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작가와 홍기빈 박사가 곧 싸울 모양이다. 페이스북에 장강명 작가가 홍기빈 박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유튜버 흑자헬스와 용찬우의 싸움의 뒤를 잇는 그러한 거대한 싸움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서 글을 잘 읽어보려고 했다. 글이 너무 길고 눈에 잘 안 들어왔다. 웬만하면 그렇게 길고 재미없는 글은 잘 안 읽는데 곧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서 참고 읽었다.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내용이 잘 파악되지 않아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며 읽었다. 원문은 A4용지 열세 쪽 분량이다.
0. 서술 동기 및 목적
- 같은 회사에 다녔던 기자 동기가 세상을 떠남.
- 기자 선후배 중 누군가가 홍기빈 등의 글을 반박해달라고 요청
- 홍기빈의 글을 반박하기로 함.
1-1. 기자가 부당한 비난 글에 대응하지 않는 이유
- 이유(1): 바빠서
- 이유(2): 대응해 봐야 무익한 감정 싸움만 벌어져서
1-2. 기자가 부당한 비난 글에 대응하지 않는 이유
- 이유(3): 자기가 쓴 기사가 부끄러워서.
1-3. 미디어 비평에 대한 비판(1)
-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기사를 쓰는 것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함
- 기사를 비판하기는 매우 쉬움.
1-4. 미디어비평에 대한 비판(2)
- 현실을 모르고 당위만 가지고 비판함.
- 기사 쓰기는 침대에서 뒹굴면서 할 수 있는 논증과는 차원이 다른 일임.
1-5.
- 언어로 현실의 대상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으나, 마감 시간은 정해져 있음.
- 기자들은 자기가 쓴 기사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다 신경이 망가짐.
2-1.
- 한국 대학의 언론 관련 학과 교수들 중 취재 현장을 체험해 본 사람은 매우 적음.
- 취재 부서마다 취재 문법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서 언론계 일반을 쉽게 일반화할 수 없음.
- 그런데도 언론학자나 시민단체 운동가들은 법조와 정당 기사를 우악스럽게 비판함.
2-2. 미디어 비평에 대한 비평의 필요성
- 한국 미디어 비평 수준은 한국 언론 수준보다 높은가?
- 사례(1): 언론학자, 교수로 소개하지만 박사 학위가 없고, 전임교원이 아닌 겸임교수. 현장 경험은 전무.
- 사례(2): 저널리즘 권위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아예 학문적 배경이 없는 영화평론가. 현장 경험은 전무.
- 전문가인 양 언론을 비판하는 이들 중 몇몇은 자기 이름을 알리거나 공천을 받거나 ‘좋아요’ 개수에 관심이 있고, 사람들의 미디어 문해력을 높이기보다는 언론 혐오만 부추김.
- 홍기빈은 그 중에서도 수준이 낮은 축
2-3.
- 미디어 비평을 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현장을 잘 모른다는 사실 정도는 자각했으면 좋겠음.
- 취재 현장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편집국이나 보도국이 얼마나 난장판일 수밖에 없는지만 염두에 두어도 비평의 내용과 톤이 바뀔 것임.
3-1.
- 대형 참사가 발생할 경우 신문사 편집국에서 마련할 지면 계획 초안 예시
▽1면 ST(스트레이트 기사)=어디서 어떤 사건이 언제 발생했다
▽3면 메인 박스(상보)=사고 상황+사고 원인
▽3면 보조 박스=정부 대책 어떻게+국회 계류 중인 법안 있으면 함께
▽4면 메인 박스(분석)=비슷한 과거 사고들+왜 반복되나+해외 사례+전문가 분석
▽4면 보조 박스=피해자 보상 어떻게
▽사회면 메인 박스=사고 현장 르포+유족 분위기
▽사회면 보조 박스=정치권 반응+각계 반응+SNS 반응
- 이런 방식은 2010년대에 중대한 도전을 맞이함.
3-2.
- 지면 계획이자 취재 계획은 다음 날 아침 독자가 종이 신문으로 뉴스들을 접한다는 전제로 만듦.
- 2010년대에 이르러 뉴스 시장의 주도권은 완전히 포털로 넘어감.
- 그러나 신문사에서는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취재 계획을 세움.
-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거나 사고 현장을 취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반면, 피해자 보상을 취재하는 것은 시간이 덜 걸릴 수밖에 없음.
- 4면 보조 박스기사 ‘피해자 보상은 어떻게’를 맡은 기자가 먼저 취재해서 기사를 써서 올림.
- 먼저 등록된 기사가 조회수가 높을 가능성이 높음. 조회수는 곧 돈이므로 기사를 빨리 포털로 넘겨야 함.
- 기사를 본 사람들은 경악함. ‘이 언론사는 사고 관련 기껏 분석했다는 게 유가족이 돈을 얼마 받게 되느냐는 거야?’
- 홍기빈 등은 언론을 향해 ‘인간으로서 모욕감과 분노를 느낀다’며 ‘희생자들에게는 물론 국민에게도 사과하라’는 준엄한 명령을 내리게 됨.
