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vid L. Hull (1988), Science as a Process: An Evolutionary Account of the Social and Conceptual Development of Scienc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477-511. ]
1. Observation and Theory in Science
2. Summa Contra Kuhn
3. Summa Contra Kripke
4. Conclusion
과학에서의 일차적인 상호작용자(interactor)는? 개별 과학자들
그러나 유전자 재조합 메커니즘이 생기고, 종이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생물학적 진화의 특성과 속도가 변화했듯이, 과학자들이 사회적 집단으로 조직되면서 과학의 특성도 변함.
개별 과학자들 간의 경쟁과 협동에 연구 집단 수준의 경쟁과 협동이 추가됨.
과학자들의 특징은 이들이 그들의 작업에 내/외적인 관심(interest)을 지닌다는 것.
과학은 인간의 역사 전반에 영향을 받는다.
(물음) 그렇다면 과학의 인지적 내용과 관련된 에피소드 또한 사회적 힘(social force), 즉 과학 외부적인 요인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Hull의 1차 답변>
사회적 힘이 과학의 개념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너무 특이하고 우연적이라 굉장히 특수화된 역사적 내러티브의 맥락에서밖에 취급될 수 없다.
즉, 일반적인 주장으로 확대될 수 없다.
과학과 사회적 이데올로기 간에 일반적으로 유행하는 신화에 쉽사리 빠지지 말아야 한다.
양자 간의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더 확실한 인과적 연관을 보여주어야 함.
다른 사회적 배경을 지닌 과학자들이 유사한 관점을 채택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가 성립하기도 한다.
사회적 힘의 kind와 실질적인 과학적 믿음의 kind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외재론은 과학에 관한 흥미로운 가설로만 남을 것이다.
생물학에서도 상황은 유사: 유기체는 대체로 환경에 적응하지만,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의 개별적 형태는 굉장히 가변적이라 어떤 이론가들은 이러한 상호작용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ex) 적응주의 시나리오 비판
<Hull의 2차 답변>
역사적 설명이 법칙적 설명 모델을 취하지 않기는 하지만, 역사적 설명도 어느 정도의 설명력을 지님. 즉, 과학 이해에 완전히 무관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 설명에서는 (i) 한 존재자가 더욱 포괄적인 역사적 존재자의 일부로 드러나거나 (ii) 이 존재자의 추이(course)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된다.
과학적 변화를 설명할 경우, 분석의 수준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법칙적 설명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매우 특수화된 것들)이 있다.
과학에서의 개념적 변화와 두 가지 요인 사이에 규칙성이 존재:
(1) 과학자들의 탐구 결과 [내재론적 요인: 이유, 증거, 논증에 의해 믿음을 형성]
(2) 다른 과학자들의 신용(credit)을 얻는 것. [외재론적 요인]
(2): 과학이 선택 과정일 수 있으려면 희소성이 요구되는데, 바로 신용이 희소성을 지닌다. 개념적 변화에서는 소유권이 복제되는 존재자의 구조로 통합되어 있지 않아서 생물학적 진화보다 더 복잡하다.
즉, 절도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절도가 잘 일어나지 않는데, 과학자들이 각자의 관점을 다른 과학자들이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
이와 같은 요인들이 무관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낭만주의적이다. 과학자들이 성과물에 대한 신용을 획득하는 데 늘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복제 과정에서는 존재자에서 존재자로 구조가 전달되는데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들 중 어떤 구조들은 정보라고 간주될 만한 것을 지녀야 한다.
즉, “Some of the structure of replicators must point outside itself.”
이것이 13장에서 Hull의 관심사이다. 즉, 복제자가 세계와 맺는 과정을 추적하려고 하는 것.
과학에서의 개념적 발전에서 이는 과학과 외부 세계의 관계를 추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Hull은 관찰 용어의 이론 적재성, 조작적 정의, 공약 불가능성 등 전통적인 과학철학의 주제들을 다룬다.
특징:
(1) 과학자가 견해를 시험하기 위해 진행하는 조작적 행위(operationalization)와 전면적인 인식론적 견해를 구별.
(2) Kitcher처럼, 의미를 지시 잠재력(reference potential)을 통해 이해. 지시 잠재력은 사회적 집단의 존재에 의존.
