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31

옆집의 음모



2019년 5월, 농로에 물류창고 우수관을 묻는다면서 건설업체 사람들과 중장비가 우리집 사유지에 들어와 흙을 파헤친 적이 있었다. 당시 옆집에서는 이 일에 대하여 우리집과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옆집 아저씨(막내 아들)는 서면으로 시청에 민원도 넣었고 담당자인 허가민원2과 주무관에게 항의 전화하여 통화 내용을 녹음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당시 그 아저씨가 민원을 그렇게 잘 쓴 것도 아니었고 여러 쟁점을 나열하기만 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 때까지 한 번도 민원을 넣은 적이 없었던 터라 민원은 원래 저렇게 넣는가 보다 했다. 이장 아저씨는 막내 아들이 뭘 참 잘 안다고 감탄했고, 다른 아저씨는 그 집 며느리(막내 아들의 부인)가 공무원이라서 일을 잘 본다고 말했다.

나와 어머니와 옆집 아저씨(막내 아들), 이렇게 세 명이 농로를 둘러보다가 옆집 아저씨가 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길 옆에 길게 붙은 땅 있잖아요? 필요도 없는 땅인데 제가 사줄게요. 저도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제가 회사 다닐 때야 돈이 있지 정년 되면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사요.”

사준다니. 쓸모없는 땅이라니.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옆집 아저씨가 한 이야기 때문에 불쾌했다고 말했다. 땅을 산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꼭 사준다고 말하지 않나, 멀쩡한 땅인데 필요 없는 땅이라고 하지 않나, 어머니로서는 불쾌했던 것이다.





그 필요도 없는 땅이라는 것은 농로(검은선) 옆에 붙은 좁고 긴 땅(빨간선)이다. 수로 바로 옆에 붙은 그 땅은 대부분 45도 정도의 비탈로 되어 있어서 농사를 짓기도 힘들고 건물을 짓기도 힘들고 길로 쓰기도 힘들다. 그래서 쓸모없는 땅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옆집 사람들의 땅(파란선)은 수로 맞은 편에 붙어 있다.

옆집 아저씨가 사준다고 한 그 땅을, 아버지는 10년 전쯤 옆집 아저씨한테 팔려고 했었다. 아버지는 경영학과를 졸업하기는 했으나 경영 능력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분이라서 보나 마나 그 땅을 헐값에 팔아넘기려고 했을 것인데, 다행히도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쓸모도 없는 땅을 왜 사느냐며 옆집 아저씨가 매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옆집 아저씨는 아버지가 땅을 사달라고 할 때는 땅을 안 사주고 이제 와서야 필요 없는 땅을 사주겠다며 요구하지도 않은 호의를 보였다.

옆집의 호의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옆집 아저씨(막내 아들)는 물류창고 공사를 막고자 행정사를 살 것이며 비용(250만 원)도 자기네가 전부 부담하겠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옆집에 고마워했다. 비록 그 전에 말은 싸가지 없게 하기는 했으나, 그건 그거고 이건 감사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청 공무원인 옆집 며느리의 직장 상관이 얼마 전에 정년퇴직했고, 퇴직 후 행정사 개업을 했다고 한다.

며느리와 행정사는 정말로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옆집에서 행정사와 만나기로 해서 가보았더니 행정사는 막내 아들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며 반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낌새가 이상했다. 약속시간 몇 분 전에 옆집에 가다가 동네를 둘러보던 행정사와 옆집 막내 아들을 마주쳤는데, 그 때 행정사가 옆집 막내 아들에게 하던 말을 얼핏 들었다. “◯◯아, 여기는 농사짓기에는 너무 아깝다.”