3-3.
- 2010년대 이후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한 이유는 언론사가 기사를 생산하는 방식과 사람들이 기사를 소비하는 방식 사이에 괴리가 생겼기 때문임.
- 이는 신기술로 인해 비롯된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며, 문제를 해결할 주체조차 모호함.
- 세상에는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말할 때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용감해지는 사람이 있음. 홍기빈은 후자임.
3-4.
-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당연히 유가족 취재를 해야 함.
- 유가족은 참사의 원인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관계기관들이 얼마나 대책을 성실하게 수립하고 실행하는지 가장 잘 파악할 수 있음. 그들이 세상에 대해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수 있음.
- 슬픔에 쌓인 유가족에게 여러 기자들이 몸싸움을 벌이며 마이크를 들이대는 취재 행태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원래 기자들은 그런 식으로 취재하지 않았음.
- 사고 현장에서 기자단을 꾸려 기자단 간사가 유족 대표와 인터뷰 형식을 조율하고 취재 현장에서 최소한의 질서를 지키려 했음.
- 언론 개혁을 주장하던 분들의 단골 메뉴가 기자단 해체였음.
- 언론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미디어 비평에 책임을 요구해야 함. 미디어 비평은 언론에 영향을 미침.
3-5.
-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때 유가족이 받을 보상금이 얼마인지 마땅히 취재해야 함.
- 정부나 기업의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했는데 어떤 부조리 때문에 유가족이 보상받지 못하면 안 되므로 그런지 아닌지 확인해야 함.
- 취재나 기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맥락 속에서 전해져야 할 기사가 그렇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임.
4-1.
-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MBC가 인터뷰하던 중 자신이 내건 조건을 MBC 측이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인터뷰를 중단함.
- 며칠 뒤 미디어오늘 기자가 당선자의 언론관이 변해야 한다는 칼럼을 씀.
- 이 칼럼을 두고 홍기빈은 ‘박근혜 앞에서 설설 기던 언론인들이 2년 후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이란 ㅋㅋㅋ’라고 조롱함.
4-2.
-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님. 4년 동안 80조 원이 넘는 돈을 집행할 책임을 지며, 경기도의 기본도시계획과 주택관련 기본 정책을 세우며, 21층 이상, 10만 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의 건축 허가권과 1만 명이 넘는 경기도 직원에 대한 인사권과 징계권 등 많은 권한을 가짐.
- 홍기빈은 일종의 게임적 세계관(유치한 세계관)을 지닌 것으로 보임. 정치인과 언론은 서로 승부를 겨루는 플레이어들이며, 선악이 분명한 그 게임에서 악을 혼내주는 이는 선의 편에 있음.
- MBC는 해야 할 의무를 했으며, 경기도지사 당선인은 국민을 대리해 언론이 던진 (별반 곤란할 것도 없는) 질문을 회피했음.
4-3.
- 홍기빈이 강한 주장을 버럭 질러놓고는 어이없는 소리를 근거라고 대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은 지적 불성실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임.
4-4.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음.)
5-1. 홍기빈을 반박 상대로 고른 이유
- 홍기빈이 남자 고등학교 교실에서 볼 수 있는 일진과 비슷한 행태를 보여 반박 상대로 골랐음.
5-2.
- 무력감과 좌절감이 요즘 기자들 사이의 일반적인 분위기임.
- 이희정 대표는 ’기자들이 열정을 잃고 울면서 떠나게 만드는 언론계 현실’에 대해, 후배 기자들에게 마음을 담은 글을 씀.
- 장강명은 이희정 대표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트래픽 지상주의와 낡은 취재 관행을 버리고,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생각하며, 편집국을 더 소란스럽게 만들자는 그의 주장에 반대하지는 않음.
- 그런데 홍기빈은 이희정 대표의 글에 대해 ‘반성하는 듯 반성을 회피하는 글’이라고 비난함.
5-3.
- 홍기빈을 지적 게으름, 지적 불성실이라는 키워드로 파악할 수 있음.
- 제대로 된 근거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강한 주장만 공론장에 쏟아내는 것은 지적 게으름이며, 내용 없는 텅 빈 말이 근거가 된다고 믿는다면 지적 불성실임.
6-1.
- ‘이게 다 언론 탓’이라는 생각의 배후에는 전적으로 잘못된 세계관이 있는 것으로 보임. 바로,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언론이 부정확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임.
- 어떤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 머릿속에 있는 세상에 대한 모델 자체가 잘못되어서일 수도 있음.
- 세상에 대한 모델을 만들어주는 것은 언론이 아니다. 기초 교육과 교양 공부임.
- 언론 기사는 이미 모델을 갖춘 사람들에게 새 소식을 업데이트 해주는 역할을 함.
6-2.
(6-1에 대한 보충)
6-3.
- ‘언론 기사=세상 모습’이 아님. ‘언론 기사=이미 세상의 모습을 어느 정도 아는 독자가 업데이트해야 할 사안’임.
