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

읽는 양과 쓰는 양



최근 한국에서 1인당 독서량은 줄어드는데 오히려 1인당 출판량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책을 덜 읽으면서 예전보다 안목이 낮아져서 자기가 책을 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든지, 책 판매량이 줄어드는 와중에 출판사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무 책이나 빠르게 대충 출시한다든지 등등. 여기에 SNS와 유튜브 등의 영향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도 곁들이면 시의성 있는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르겠다.(물론, 시의성 있다는 말은 요즈음 아무나 하는 소리라는 것일 뿐 그 말의 신뢰성과는 무관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위와 비슷한 이야기가 이미 20년 전에 일본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이토 다카시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참고로, 해당 번역본의 원서는 2004년에 출판되었다.)

요즘 책을 읽기는 싫은데 쓰기는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잡지사의 각종 문학상 공모전에는 잡지 구독자보다 훨씬 많은 응모자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그 응모자들 중에는 자신이 어떤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책을 거의 읽지 않고도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보다. 그러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연애 경험만 해도 당사자에게는 꽤 드라마틱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는 흔해 빠진 연애담으로 비춰지기 일쑤다.

개개인의 체험은 분명 특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표현해서 다른 사람이 읽을 만한 가치 있는 문장으로 만드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고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자 중심의 작문과 자기 중심 작문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이한 언어로 써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요즘 소설이나 에세이가 그냥 개인적인 체험을 그대로 쓴 것 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글이 사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주제나 구성 그리고 문장 표현에는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편성이 내재되어 있다. (115-116쪽)

* 참고 문헌

사이토 다카시,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황혜숙 옮김 (루비박스, 2005)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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