정◯창 행정사는 우리에게 아예 대놓고 이번 기회에 농로를 확장해서 정식 도로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물류창고의 침범을 막기 위해 행정사를 부른 줄 알았는데 아예 밭에 길을 뚫자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불쾌해하자 옆집 아저씨는 흄관을 묻는 조건으로 농로를 정식 도로로 만들고 아스팔트로 포장해달라고 업체에 요구하자고 말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협상이 결렬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업체에서 요구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심지어 행정사는 기부채납을 권유하기도 했다. 정식 도로가 되려면 폭이 6미터는 되어야 하는데, 농로는 폭이 3미터이니 그 옆에 붙은 땅을 내놓으면 도로가 생길 것이고, 도로가 생기면 주변 땅값이 오른다는 것이다. 도로가 생기면 주변 땅값이 오른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런데 기부채납은 갖다 바친 땅의 값보다 나머지 땅의 값이 훨씬 많이 오를 때나 하는 것이다. 우리집은 코딱지만 한 집과 손바닥만 한 땅이 전부이라서 기부채납을 해봐야 이득 볼 것이 없다. 옆집도 그런 사정을 뻔히 알 텐데, 우리보고 기부채납을 하라고?

옆집의 속셈을 다 알았으니 행정사의 말을 더 들을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무슨 이야기를 더 하나 궁금해서 더 들어보기로 했다. 어머니는 이미 울상이 되었다. 어머니는 행정사가 잘 처리해줄 것으로 기대했을 텐데 행정사가 그딴 식으로 말하니 앞으로 건설업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행정소송으로 공사가 취소될 수는 없겠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행정사는 행정소송을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고 소송에서 져서 돈 물어내다 망한 동네도 많다고 답했다. 행정소송을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것은 맞지만, 소송에서 져서 동네가 망했다는 것은 개소리다. 건설업체에서 공사 잘못해서 망할 확률이 훨씬 높다. 측량한 것을 보니 업체가 우리 땅을 침범한 것이 분명하다는 어머니의 말에, 행정사는 오차가 5미터도 나는 경우가 있어서 괜찮다고 답했다. 요새는 기술이 좋아져서 순항미사일도 명중 오차가 5미터 이내인데 어떻게 측량 오차가 5미터나 나겠는가? 측량 오차가 5미터나 날 정도였다면 건설업체는 내 땅이 아니라 옆집 논에 흄관을 묻었을 것이다. 우리가 땅을 내놓으면 다른 사람만 좋은 것 아니냐는 어미니의 물음에, 행정사는 윗논에 물이 차면 아랫논까지 다 물이 가게 마련이며, 도로를 만들어서 땅값이 오르면 자식한테도 좋은 일이니 잘 판단하시라고 말했다.

행정사와 면담하고 나서 며칠 후, 옆집 막내 아들은 밝은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행정사가 그러는데 허가부서 공무원들이나 건설업자들이나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서 안 된답니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또 불쾌해했다. 안 되면 안 되는 것이지 왜 그렇게 좋아서 생글생글 웃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또 얼마 뒤에 옆집 막내 아들은 아래 논 주인들이 1천만 원씩 받고 물류창고 주인과 합의하기로 했으니 우리집만 합의하면 된다고 어머니께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대번에 거짓말임을 알았다. 물류창고 주인은 주민들에게 그런 식으로 돈을 쓸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규모의 공사라면, 웬만한 시골 동네의 경우 잘 하면 1천만 원, 못 해도 3천만 원이면 마을 사람들과 합의할 수 있다. 물류창고 주인은 그 돈도 아까워서 우리집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사유지에 냅다 들어와서 흄관을 묻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논 주인들과 합의한다면서 5천만 원을 쓴다고? 어머니는 논 주인들을 만나서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 논 주인들은 물류창고 주인과 연락한 적도 없었다.

