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8

개나 소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현상

요즈음은 개나 소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것이 유행인 모양이다. 누가 페미니스트인지 알려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약간 질문을 바꾸어보자. 누가 과학자인가? 과학을 하는 사람이다. 과학은 무엇인가? 과학자가 하는 학문 활동이다. 이런 식으로 정의가 순환하면 안 되니까 과학과 과학자 중 한 쪽에 우선성을 부여해야 할 텐데 어디에 우선성을 부여해야 하는가? 쿤에 따르면, 과학자에 우선성을 부여해야 한다. 과학이 무엇인지는 과학철학자들끼리도 쉽게 합의가 되지 않는 문제지만 과학자들은 과학 공동체에서 과학 활동을 한다. 어떤 규범을 따라야 하는지 명시되지 않아도 과학자들이 과학 공동체에서 과학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명시적인 규칙을 따라서 과학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과학 공동체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과학교과서이다. 과학도들은 과학교과서를 통해 과학을 배우며 학자가 될 준비를 한다. 교과서로 과학을 배울 때는 과학적인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인 정의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것이 적용되는 모범 사례와 함께 배운다. ‘힘’이나 ‘질량’ 같은 개념을 배우는 것은 사전적 정의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연습 문제를 풀면서 그러한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익히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실험 기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실험 결과가 나타내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이 교과서에서 배운 개념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배운다.

이는 누가 어떤 주의자인지를 이야기할 때도 응용할 수 있다. 누가 사회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 공동체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사회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있을 것이다. 팽팽하게 경합하는 이론들 중 어느 것이 옳은지 개념적인 탐구를 한 다음에 사회주의자가 된다면 아마도 사회주의자가 되기 전에 늙어죽을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을 익히는 것은 사전적인 개념을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에 대한 응용을 하면서 익히는 것이다. 어떤 응용이 적절한 응용인지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사례들이 축적되고 모범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가 구분되며 정교하게 되고 이것이 그 다음 이론 서적에 반영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주의에서도 어떤 주의에 대한 정의보다 어떤 주의자 공동체가 우선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스트인가? 그들에게 이론적인 기반 같은 것은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어느 공동체에서 무슨 활동을 하는가? 트위터 활동이다. 참 대단한 활동이다. 트위터에서 트윗트윗 하는 것을 퍽이나 대단한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든 자신의 활동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든 그건 자유지만, 여가 활동은 여가 활동일 뿐이니까 주제 넘게 까불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현상 자체는 좋게 본다. 그것은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 눈에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것, 무엇인가가 바뀌는 것이 좋아 보이거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대체로 센 쪽에 붙으려고 하기 마련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가 넘고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에 일체감 비슷한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 중 의식 있어서 그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 중 대부분은 노무현 대통령 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했을 것이고 분위기에 따라 편승하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의식적 각성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쪽으로 힘이 쏠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나 소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현상 자체는 좋은 징표다. 페미니즘 이론가나 활동가들이 그러한 사람들의 무지나 허영심을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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