1. Observation and Theory in Science
과학에서 사용되는 두 가지 전략:
(1) 대담한 추측
(2) 세심한 탐구
둘 중 어느 것이 과학의 진전에 더 기여했는가?
많은 역사가들에 따르면 (1)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실상은 다를 수 있다.
전략 (1)은 많은 오류들을 낳는데, 이 오류들의 원천으로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i) 잘못된 관찰,
(ii) 잘못된 믿음 때문에 관찰 결과를 잘못 해석하는 것.
관찰을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고립시켜야 한다는 요구에는 별 반론이 없었다.
이는, 오류인 것은 관찰이 아니라 이론이라는 생각, 과학자들이 그들 각각의 견해와 관계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중립적인 관찰 진술들의 저장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의 반영이다. 그리고 실제로 과학에 관한 굉장히 호소력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문제> 그러나 현대 과학철학에서 공인된 견해에 따르면 “이론 중립적 관찰 진술”이라는 것은 신화이다.
<Hull의 답변> 공인된 견해가 과학에 관한 철학적 논제로 해석된다면 OK. 이론 중립적인 관찰 언어나 분류는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개념 조작 행위에 기울이는 관심이 실제로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모두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개념 조작 행위가 실제 과학활동의 방법으로서는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지만 과학적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철학으로 부풀려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
<가능한 시도>
현상학적 의미의 “괄호치기”? → 이 괄호치기를 통해 본 자연 현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없고, 이 현상학적인 보고(report)를 가지고 무엇을 할 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방법은 그 어떤 성공적인 연구 프로그램의 출발점이 되지도 못했다.
“이론 중립적 관찰”에 해당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과학적 분류를 이로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물론 관찰 용어와 이론적 용어를 구별하려는 과학철학자들이 있다. 이론적 용어들이 이론 의존적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적어도 유기체로서의 우리에게 지각 가능한 사건이나 존재자를 지시하는 용어는 이론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다는 직관의 표현. 이 직관과 연관된 주장 중 하나는 우리의 감각 기관이 진화론적으로 발달했다는 것이 인식론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Hull의 답변>
진화라는 사건은 과학 발전에 영향을 준 다양한 종류의 우연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우연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자연 현상에 대한 유사한 이해로 수렴할 수 있다.
∴ 지각의 인식론적 우선권과 같은 것은 없다!
그래도 과학자들이 이론 중립적인 관찰 언어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이유 두 가지:
(1) 관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가 선명하고,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라면 관찰 용어와 이론적 용어 사이의 구별이 유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
(2) 과학자들이 너무 아는 것이 많아서 가장 단순한 관찰 용어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것을 함축할 수 있는지를 잊어버린다.
<역사적 대안?>
베이컨 때부터 구상되었던 문맹 자료수집가 부대 →
<Hull의 비판> 역사적으로 실현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이상(ideal)에 암묵적이었던 조야한 귀납주의는 결코 성공적이지 않다. 자료만 축적해서는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를 개선할 수 없다.
(ex) 700개의 종들을 교배 실험 함으로써 250개의 서로 다른 잡종들을 낳았던 게르트너.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론을 관찰로부터 배제하려는 사례 (1)>
표형론에서의 “sanitization”: 만약 분류가 산출되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자료들에 가해지는 “sanitization”은 치명적일 것. 그런데 Rentz는 자신이 앞서 해온 잠정적 분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형질들을 배제했음에도 분류의 결과가 좋았다. 모든 분류학자들에게 그들의 연구에 “unsanitized” 자료를 포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현실성이 없다.
<이론을 관찰로부터 배제하려는 사례 (2)>
Platnick 의 유형 분기학: 분기론이 승인하는 이론을 최소화하려고 노력. 뉴턴 이론이나 상대성 이론 같은 과정 이론을 배제하려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의 구별 역시 기존 이론의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음.
<Hull의 결론>
과학에서의 모든 이론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능하다고 해도 바람직하지 않다. 관찰 용어의 강점은, 모든 과학자들이 안전하게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해줄 수 있고 이후에 생겨나는 논란들에 대해 최종적인 법정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갈등하는 이론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간단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그리고 이론 선택을 더욱 간편하고 용이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형 분기학자들이 제안한 이론 중립적 유형들이 다른 과학자들에게 유용하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는지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것.