조금 더 지나자 옆집에서는 땅값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까지 했다. 평당 30만 원에 사겠다고 했다. 시세를 고려한다면 적정 가격이기는 했으나 우리로서는 땅을 팔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옆집 아저씨의 누나가 어머니를 찾아와서 그 땅을 팔라고 했다. 어머니는 자기 명의로 되어 있지만 실소유주는 아들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막내 아들의 부인이 찾아와서 그 땅을 팔라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 땅이라서 못 판다고 답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말했으면 나를 찾아와서 거래 의사를 물어야 할 텐데, 옆집 사람들은 어머니만 붙들고 땅을 팔라고 했다. 내가 옆집에 가서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어머니가 말려서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옆집 아저씨는 왜 그토록 몇 평 되지도 않는 우리집 땅을 탐낸 것인가? 지도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옆집 사람들이 소유한 부동산 중 일부를 지도에 파란선으로 표시해보았다. 옆집 형제자매들이 경쟁적으로 동네 땅을 사들이고 있다고 하니 지도에 표시한 것보다는 실제 소유한 토지가 더 많을 것이다.





파란선으로 표시한 곳은 모두 계획관리지역의 농지이다. 농지라고 해서 다 같은 농지가 아니다. 절대농지는 형질변경이 거의 안 되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거의 없는 반면, 계획관리지역의 농지는 대지로 전환하기가 비교적 쉽다. 한국 사람들이 죄다 아파트에 환장이 나 있어서 부동산 투자라고 하면 보통 아파트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수익률만 놓고 보면 아파트보다는 대지가 높고 대지보다는 농지가 높다. 민주당 집권 같은 특수 상황이 아니면 아파트 가격이 단시간에 두 배 이상 뛰는 경우는 드문 데다, 아예 임대 업체를 차리지 않는 이상 1가구 2주택만 해도 세금을 때려맞기 때문에 개인이 아파트 투자만으로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대지는 보유 면적이나 필지 수 제한도 없는 데다 길만 잘 뚫어도 땅값이 두세 배는 금방 오른다. 농지는 이보다도 수익률이 높다. 그래서 장관 후보자들이 농사도 안 짓는데 농사짓는다고 뻥치다가 걸려서 곤욕을 겪는 것이다.

계획관리지역의 농지라고 해서 다 개발되는 것도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주변 여건이 안 맞아서 개발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주택을 만들려면 상수도, 하수도, 도시가스, 전기, 진입로 등이 필요하다. 시골에서 개발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진입로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하수도이다. 어떻게든 진입로가 생기면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는데, 진입로 자체가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못한다.

지도에 파란색으로 표시한 곳을 개발하려면 정식 도로(보라색선)와 연결하는 폭 6미터짜리 진입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하얀색으로 표시된 마을안길은 폭이 3미터다. 어떻게 해야 마을안길의 폭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을까? 마을을 통째로 사면 간단하겠지만, 그건 신도시를 개발할 때나 하는 것이다. 길을 넓히면 주변 땅값이 오를 것이라고 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협조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땅을 팔지도 않을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폭 3미터씩이나 길로 내줄 리도 없고, 설사 땅을 거저 얻는다고 해도 도로를 만드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도로에서 가까운 곳의 농지를 개발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길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마을에 물류창고가 들어서기로 한 것이다.





녹색선으로 표시한 곳이 물류창고로 조성될 예정이었던 곳이다. 원래는 길이 없어 맹지였던 곳인데 구거를 이용해서 진입로를 확보했다. 계획관리지역의 농지를 개발할 때 구거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구거를 잘 활용하기만 해도 땅값이 달라진다. 요새는 구거 사용허가나 점유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물류창고 측은 어떻게 허가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끊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길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업체가 한국농어촌공사에게서 임대한 땅이어서 그렇게 표시한 것이다. 업체는 수로 위에 작은 다리를 만들고 2차선짜리 도로를 확보했다.






옆집으로서는 마을에 물류창고가 생긴다는 것이 다시없을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이제 물류창고와 파란선으로 표시된 땅을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폭 3미터짜리 농로도 건설업체가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임대했으니, 우리집에서 헬렐레 하고 땅을 내놓기만 하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폭 6미터짜리 진입로를 확보하게 된다. 10년 전에 쓸모없는 땅이었던 것이 구거 위로 도로가 뚫리면서 반드시 필요한 땅이 된 것이다.





