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ward Grant (2006), Science and Religion, 400 B.C. to A.D. 1550: From Aristotle to Copernicus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pp. 1-32. ]
1. The Middle Ages: A Time of Ignorance and Barbarism? Or a Period of Striking Innovation?
1.1. Contrary to Traditional Misconception, the Middle Ages Was an Innovative Period
2. Religion and Science among the Greeks prior to the Emergence of Christianity
2.1. The Role of Religion in Greek Science
2.2. Science and Natural Philosophy in the Ancient and Medieval Periods
2.3. Religion and the Mathematical Sciences
3. The Propagation of Science
4. Brief Descriptions of Chapters 2-8
1. The Middle Ages: A Time of Ignorance and Barbarism? Or a Period of Striking Innovation?
1-2
이 책은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후 1550년경까지 과학과 종교의 관계의 역사를 다룸.
과학과 종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시기까지 시대에 따른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살펴봄.
2-4
그랜트는,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이해했던 기존 견해와 달리 ‘혁신의 시대'라고 볼 수도 있다고 주장함. 중세에 대한 기존 비판과 함께 중세에 이루어졌던 혁신과 진보, 기독교와 과학을 함께 다루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함.
르네상스의 학자들은 그때까지의 유럽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
1)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포함하는 기원후 4세기까지
2) 400-1500년대까지의 중세
3) 이후 풍요로운 '르네상스’
쓸모 없고 미신적인 중세와 자신들을 대비하려고 함.
4-5
중세에 새로운 아이디어의 탄생은 물론 유럽 밖의 영토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은 19세기에 들어서 생겨난 것으로, 중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였음.
5
중세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몰랐다?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로 신대륙을 발견하고, 이후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은 거짓이며, 중세에 교육받은 모든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On the Heavens>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습득했음.
5-6
그랜트는 이러한 중세에 대한 비판 중 스콜라주의 논리학과 신학에 대한 비판에 집중함.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1450년대까지 중세 대학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145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리스 문헌이 번역되고, 그 지배에 도전하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는 등 권위가 위협받게 됨.
6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 논평하던 스콜라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논리학 그 자체에 얽매인다고 비판했던 Francesco Petrarch (1304-1374)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짐.
Lolenzo Valla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을 비판함.
6-7
16세기에 들어서면서 Erasmus, More, Vives 등 저명한 학자들이 스콜라주의 논리학과 신학을 공격함.
Erasmus는 당시 학자들이 제기했던 황당한 질문을 조소하는 방식으로 비판
7-9
Vives는 단어의 순서를 바꿔서 그 의미를 다르게 하곤 했던당시의 논리학자들을 비판함.
당시 스콜라주의 논리학자들은 단어의 순서를 바꿔 문장의 뜻을 다르게 했는데, 라틴어는 단어의 순서를 바꿔도 문장의 뜻이 달라지지 않는 언어였기에 이러한 도치는 스콜라주의 논리학자 이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고 오히려 조소의 대상이 됨
9
Martin Luther는 비판을 모아 97개조 반박문을 출판함.
이러한 비판은 19세기까지도 왕성하게 이어짐.
9-11
논리학, 신학과는 달리 자연철학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많은 편이 아니었음.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에 대한 비판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17세기 말이 되면 그 권위를 거의 잃음.
갈릴레오는 신경이 심장이 아닌 뇌에서 시작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Dialogue〉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를 대표하는 인물인 심플리치오(Simplicio)를 등장시켜 주장을 반박하고, 자신의 이론을 설명함.
1.1. Contrary to Traditional Misconception, the Middle Ages Was an Innovative Period
12-13
그랜트는 중세의 혁신으로 안경, 나침반, 시계, 대포, 크랭크, 인쇄기 등의 발명품과 대학의 탄생으로 인한 고등 교육의 시작을 꼽음
특히 은행과 현금, 수표, 보험의 상업 분야의 혁신이 향후 500여 년간의 발전의 기틀을 닦았음
콜럼버스 이전 유럽의 탐험가들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달했음
그랜트는 중세의 혁신적 성과 또한 제시하면서, 이러한 성과가 기독교 문명 내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종교와의 관계를 제대로 다룬 적이 없기에 이 관계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함.