이런 분류가 실제로 유용하다고 판명된다면, Hull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에 대해 심각한 위협이 될 것. (그러나 Hull은 자신있는 듯)
2. Summa Contra Kuhn
<이론 적재성의 역설>
특정 이론을 시험하기 위한 자료가 이미 그 이론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면, 어떻게 진정으로 이론을 시험할 수 있는가? 이론들 간의 관찰적 함축이 다르니 이들에 근거해서 이론을 선택할 수도 없고, 엄밀히 말해 두 이론들은 공약불가능하기 때문에 갈등을 할 수도 없다. [이론 간 비교 불가능성]
<Hull의 단순명쾌한 대답>
그러나 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 이론들을 공약 불가능성이라는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닌가?
예컨대, 관찰/추론 구별 말소에 대한 Fodor의 비판: 관찰은 과거 경험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ex: 착시)
즉, 관찰과 추론 사이에는, 비록 선명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간극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론 적재성의 역설은, 과학 이론들에 대한, 관찰 진술들이 이론들과 맺는 관계에 대한 비현실적인 관점에 기인한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론을 세계에 mapping하는 개념망(conceptual net)으로 보았고 망 내부의 각각의 매듭(nod)은 자연의 원자적 사실과 대응한다고 보았다. Quine은 이를 비판하면서, 개별 진술들은 이론 전체의 맥락 속에서 시험된다고 주장.
Fodor는 모듈성 논제를 통해 모든 배경지식이 동시에 이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 일정한 지각 모듈은 일정 영역의 지식에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개념적 체계 역시 모듈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균일한 망(seamless web)이 아니라, 패치워크 누비이불(patchwork quilt)로 이해되어야 한다.
개념 체계 안에 체계성을 갖춘 영역들이 있다고 해도, 완전히 균일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으며 각 영역들은 부분적으로 의존적이기는 하지만 또한 부분적으로는 독립적이다. 다른 과학자들까지 포함하게 된다면 훨씬 더 patchwork처럼 보이게 됨.
과학활동에 대한 그림: 과학자들은 협동을 통해 기워진 그물망을 서로 번갈아 던졌다가 걷고, 가장 알맞는 것을 기초로 그물을 다시 고치고, 다시 던지는 일을 반복한다.
장점: 오류의 증식을 방지할 수 있음
단점: 통일성, 전면적 정합성 부족
→ 그러나 통일성, 정합성은 지속적으로 과학자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 남음.
논리 경험주의자: 이론은 명시적이고, 완전히 정밀한 추론 체계
→ (비판) 어떤 진술이 어떤 이론로부터 따라오는지를 결정하는 데는 복합적인 고려사항들이 개입한다. 단순한 논리적 도출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가?) No. 서로 다른 소속의 과학자들이 서로를 종종 오해하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종종 서로를 잘 이해한다. 의미론적 고려사항들이 과학자들의 의사소통에 함축하는 바가 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을 것이다.
→ (가능한 대답) 의미론은 의사소통에 직접적으로 함축하는 바가 없다.
→ (Hull) Thank you! 그렇다면 공약불가능성은 일반 의미론 연구자들이 탐구해야 할 심오한 문제로 남을 뿐, 실제 과학 활동에서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과학을 과학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이론의 ‘반증가능성’이라고는 하나, 대부분의 연구는 탐구 중인 가설을 입증한다. 최소한의 자료에 기반하여 전체 문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ex) 방사능 연대측정은 오직 7개의 표본에 대한 측정만을 기초로 수용되었다. 유전자 암호의 보편성 역시 소수의 종에 대한 정보를 기초로 해서 잘 확립된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렇게 빈약한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것은 과학 이론들의 부분적 상호연관성에 의존함. 과학자들은 최소한의 근거를 기반으로 해서 일정 문제들을 해결된 것으로 수용하고 새로운 문제 영역으로 나아간다. / 개념 체계의 모듈적인 조직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국소화(localize)할 수 있게끔 해준다. 한 영역이 크게 변해도 다른 곳은 오직 미미한 조정을 통해 진행될 수 있다.