옆집에서 우리집 땅을 노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노리고 있다는 것만 가지고 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또, 살다 보면 도움을 받아야 할 일도 있었으므로, 그 점을 가지고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던 2020년의 어느 날, 옆집에서 논(파란색 빗금 친 부분)에 약간만 흙을 쌓고자 하니 덤프트럭이 몇 번 지나가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마을안길의 일부가 우리집 사유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집의 허락을 받고자 한 것이다.





옆집에서 성토하고자 한 곳은 논으로 쓰고 있으나 지목이 대지이며 원래는 집이 있었던 곳이다. 옛날부터 집 자리였던 곳을 논으로 썼다가 다시 집을 짓는다고 하니 그걸 막기도 좀 그랬다. 옆집에서 땅을 팔라면서 어머니를 들볶기는 했으나 그동안 수상할 정도로 살갑게 굴었기 때문에 도로 사용을 허가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옆집 아저씨에게 농로 입구 쪽에 있는 논둑 일부(주황색선)를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나는 건설업체 진입을 막으려면 아무래도 입구 쪽부터 막는 것이 좋겠으며 그러려면 입구에 나무를 좀 심었으면 좋겠다고 옆집 아저씨에게 말했다. 옆집 아저씨는 물류창고를 막아야 한다면서 흔쾌히 허락했다. 땅을 빌려주면서 옆집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조카, 집을 걱정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나서면 안 돼. 젊은 혈기 때문에 다칠 수도 있어. 조심해.”

옆집은 성토작업을 할 곳의 이웃집(파란색 빗금 옆 갈색선)에도 허락을 구했다. 흙을 길 높이에 맞추어서 조금만 쌓겠다고 해서 그 이웃집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런데 조금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얼마나 쌓을 것이냐고 물을 때 구체적으로 몇 센티나 쌓을 것이냐고 물었어야 했다. 옆집은 조금만 쌓겠다고 해놓고는 그 이웃집의 지붕 높이까지 흙을 쌓았다.





그 이웃집에서 항의하자 옆집 아저씨는 집을 사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억 4천만 원에 산 집인데 1억 7천만 원에 사준다고 했다고 한다. 매입 시점을 생각하면 값을 더 쳐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값을 깎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언제 살지는 약속하지 않았다. 그러니 집을 빨리 팔고 싶더라도 옆집 아저씨가 지금 돈이 없다고 하면서 값을 깎으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집이 파묻히다시피 한 것을 보니 나와 어머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럴 줄 알았다면 도로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옆집에서 팔라고 하는 땅을 팔면 동네에 난장판이 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난장판이 났는데도 여전히 옆집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어머니보고 필요도 없는 땅을 팔라고 했다. 어머니가 끝끝내 안 판다고 하니 어느 날은 옆집 딸이 팔기 싫으면 안 팔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 말은, 우리집에서 그 땅을 팔지 않아도 자기네가 사용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팔지도 않을 것이고 기부채납도 하지 않겠다는데, 어떻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가? 가능한 방법은 두 가지다. 강제수용과 점유취득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옆집에서는 자기네 집 옆의 논(파란색 격자)에 성토작업을 하려고 하니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게 무슨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아니고 또 길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웃집이 어떻게 당했는지 보았기 때문에 순순히 길을 빌려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웃집에 대놓고 “너네 같은 나쁜 놈들한테는 안 빌려준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시골은 원래 그런 곳이다. 옆집 막내 아들의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내 핑계를 댔고, 나는 지난번에 길 망가진 것을 보니 안 되겠더라, 하고 거절했다. 이 때가 2020년의 가을 쯤이었다.





내가 거절하고 나서 며칠 뒤, 아버지가 부동산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점심식사를 하다가 뜬금없이 땅을 그냥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 말에 나는 “그러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땅을 파느냐, 아버지가 제값 받고 땅을 판 적이 있느냐, 아버지가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동안 서로 말없이 밥만 먹었다. 아버지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옆집에, 집 짓게 해주자. ◯◯(옆집 딸)이가 암이라더라.”

