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4

작성자에 대한 평가와 결과물에 대한 평가

이번 학기에 글쓰기 조교 업무를 할 때 담당 선생님께 업무 지침 문서를 받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는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논증 에세이> 피드백을 할 때 “해당 글에 대한 비평을 해주시고, 글쓴이의 글쓰기 능력이나 수준에 대한 언급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컨대 논증 글쓰기 훈련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거나 반대로 논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거나 등등”

처음에 해당 부분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학생의 글쓰기 능력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인가? 글쓰기 훈련이 잘 되어 있으면 어쩔 건데? 내가 훈련을 시켰나?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어쩔 건데? 내가 훈련을 시킬 건가? 논증 에세이 피드백이라는 것은 글이 이렇다 저렇다,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고 어떤 부분을 추가해야 하는 정도만 써주면 되는 것 아니었나?

업무 지침 문서를 받고 몇 달 뒤, 나는 그 선생님이 문서에 왜 그런 내용을 넣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당사자 면전에서 말이다.

여러 전공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어떤 대학원생이 대학원을 다니면서 인간적 모멸감을 느꼈던 경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 대학원생이 말한 인간적 모멸감은 결과물의 평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어떤 수업에서는 담당 교수가 과제물에 대해서 “이것은 글이 아니다”라고 했고, 다른 수업에서는 담당 교수가 과제물을 보고 해당 학생의 능력에 관한 언급을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다른 대학원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다른 과에서 수업을 들을 때 학생이 다른 학생의 능력을 언급하면서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 같았어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약간 놀랐다. 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다녔을 때와 비교하면 학과 내 다른 전공이든 아예 다른 과든 훨씬 분위기가 우호적이고 부드러운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철학과에서는 누가 글을 쓰면, 마치 제품 내구성 시험을 하듯, 이렇게 한 번 들이받고 저렇게 한 번 들이받고 위에서 떨어뜨려 보고 불에도 구워보고 추운 데서 얼려도 보고 토막도 내보고, 하여간 이게 살아남나 안 남나 하는 식으로 시험한다. 그에 비하면, 다른 전공이나 학과에서는 지나치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다른 전공인 내가 봐도 너무 말이 안 되어서 ‘저 사람들은 동료가 저걸 저렇게 진행하는 것을 그냥 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 안 되는 것을, 마치 고양이들이 서로 털을 골라주듯, 이렇게 살려봐라 저렇게 살려봐라 하며 본의가 아니겠지만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결과물 평가 과정에서 모멸감을 느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물론, 철학과에서도 괴로워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다. 잘 하는 사람도 괴로울 수 있는 판인데, 이렇게 해봐도 안 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 되면 안 괴로울 수가 없다. 그래도 인간적 모멸감을 느꼈다는 사람은 거의 못 봤는데, 아마도 사람들이 글을 까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글을 누가 썼는지는 관심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모자라도록 글을 까고 또 까는데 그 글을 누가 썼는지 그게 알 바이겠는가? 글이 가루가 된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 능력이야 굳이 남이 말을 안 해도 자기가 알겠지만, 일단 가루가 된 것은 내가 쓴 글이지 나는 아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의 능력을 언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아마도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현재도 능력이 없고 앞으로도 능력이 안 생길 것이어서 매몰 비용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그만 두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는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방해요소 때문에 능력이 발현하지 못하는 것뿐이어서 그만 두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다면 학생의 능력을 언급해서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아마 없을 것이다. 결과물을 가져오면 결과물을 평가하면 된다. 결과물의 평가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 된다. 그렇게 했는데도 학생에게 나아지는 것이 없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학생의 능력을 언급한다고 해서 학생의 능력을 키워줄 수 있나? 그런 능력이 있으면 마법사이지 선생이겠는가?

어쩌면 본의 아니게 학생에게 모멸감을 주는 선생님들은 인간적으로 나빠서가 아니라 의욕이 과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선생님들이 손댈 수 있는 것은 학생의 능력이 아니라 학생의 능력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인데도, 학생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또 대학원생의 능력이라는 것은 헬스 트레이너가 고객의 근육을 키우듯이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답답한 마음에 학생의 능력을 언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글이 아니다”라고 말한 경우만 봐도 그렇다. 현대미술도 아니고, 그게 글이 아니면 회화이겠는가 조소이겠는가? 어떤 글이 망했을 때 왜 망했는지만 찬찬히 짚어주면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학생은 ‘아, 내 글은 글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될 텐데, 그렇게 망한 부분을 짚어준다고 해서 금방 능력이 길러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한 사실을 선생님들이 아니까, 급한 마음에 “이것은 글이 아니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래서 그 글이 나아지는가?

그래서 평가 과정에서 학생이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학생에 대한 심리적 거리두기일지도 모르겠다. 학생의 능력 같은 것은 모르겠고 학생의 능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나 까보자 하는, 그러한 거리두기가 오히려 과도한 의욕을 가지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겠다.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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