3. Summa Contra Kripke
Wittgenstein: 언어의 일차적 기능은 의사소통이다. 구체적인 언어놀이의 맥락 안에서 세계에 대한 기술(description)도 가능하다. 이론을 구성하는 용어들의 의미는, 이론을 정식화하는 과학자들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구체화될 수 없다. <의미의 사회적 차원>
Kripke/Putnam의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동일한 대상을 지시하는 용어.
(ex) “이명박”[고유 명사(proper name)]은 고정지시어. 그러나 “대한민국의 17대 대통령”[한정 기술구(definite description)] 은 비-고정 지시어. 이 기술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한정 기술구는 지시체 고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Kripke의 주장. (그럼 어떻게 고정?)
화자의 용어-개별자의 지시체는 최초의 “명명식”(baptism)에 의해 고정되고, 이 지시체를 보존하는 인과적 사슬(causal chain)에 따라 계속 전달된다.
∴ 지시는 “인과적”이다.
① 최초의 명명식
② 고리에서 고리로 이어지는 사슬 모두 인과적.
해당 표현이 고정지시어인 한 그 표현의 의미에 관해 물을 필요가 없다.
Hull은 Kripke/Putnam의 시나리오가 계통분류학에서 종을 명명하던 상황과 유사하다고 봄.
계통분류학에서 쓰인 유형 표본 방법(type specimen method): 각 종의 기준이 되는 구성원을 선택해서 종을 지칭. 탐구되는 유기체의 본래적 기질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다양한 변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본질주의적 가정)
그러나 후대의 연구를 통해, 처음에 유형표본으로 지시된 유기체가 실제로 “기준적인”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질 수 있고, 다른 유기체로 대체될 수도 있다.
→ 유형표본의 유일한 기능이 결국 그 종의 이름 담지자(name bearer)로 한정되었다.
즉, 한 종을 지시하는 기능과 유형표본을 정하는 기능이 분리.
[cf. 한정 기술구와 지시체가 별개라는 Kripke의 아이디어]
유기체나 종에 관해 고정 지시가 잘 들어맞는 이유는 이들이 역사적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Kripke/Putnam은 고정 지시를 일반 명사(ex: 물, 금)에도 적용시키려 했는데 이렇게 되면 난점이 생기게 됨. 유기체나 종은 역사적 존재자이고 물이나 금은 자연종(natural kind)이다.
형이상학적 범주가 다르므로 각각에 적절한 명명 절차도 다를 수 있다.
(1) 역사적 존재자의 경우: 명명되는 존재자와 고리에서 고리로 이어진 언어적 전달 모두가 역사적 존재자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존재자가 여러 번 명명될 수는 있지만, 이 중복성을 역사적 사슬을 추적함으로써 밝혀낼 수 있다.
(2) 자연종 명사의 경우: 우주 내에서 물이나 금 같은 실체는 언제든, 어느 곳에든 있을 수 있으므로 역사적 탐구만으로는 지시체를 고정하기에 불충분. 이들은 여기저기서 명명되어 서로 다른 개념적 혈통을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고정 지시가 각각의 개념적 혈통 내에서는 잘 작동할 수 있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의 동의성을 확보해줄 수 있는 것은 명명식이 아니라 구조적 동일성이다.
(Hull의 비판) Kripke / Putnam은 이런 경우에도 명명식이나 보존 사슬이 있다고 주장해야만 할 것이다!
<대안> Kitcher의 “지시 잠재력” 개념:
(1) 이어지는 지시체 사슬이 지시체를 변경할 수 있다. (ex: 행성)
(2) 지시체가 변경되지 않더라도 용어-개별자의 지시체를 고정하는 방법이 바뀔 수 있다. (ex: 유전자)
지시에서 개별 언어 사용자의 의도가 지닌 세 가지 역할이 있다.
(1) 순응성(conformity),
(2) 자연성(naturalness),
(3) 명료성(clarity)
(1): 대부분의 경우 언어 사용자는 그 말에 관한 공동체의 용법에 순응하려고 하지만, 결정적인 경우에는 아닐 수 있다. (ex) 다윈의 종 개념
(2): 많은 사람들이나 과학자들은 자연종을 지시하려 한다. 그러나 때로는 자연종을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지닌 기술구를 고집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가능한 대안>
(1) 종(species)이 자연종이라는 것을 부인.
(2) 자연종 개념 자체가 진화했다.