아버지가 말을 꺼내기 며칠 전에도 어머니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다. 옆집 딸이 아버지와 고등학교 동창인데, 시골에서 꽃이나 키우면서 살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암이면 도시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꽃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면 된다. 왜 시골에 온다는 것인가? 살만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의학이 발달해서 웬만한 암에 걸려도 오래오래 잘 산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버지는 친구를 좀 잘 사귀시라”고 말했다.

내가 그 정도로 막았으면 옆집의 꿈이 좌절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옆집은 집이 흙에 파묻히다시피 한 그 이웃집을 포섭했다.

파란색 격자표시한 곳까지 덤프트럭이 진입하려면 북쪽 길이나 서쪽 길을 이용해야 했다. 내가 거부했으니 남은 것은 서쪽 길이었다. 옆집에서 서쪽 길과 얽힌 사람들을 매수했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았다. 시골 사람들은 소득 수준이 낮아서 도시에 비해 비교적 적은 돈에 매수되기 쉽다. 이제 남은 것은 집을 흙에 파묻다시피 한 이웃집이었다. 처음에 이웃집은 완강히 거부했으나, 집 옆에 쌓은 흙을 깎아준다는 약속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 때가 2020년 연말이거나 2021년 연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설날 직전이었던 2021년 2월 9일, 우리집에 지방법원에서 방해금지가처분이 왔다. 건설업체의 공사를 방해할 경우 1회당 5백만 원을 건설업체에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원래는 그렇게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없을 때 공사업체에서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일종의 행동요령까지 부모님께 알려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공사업체를 그런 식으로 어떻게 막겠느냐며 자의적으로 행동하다 결국 형사고발 당하여 150만 원을 벌금으로 냈고 그게 민사로 이어졌다. 내 말대로 행동했으면 법도 어기지 않고 건설업체의 진입을 막았을 텐데, 아버지가 분을 못 이기고 소리 지르고 막 뛰어다니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법원에서 공사방해를 하지 말라고 했다면 공사가 아예 진행되지 않게 하면 된다. 나는 1년 전인 2020년에 이미 구상을 다 세워두었다. 농로와 사유지의 경계 중 주요 지점에 경계 표시만 해도 중장비가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어느 지점이 취약하고 어느 지점이 중요한지도 다 파악하고 있었다. 2020년 늦가을에는 옆집으로부터 허가받은 곳에 예행연습 삼아 꽃사과나무를 옮겨심기도 했다. 줄기는 가늘지만 내 키보다 큰 나무였다. 나무를 캐고 옮기고 심으면서 큰 나무를 어떻게 옮겨심을지 대충 감을 익혔다.

마침 2021년 설날 연휴는 날씨가 따뜻해서 나무를 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무를 거의 다 혼자 옮겨 심었다. 어머니는 의지가 있었으나 힘이 약해서 나를 도울 수 없었고, 아버지는 의지도 없고 기술이 없어서 도움을 요청하면 안 되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밭에 꽤 큰 사철나무를 50그루 정도 심은 적이 있는데 두 그루만 살고 다 말라죽었고, 이후에 체리나무 묘목을 120그루 정도 심었는데 스무 그루 정도만 살고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다 죽었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재능이 없는 모양이다. 작년 2월부터 내가 심은 60그루 중 그 해 가을까지 안 죽고 살아남은 것이 80-90% 정도 되는데, 아마 아버지가 손을 댔다면 생존율이 크게 낮아졌을 것이다.