-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기에, 언론 기사를 보고 그게 세상 모습이라고 믿으면 안 됨. 세계의 진짜 모습은 따로 공부해야 함.
- 장강명은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를 예나 지금이나 매우 추천함.
6-4.
- 장강명은 『팩트풀니스』와 그 책을 추천한 자신에 대한 홍기빈의 비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함.
- 홍기빈은 tvN 프로그램에서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내서 누군가가 “노동자가 일터에서 비참하게 죽었다는 게 언론에 기사화되는 게 문제다”라고 말한 것처럼 옮김.
- 홍기빈은 『팩트풀니스』 자체를 안 읽은 것 같음. 이후에도 책 이야기는 안 하고 구글 검색 이야기만 함.
6-5.
- 홍기빈은 『팩트풀니스』가 좋은 데이터만 취사선택했다고 비난하면서 본인은 『팩트풀니스』에 대한 나쁜 평가만 취사선택함.
6-6.
- 홍기빈의 글을 읽으면서 제일 크게 웃은 대목은 한스 로슬링과 스티븐 핑커를 비판하는 부분임.
- 홍기빈은 로슬링과 핑커를 ‘전공을 알 수 없는 오지라퍼, 전문 분야를 훌쩍 넘어서 오지랖 부리는 사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함.
- 지금 여기서 제일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홍기빈임.
6-7.
- 홍기빈은 『팩트풀니스』가 ‘사실상 기후위기 및 각종 생태 위기의 심각성을 부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책 어디에 그런 부분이 있나?
- 『팩트풀니스』 추천자들이 생태위기 관련 발언을 하면 망신을 주겠다고 경고하는 문장에서는 그의 자아 비대증을 염려하게 됨.
- 인터넷 일진놀이가 반박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음.
7. 홍기빈에 대한 마지막 당부
- 홍기빈은 언론이 뭐고 언론의 역할이 뭔지,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하고 기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모르는 사람임.
- 모르는 분야에 대해 자신의 상식에 의거해서 의견을 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이 분야를 모른다는 사실 자체는 잊지 말고 의견을 내라.
- 함부로 상대를 악마화하지 말고, 같잖은 상식으로 사람을 단죄하려 들지 마라.
- 의견을 낼 때에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사실은 왜곡하지 마라.
- 머릿속으로 당신 의견에 대해 반론을 여러 개 내보고 의견을 다듬어라.
- ‘기레기’라는 말 자주 쓰던데, 홍기빈이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니 남이 쓴 걸 인용하려고 저 단어를 써야겠거든 앞뒤로 작은따옴표 꼭 붙여라.
요약한 것도 기니 이를 다시 네 줄로 줄이면 다음과 같다.
- 기자들이 이상한 기사를 쓰는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 방법과 해결 주체도 모호한데,
-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나 하며 언론에 악영향을 주고,
- 홍기빈 같은 지적으로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들은 언론계를 대상으로 인터넷에서 일진놀이나 한다.
이렇게 싸움이 벌어질 기미가 보이니 두 사람에 대한 비판 글이 페이스북에 하나씩 올라오고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중에는 홍기빈 작가의 지적인 게으름과 불성실을 비판한 장강명 작가의 지적인 게으름과 불성실을 비판한 글도 있다. 2018년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리디북스가 장강명 작가에게 첫 오리지널 콘텐츠 연재를 제안했을 때 장강명 작가는 “‘섹스로봇’ 같은 거 어때요?”라고 제안했고 이에 리디북스는 파격적인 시도라며 반겼다고 하는데, 이것이 장강명 작가의 지적인 게으름과 불성실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문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고 소설도 거의 못 읽는 내가 봐도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섹스로봇으로 SF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쓸 수도 있고 잘 쓰면 될 것이다. 문제는 업체에서 소재가 파격적이라며 반겼다고 해도 작가가 그게 파격은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또는 일부러 홍보에 이용하려고 호도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2017년에 있었던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에서 배명훈 작가는 심사평으로 이런 글을 남겼을 정도였다.
다만 정말로 견디기 어려웠던 부분은 섹스 로봇 이야기가 너무 흔하게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특별히 역할이 있거나 내용상 꼭 필요한 장면도 아닌데, 그냥 익숙한 미래의 풍경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 로봇 이야기를 집어넣은 글이 예심 기간 읽은 응모작의 절반을 넘어섰다. 올해가 유독 심한 건지 다른 공모전에서도 원래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기성작가로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1인칭 남자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섹스 로봇을 함부로 다루는 장면을 집어넣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과학소설에서는 꽤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로봇은 인간에게 저항할 수 없다”는 원칙과 “여성형 섹스 로봇”이 결합할 경우,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게 될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해 보시기 바란다.
1년에 소설책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나도 이 심사평은 읽었다.
* 링크(1): [머니투데이] “섹스로봇 어때요?” 작가 한마디에 리디북스 “파격이라 OK” (2018.10.10.)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8100913081728184 )
* 링크(2): [머니투데이] “흔한 섹스로봇 소재 식상…문제에 대한 답 이상의 질문 던져야” (2017.09.26.)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7092515064314013 )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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