즉, 예전에는 영원 불변하고 분리된 것을 지시했지만 지금은 일시적, 가변적, 무정형의 존재자를 지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대안은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다)
(3): 과학자들은 그들이 specify할 수 있는 것을 지시하려 한다. 이 맥락에서 Kitcher는 과학에서 조작적 정의의 중요한 역할을 인정한다. 문자 그대로의 정의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 용어를 적용하는 데에 유용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ex: cis-trans test)
<Hull의 입장> 대체로 동의. 그러나 Kitcher가 공동체의 경계를 정하는 방식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Kitcher: 과학자들이 동일한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는 지시체를 고정하는 방식에 관해서, 지시체를 고정하는 발단 사건(initiating event)에 관해서 일치해야 한다. 이 조건만 만족시키면, 개별 과학자들이 서로 얼마나 불일치하는 믿음을 지니든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
<Hull의 비판>: 우리가 연구 집단들을 협동을 통해 정의한다면, 용어-유형의 용어-개별자를 산출하는 발단 사건을 포함한 많은 문제들에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도 같은 집단에 속할 수 있다. (즉, 필요조건이 아니다!)
Kitcher에 따르면 언어 공동체는 오직 지시체 고정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개별화되는데, 이는 허구적이다. 유관한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을 통해 집단을 정의해야 한다.
용어-개별자는 오직 전달을 기초로 하여 나무와 그물망(network)로 조직되어야 한다. 이 나무 구조에서 개별자들의 구조 자체가 변할 수는 있지만, 이 개별자들은 여전히 같은 개별자 나무의 일부일 수 있다. 최초에 특정한 발단 사건에 의해 도입된 특정 용어-개별자들의 사본(replicate)들이 다른 발단 사건에 의해 그 용어-개별자의 지시체와 결합할 수 있다.
(ex) “pangene”→”gene” / “allelomorph”→”allele”
(ex2) de Vris의 범생자(pangene) 개념은 그의 돌연변이 이론이 출판되기 전에 도입되었지만 이후에 성립한 그의 일반적 이론의 맥락에서도 잘 사용되었다.
“유전자”라는 용어-개별자가 계속 “유전자”로 전사되더라도, 유전학자들이 추가적인 조작적 정의를 고안하면서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 도입되어 이 용어-개별자들의 지시체를 고정할 수 있다. 과학 용어는 다양한 발단 사건을 포함하는 지시 잠재력을 지닌다. 이 다양한 지시체-고정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개념적 복제의 연속성이다.
<문제> 어떻게 이런 개념의 나무를 유형으로 분할(partition)할 수 있을까? (문제가 생기는 이유: 고립된 용어 각각은 의사소통이나 세계를 기술하는 데 충분하지 않기 때문. 용어-개별자들의 계기적인 복제로 구성된 각 혈통조차 충분하지 않다. 언어에는 용어-개별자뿐만이 아니라 용어-유형도 필요하다)
생물학에서의 해결 방식
유형 분기론자
계통수가 엄밀한 단계통적 분류군으로 세분됨. 특정 매듭에서 산출되는 모든 복제자들은 하나의 상위 분류군에 포함되어야 하며,
특수한 상위 분류군에 포함된 모든 매듭은 단일 발단 매듭에까지 추적 가능해야 함.
표형론자
계통발생을 완전히 무시. 완전히 일반적인 분류군을 산출하려고 노력함. 이들이 사용하는 형질은 표형론적 분류군은 시공간적으로 무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유의미한 개체로 기능할 수 없지만, 자연법칙에서 기능할 수 있는 집합.
계통발생 분류학자
모든 분류군이 클레이드여야 한다. 클레이드로서 이들은 모두 시공간적으로 연속적이다. 각 혈통은 응집력을 지니며, 자연종이 표시할 수 있는 개체이나, 전체 클레이드는 그렇지 않다. “혈통”은 자연종.