내가 혼자서 나무를 캐고 옮겨심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그런다고 건설업체를 막을 수 있겠느냐면서 괜히 고생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신경 쓰지 마시라고 하고는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설날 연휴 마지막날이었던가, 그 때도 나는 혼자서 나무를 캐서 옮겨심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방에 들어가니 아버지는 나보고 중간에 화내지 말고 자기 말을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해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건설업체에 대응할 두 가지 방법을 생각했으니 나보고 힘들게 나무를 옮겨심지 말라고 했다. 그 두 가지 방법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우리 동네 물류창고 공사와 관련해서 한국농어촌공사에 관한 국정감사를 신청하는 것이다. 고작 14억 원짜리 물류창고 공사를 가지고 민원도 아니고 국정감사? 화를 낼 뻔 했는데 일단 참았다. 두 번째는 우리집 땅(빨간선)과 옆집 논(파란선) 사이에 흐르는 수로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2019년, 옆집 아저씨가 시청에 민원을 넣을 때 문제 삼았던 것은, 물류창고에서 배출하는 물이 논 주인들의 허락 없이 논으로 흘러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담당 부서의 답변은, 아무리 사유지라고 하더라도 관행적 수로가 지난다면 사유지 소유자가 임의로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후에 민원을 넣으면서 관행적 수로는 핵심이 아님을 알게 되어서 그 부분을 문제 삼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관행적 수로를 가지고 문제 삼았다.

아버지의 논변은 대충 다음과 같다. 관행적 수로를 없애면 물류창고가 우수관 공사를 할 법적인 근거가 없어진다. 그런데 관행적 수로를 그냥 없애면 불법이다. 정당한 사유를 가지고 관행적 수로를 막으면 합법이다. 옆집 아저씨 논에 성토 작업을 할 때 우리 땅도 같은 높이로 흙을 메우면서 토지 활용을 위해 관행적 수로를 없앴다고 하면 정당하게 관행적 수로를 없앨 수 있다. 공사업체에서 길을 쓰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여 민사소송을 취하한 다음, 옆집 논 성토 작업 때 관행적 수로를 없애서 공사를 막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계획이었다.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옆집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자기 생각이라고 답했다. 나는 정말 그게 아버지의 발상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자기 생각이라고 답했다. 아버지의 답변을 듣고 나는 하도 답답해서 아버지보고 “물류창고 공사 막는 방법이라고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옆집에 땅이나 갖다 바치는 것이냐? 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으냐?”고 말했다.

물류창고 우수관 공사에서 관행적 수로의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은 우리 집 사유지와 옆집 논의 경계에 있는 수로가 아니라 마을안길 아래에 묻혀 있는 구거이다. 성토 작업을 아무리 해봐야 그 부분을 못 없애면 관행적 수로는 그대로 살아 있게 된다. 물류창고 우수관은 농로를 타고 죽 내려온 다음 한국농어촌공사 소유의 농로로 뚫고 나와서 구거로 연결된다. 그러니 한 번 농로가 뚫리면 구거까지 한 방에 뚫리고 그 사이에 사유지도 없으니 우리집으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우수관이라고 했던 것은 생활하수가 흐르는 하수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집 사유지는 도로로 강제수용될 수도 있다. 옆집의 점유취득까지는 어떻게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식도로에서 물류창고까지 이미 길이 뚫렸고 물류창고에서 농로로 이어지니 시에서 어떠한 사유로 도로를 만들고 우리집 사유지를 강제수용할 경우 이를 막기 어렵게 된다. 그러니까 아버지 말대로 하게 되면, 동네는 동네대로 난장판이 나고 우리집은 우리집대로 땅을 빼앗길 것이었다.





내가 설명하고 나자 아버지는 그러냐고 하고는 두 눈만 꿈뻑꿈뻑 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하도 짜증 나서 그 발상이 정말 아버지의 발상이냐, 옆집 아저씨가 시킨 것이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자기 발상이라고 했다. 원래 같으면 화를 냈어야 하지만 일 하느라 힘이 없어서 화를 내지 않고 아버지 방을 조용히 나왔다.

그렇게 설날 연휴에 나는 일종의 응급조치를 끝냈고 물류창고의 우수관 공사는 이후에도 재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한참이 지나도록 아버지는 그게 나 때문에 그런 것임을 믿지 않았다.

