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9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저작권 관련 법학 논문을 읽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법학 논문을 읽게 되었다. 원래부터 법학 논문을 읽을 생각은 아니었고 하다 보니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르바이트가 들어온 것은 2주 전쯤이었다. 의뢰인은 제출 기한이 촉박한데 보고서를 써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원래 6주 정도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시간이 급박하니 2주 안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6주에 할 일을 어떻게 2주 안에 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의뢰인이 제시한 금액을 듣고 해당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마침 나는 대학원 선배가 하는 <인공지능과 철학>의 수업 조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보고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과학철학 선생님들이 그 동안 인공지능 관련해서 논문을 많이 써놓으셨으니까 적당히 정리하고 대충 의견을 붙이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의뢰인은 보고서에 정책적 함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책적 함의? 나는 과학철학 전공인데?

알고 보니, 의뢰인은 내가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내가 철학을 그만둔 줄 알았다고 했다. 어쩐지, 과학정책 대학원생이 할 아르바이트가 왜 나한테 왔나 했다. 그래도 나한테 들어왔으니까 내가 해야 했다. 의무감이고 뭐고 간에 당장 증여세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선택한 보고서 주제는 인공지능 창작물의 저작권 개념이었는데, 한국어로 된 철학 논문을 다 뒤져도 보고서에 쓸 만한 내용은 없었다. 역시나 철학은 현실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기 때문에 법학 논문을 찾았다. 스무 편 정도 읽었다.

법학 논문을 읽으면서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일만 해도 그렇다. 민사소송으로 할 것을 도청과 시청을 들쑤셔서 행정명령으로 해결하지 않나, 정말로 민사소송 하나가 진행중이지 않나, 너무 오래된 사건이어서 소 제기가 어려운 사건을 소 제기가 가능하게 만들고 민사소송 직전까지 몰아붙여서 친척한테 빼앗긴 땅을 받아내지 않나, 그런데도 재심 청구할 게 하나 남아 있지 않나, 이제는 저작권법 관련 논문을 읽고 있으니, 이럴 거면 로스쿨을 갔어야지 왜 철학과 대학원에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여러 정황상 나는 로스쿨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과 대학원에 적합한 인간이냐고 하면 또 대답하기 마땅치는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여간 나는 돈 받을 기한을 넘기지 않고 보고서를 제출했다. 의뢰인은 아마도 보고서를 수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며 이번 달 말에 돈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번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운 점도 있었다. 학부 때 법학과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 왜 법학에 대해 감탄하거나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는지 당시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마흔을 앞두고 법학 논문을 읽으면서 그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법을 아예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법이라는 건 그냥 국회의원들이 적당히 합의해서 만들었다 없앴다 하면 되는 것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령, 우리가 바둑을 공부하려고 서점에서 바둑 기보 같은 것을 샀다고 해보자. 이 때 기보는 저작물로 인정받아야 하며 기보 수익의 일부는 해당 대국을 한 바둑기사에게 가야 하는가?

간단히 생각해보면, 바둑기사가 바둑을 두었으니 기보는 바둑기사의 저작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떤 창작물이 저작물로 인정받으려면 해당 창작물의 저작물성이 성립해야 한다. 저작물성이 성립하려면, 해당 저작물이 저작권법에 명시된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기보에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이 표현되는가?

의견은 둘로 나뉜다. 기보의 저작물성을 부정하는 측에서는 바둑판 위 어느 곳에 착점할지는 사상의 표현이 아니며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데 불과하므로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기보의 저작물성을 인정하는 측에서는 창작성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여 “선택의 폭”도 창작성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민경재 교수 같은 경우는 대국할 때 바둑기사가 바둑판 위의 아무 곳에 두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대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등을 고려하며 수많은 수에서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최대한 반영한 수를 두기 때문에 충분히 창작성이 있다고 본다.(244쪽) 그런데 도대체 이게 왜 중요하냐? 기보의 저작물성 여부에 따라 기보의 수익이 대회를 개최한 바둑협회로 갈지, 바둑기사에게 갈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보의 저작물성에 관하여 아직 명확한 합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편의상 기보의 저작권이 바둑기사에게 있다고 치자. 그러면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을 두었다. 기보의 저작권이 기사에게 있다면, 알파고의 몫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아마도 알파고를 만든 회사가 해당 수익을 차지하는 것이 맞겠지만, 여기서 몇 가지 조건만 바꾸면 문제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한 문제들이 실제로 외국에서 발생하고 있고 아마도 조만간 한국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 참고 문헌

민경재 (2016), 「게임의 유형별 그리고 구성요소별 법률관계의 검토 - 특허법 및 저작권법을 중심으로」, 『과학기술과 법』 제7권 제1호, 231-268쪽.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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