진화론적 분류학자
혼성(hybrid) 분류법. 계보학과 과정 요인의 결합. 파총류 동물들이 분리된 적응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파충류는 엄밀한 의미에서 단계통은 아니라도, 하나의 분류군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Hull의 답변>: 목적에 따라 선호되는 분류법이 달라질 수 있다. 진화 과정에서 기능하거나 진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존재자를 구별하고 싶다면 클레이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고, 그것의 이름이 생물학 법칙에서 기능하는 존재자의 집합을 구별하고 싶다면 시공간적인 요소를 고려해서는 안 된다. (Carnivora/carnivores)
<용어 차원에서의 문제> 용어-개별자 자체도 복제 계열에서 변할 수 있다. 용어-개별자들이 유형으로 조직된다 해도 이들은 그냥 용어-개별자의 계열일 뿐이지 진정한 용어-유형이 아니다. 따라서 개념적 변화에 관한 일반화로 기능할 수 없다.
→ <해결> 분류학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과학이 선택과정으로 이해될 때 용어들이 수행할 수 있는 두 가지 역할을 구별하자!
<과학 용어의 이중성?> 과학적 변화를 국소적 수준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용어-개별자를 나무로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 활동에 개입한 사람들은 그들의 용어 중 어떤 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기를 의도함.
“Thus, conceptual change in science consists in term-tokens being tested and transmitted locally but interpreted globally as types.”
용어-개별자들은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용어 나무의 일부인 동시에, 시공간적으로 제한되지 않은 용어-유형의 일부이다. 복제 계열에서 연결된 개별자들만이 지속되지만, 이들 중 어떤 것은 널리 수용되는 용어-유형의 범례(exemplar)가 된다.
과학 개념체계의 모듈적 구조는 과학의 딤식(demic) 구조에 의해 사회적인 수준과 짝지어진다. 과학사 초기에는 과학자들이 대개 고립되어 연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포괄적인 연구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각 연구 집단의 형성은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개념적 변화와 과학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ex) Huxley&Hooker와 Owen의 대립은 다윈의 저술 이전에 이미 다윈주의의자들의 핵심을 산출.
전통적으로는 이런 사회적 관계들이 과학에 “내적인”것이 아니라고 간주되었지만, “내적”이라는 범주도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과학이 존재하는 내내 과학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종류의 협동과 경쟁일 것. 이들의 영향이 국소적이기는 하지만 개념적 변화의 다른 요인도 국소적이긴 마찬가지다.
4. Conclusion
과학적 변화를 사회적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할 때 두 종류의 역사적 존재자, 즉 (i) 사회적 존재자와 (ii) 역사적 존재자를 구별해야 한다. 사회적, 개념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자주 관련되어 있다.
두 존재자 모두 어떤 시점에든 내적으로 이질적이기 때문에 “본질”(본질적 구성원이든, 본질적 교리든)에 의해 개별화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분류학에서의 유형 표본 방법과 같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
연구 집단을 개별화할 때는 그 집단을 진정한 사회 집단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매듭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과학자를 찍어내면 된다. 과학자들이 실제로 지녔던 믿음과 관계없이 그냥 “캔자스 수량분류학자 집단”, “초기 다윈주의자들”과 같은 표현의 지시체를 고정하는 것.
개념 체계를 개별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에 특정 과학자가 견지했던 특정 이론의 특정 version은 적은 수의 본질적 교리에 의해 묘사될 수 있다. 이것을 개념적인 유형 표본으로 선택함으로써 특정 개념 체계를 개별화할 수 있다.
과학의 개념 체계는 “전면적인” 의미에서 시험될 수 없다. 이론의 한 version에만 국한해도 마찬가지다. 이 version의 어떤 제한된 측면만이 시험되는 것이다. 여기에조차 다양한 조작 행위가 도입된다.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조작 행위 방법이 더 잘 확립될 수도 있고, 수정될 수도 있고, 의문시될 수도 있고, 포기될 수도 있다. 시험되는 이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시험은 고도로 특수화된 활동이지만, 과학자들의 의도는 굉장히 일반적이다. 이들의 목표는,
(1) 가능한 한 많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특정 관점에 대한 동일한 일반적 정식화를 수용하게끔 하는 것, 나아가
(2) 개별 과학자들의 개념 체계를 개정하여 그들이 유사한 상황에서 유사하게 반응할 수 있고 같은 종류의 시험을 행하고, 시험 결과가 주어지면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유사한 개별자들을 제시할 때 같은 것을 의미하여 용어-개별자 나무 내의 용어-개별자들이 동일한 용어-유형의 개별자들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026.01.13.)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