설날 연휴가 끝난 후 옆집 논 성토 작업이 시작되기로 했었다. 옆집에서는 어머니를 통해 원한다면 우리 땅까지 성토작업을 해주겠노라고, 그렇게 하면 우리집 땅도 늘어난다고 했다. 어머니는 우리집 땅 늘려주지 않아도 되고 경계나 침범하지 않으면 된다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집은 분명히 그렇게 의사를 밝혔는데, 포크래인 기사가 우리집 땅에 흙을 쌓고 있었다. 그게 2021년 2월 18일(목) 늦은 오후였다.

내가 그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날 우리집 고양이 화천이를 찾으려고 하루종일 마을을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당시 화천이는 머리에 혹이 나서 동물병원에서 치료받고 목에 고깔을 낀 상태였다. 고깔을 낀 화천이의 움직임이 불편해서 집에 들어와서 잠시 지내도록 했는데, 잠시 방심한 사이 화천이가 나가서는 그 다음날이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목에 고깔이 낀 채로 나갔으니 어디 끼어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렇게 하루종일 화천이를 찾아 온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옆집 성토작업 중 포크래인 기사가 우리집 땅에 흙을 쌓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와 어머니는 곧바로 공사를 제지하고 지금 뭐 하고 있느냐고 포크래인 기사에게 따졌다.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리집 땅을 늘려주는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화천이도 집을 나가서 심란해 죽겠는데 옆집까지 그러고 있다니. 옆집 아저씨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나는 옆집 아저씨(막내 아들)한테 공사 전에 경계측량부터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옆집 아저씨는 성토 작업 후 자기 누나와 토지를 분할할 예정이어서 성토 이후에 경계측량을 할 것이며, 성토 작업 중 경계를 침범하면 원상복구 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우리보고 성토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라고 했다. 자기네 땅에 성토 작업을 하는데 왜 우리가 돈을 내야 하는가? 내 땅을 침범할 계획이 없는데 경계에서 멀리 떨어져 흙을 쌓으라고 하니 비용 중 일부를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땅과 옆집 논 사이를 흐르는 도랑도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있나. 그러나 옆집 아저씨가 나보다 나이도 한참이나 많은 데다 내가 성격이 소심하기도 하고 옆집하고 직접적으로 다투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좋게 좋게 넘어갔다.









그런데 도랑이 옆집 소유인 것은 맞는가? 옆집에서 성토 작업이 끝난 후에야 측량을 한다고 해서 70만 원을 내고 측량했다. 도랑의 절반 이상은 우리집 소유였다. 측량 결과가 나오자마자 측량용 빨간 말뚝 옆에 경계 표시를 했다.






2021년 3월, 옆집 남매의 토지 분할을 위한 경계 측량을 하는 날에 나와 어머니도 측량 현장에 나와 보았다. 옆집 아저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런 골짜기가 생길 것이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옆집 아저씨에게 흙이 무너져서 배수로가 막히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옆집 아저씨는 어두운 얼굴로 “그러니까 여기(토지의 경계)에 흄관을 묻었어야 하는 건데...”라고 했다. 이후에 나는 멀리서도 한눈에 토지 경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말뚝과 현수막 끈을 이용하여 표시했다. 농로에 했던 것처럼 옆집과의 경계선도 점선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흙에 파묻힌 이웃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옆집은 이웃집 바로 옆에 쌓은 흙을 파서는 그 옆으로 옮겨 쌓았다. 그 결과 흙의 높이가 더 높아졌다. 게다가 주변을 조경석으로 둘렀다. 이웃집으로서는 분했겠지만 이번에도 흙을 얼마나 깎을지 구체적으로 합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깎아준다는 데 합의했기 때문에 뭐라고 항의할 수 없었다. 덤프트럭이 500회나 왕복하니 마을안길인 서쪽 길은 작살났다. 그런데도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골은 그런 곳이다.