특히, ‘이교도 그리스인에 의해 이뤄진 자연철학이, 분명히 기독교적 교리와 충돌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충돌을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고, 그 논쟁의 양태가 어떠했는지 상호작용을 자세히 분석할 것을 제안함.
2. Religion and Science among the Greeks prior to the Emergence of Christianity
13-14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 그리스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어땠는지 살핌.
고대 그리스에서 있었던 과학과 종교의 충돌 사례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우주론을 설명한 뒤, 고대와 중세의 과학과 자연철학의 모습을 제시함.
2.1. The Role of Religion in Greek Science
15-16
과학과 종교의 충돌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태양이 신성하지 않고 단지 뜨거운 금속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를 추방한 것
3세기경에는 Aristachus가 우주의 중심이 태양이라는 주장을 펼쳐 기소당함.
비록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우주론’과 관련된 분야에서 종교와의 충돌이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함.
16-17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Demiurge라는 신을 등장시키며,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에서부터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며 목적론적인 우주론을 제시함.
플라톤에게 신이 하나인지 다수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자연 현상의 묘사와 설명에 주의를 기울임.
17-18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인과관계를 통해 신의 개념에 도달함.
운동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은 Unmoved Mover 또는 Prime Mover라고 불리는, 그 자체로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아 완벽한 존재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세상을 창조하지 않다는 점이 플라톤의 신과 다른 점
18-19
프톨레마이오스는 수학만이 확실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천문학이 수학의 한 분야라고 주장함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는 종교나 의식에 관심이 없었고, 불변의 측면에서 우주의 신성함을 인정하는 데 그침.
이렇게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신을 숭배하지 않았고, 신이 있더라도 추상적이었기에 그것을 분석하는 신학은 존재할 수 없었음.
2.2. Science and Natural Philosophy in the Ancient and Medieval Periods
2.3. Religion and the Mathematical Sciences
24-
그랜트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사를 다룰 때, ‘과학'이 자연철학'을, 종교’는 ‘신학'을 의미한다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함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천문학이나 광학과 같은 분야가 자연철학과 구분되어 중간과학(mediae scientiae) 또는 수학과학(scientiae mathematicae)라고 불렸다고 하며, 근대와는 다른 모습을 띠었던 당시의 과학(자연철학)과는 달리 이러한 수학과학이 수학적으로 엄격하고, 경험적인 증거를 토대로 논문이 작성되었다고 설명함.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과학'이라는 분야가 19세기가 아닌, 중세 후기 한정된 의미(수학과학)로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
따라서 종교와 과학, 즉 신학과 수학과학의 관계를 고려해서 생각했을 때, 신학이 수학과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음.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의 수학적 해석과 베이컨의 광학 등이 그 예시
그러나 여기서의 수학과학과는 달리 자연철학은 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봄.
3. The Propagation of Science
26-
인쇄기 발명 전, 고대와 중세 시기 과학과 자연철학의 보급은 어렵고 불확실한 과정이었음.
수 세기에 걸친 필사로 인해, 누락과 생략이 축적되었고 동일한 사본 제작은 사실상 불가능.
그러나 인쇄술의 발전 이후 같은 출판사에서 인쇄된 책의 경우 동일한 사본을 읽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고 과학과 의학에 대한 지식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감.
이러한 혁신으로 인해 과학 전파의 속도는 굉장히 크게 증가할 수 있었음.
4. Brief Descriptions of Chapters 2-8
2장: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구였고, 어떤 글을 썼으며, 17세기까지의 과학사와 자연철학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3장: 로마제국에서의 과학과 자연철학, 기독교 등장 첫 세기 그리스 과학과 자연철학과 마주한 기독교와 각각의 발전
4장: 기독교 등장 첫 6세기 동안 그리스 철학과 과학에 대한 태도, ‘신학의 하녀’라는 개념, 창조를 설명하기 위한 자연철학
5장: 7-10세기 서유럽 상황, 8-12세기 지적인 발전, 새로 등장한 cathedral school의 커리큘럼 등.
6장: 서유럽으로 유입된 새로운 지식, 번역, 중세 대학의 구조와 커리큘럼, 자연철학에 대한 교회의 부정적 반응
7장: 14-15세기 자연철학과 신학의 상호관계, 신학적 종교적 관념이 자연철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8장: 비잔틴 제국, 이슬람 사회, 서구 유럽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 비교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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