓고 이준석은 자기와 관련된 싸가지론에 대해 노무현을 들먹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준석이 윤석열한테 국회의원 명패라도 던진 줄 알겠다.
* 링크(1) [노컷뉴스] 이준석 “빅텐트? 관심 없다…노무현처럼 할 것” / CBS 김현정의 뉴스쇼
( www.nocutnews.co.kr/news/6337489 )
* 링크(2): [Harvard Magazine] Provocative Politician: South Korea’s Lee Junseok tries to break old binaries
( www.harvardmagazine.com/2024/11/lee-junseok-harvard-south-korean-politician )
* 링크(3): [조세일보] ‘2차접견’ 김성진 측 “이준석, 녹취록이 편집조각? ‘자동녹음’ 공개하라”
( https://m.joseilbo.com/news/view.htm?newsid=459836 )
* 링크(4): [CBS노컷뉴스] 검찰, 천하람 참고인 조사…명태균·이준석 '칠불사 회동' 관련
( www.nocutnews.co.kr/news/6316333 )
(202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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