한편, 나는 아버지와 수가 틀릴 때마다 “그러니 자기 손으로 옆집에 땅을 갖다바칠 생각이나 하지”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뭐라고 했던 것일까? 결국, 아버지는 관행적 수로를 없애는 구상이 옆집 아저씨가 가르쳐준 것임을 실토했다. 그 말을 듣으니 또 짜증이 났다. 나는 아버지에게, 옆집 아저씨가 땅 내놓으라고 그러는데 그걸 듣고 좋다고 나한테 말한 것이냐, 어린애한테 사탕 내놓으라고 하니까 사탕 내놓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한마디 했다.

옆집은 논을 밭으로 만들었으니 그에 걸맞게 농사를 지어야 했다. 논을 밭으로 형질변경 해야 이후에 밭을 대지로 형질변경 할 수 있는데, 밭으로 만들기만 하고 밭농사를 짓지 않으면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애써 만든 밭을 강제매각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원래는 옆집에서 주말농장을 한다고 했었다. 주말농장을 운영해도 농지를 취득할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도시도 아니고 시골에서, 널린 게 논밭인데 누가 주말농장을 하겠다고 오겠는가? 결국 옆집 사람들은 주말마다 죽을 둥 살 둥 농사를 짓게 되었다.

아무리 농사꾼이라고 해도 하루종일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7-8월에는 햇볕이 가장 뜨거울 때 쉬고 아침이나 오후 늦게 나와서 일한다. 가장 더운 때 괜히 일하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지거나 죽는 수가 있다. 그런데 옆집은 주말에만 일하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일했다. 체력들이 대단했다. 옆집 딸은 암이라고 하더니, 일하는 것만 보면 나보다 훨씬 건강한 것 같았다. 7-8월 낮 12시에도 농사일을 하는 집은 동네에 딱 두 집이었는데, 둘 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집이었다. 자산 가격이 상승하니 힘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따로 있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래 같은 흙으로 성토 작업을 했다. 멀쩡한 논에 모래흙을 들이부은 것이다. 얼마나 땅이 척박한지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정상적인 흙이 아니라 무기성 오니일 가능성도 있다. 요새는 건축용으로 쓸 모래가 거의 고갈되어서 돌을 부수어 모래로 만들어서 쓴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무기성 오니다. 15톤 덤프트럭 한 대 기준으로 흙을 가득 실어오면 7-8만 원은 내야 한다. 옆집에서 성토 작업을 위해 덤프트럭 500대분의 흙을 동원했으니 흙값으로만 3500만 원에서 4000만 원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흙이 아니라 무기성 오니였다면 그보다 저렴하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풀도 잘 안 나는 모래땅인데도 거름을 들이붓고 주말에 하루 종일 일하더니 농사가 제법 잘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도 아니고 어떻게 모래땅에서 저 정도로 농사를 짓나 싶을 정도였다.

아마도 옆집은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021년 말에는 한전에 의뢰해서 성토한 논 근처에 전봇대를 심었다. 농업용 컨테이너도 가져다 놓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1300만 원짜리라고 한다. 집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굳이 일하다 쉬겠다고 돈을 들여서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 옆집에서는 하수를 배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정화조와 하수관 묻을 자리까지 마련해놓았음을 확인했다. 동네 할머니들은 컨테이너가 꼭 상여처럼 생겨서 기분 나쁘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뜬금없이 궁금한 것인데, 옆집 며느리는 도청에서 무슨 일을 할까? 옆집에서는 다른 집들과 분쟁이 있을 때마다 “우리집 며느리가 도청 공무원이다”라고 엄포를 놓는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이 싸울 때 “우리 아빠가 태권도 검은 띠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며느리가 도청 공무원인 것이 어떻게 상대방에 대한 위협이 되는지 도시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는데, 시골에서는 직급이 높지 않더라도 공무원이라는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위세를 부릴 수 있다. 고위 공무원일 필요도 없다. 9급에서 시작해 현재 6급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 그건 그렇고, 어느 부서에서 일하고 있을까?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매우 공교롭게도, 도청 건설국 소속이었다.

(202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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