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11월 28일) 고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할 때 업체 직원이 교실에 와서 나에게 인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 학생들이 많이 남았네요?” 시작할 때 여덟 명밖에 안 되는데 여기서 더 줄어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방과후학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쳤는데 그 때는 스물네 명으로 시작해서 일주일 만에 세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방과후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가르치니까 수업 한 번 듣고 학생들이 1/8로 줄어든 것이다. 고등학생들에게 교육학을 가르쳐서 어디에 쓰나 모르겠는데, 아마도 해당 강사는 가뜩이나 재미없는 것을 굉장히 열심히 가르친 모양이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주제 파악이다. 대학원생이 교수 같은 마음으로 가르치면 교수보다 못 가르치면서 교수보다 더 재미없게 가르치게 된다. 많이 가르칠 것도 없고 열심히 가르칠 것도 없고 고등학생들이 알아들을 만큼만 가르치면 된다. 학교에서 내신 부풀리려고 방과후학교를 하는 건데 수능에도 안 나오는 것을 가르치면서 교사도 아닌 사람이 학생들한테 교사인 척 하면 안 된다. 나는 학생들이 수업 중에 음식물 먹는 것, 자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다른 과목 공부하는 것 등을 다 허용했다. 단, 떠드는 것은 금지했다. 나의 노동 강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떠들기는 했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한테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어른인 내가 아이들한테 진실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말했다. “방과후학교를 왜 하냐? 내신 부풀리려고 하는 거 아니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예습 복습 같은 거 다 필요 없고 저녁 시간에 와서 그냥 좋은 이야기 듣는다 생각하고 듣고 가든지, 잠깐 쉬었다 간다고 생각하고 왔다 가든지 해라. 그런데 떠들지는 마라. 내 노동 강도가 높아지니까.”, “철학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철학이냐. 먹고 사는 데 도움 되냐, 생애소득이 증가 하냐? 그런 거 없다.”, “고등학생이 무슨 놈의 과학철학이냐, 과학이나 잘 하지. 너네 과학 잘 하냐? 모의고사 보면 1등급 나오냐? 과학철학이 중요한 게 아니고 모의고사 1등급 나오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다. 학교에서는 11월 28일 이후 일정은 학생들하고 알아서 협의해서 처리하라고 했다. 서류상으로는 일정이 2주 남았고 학교 일정상 실질적인 일정은 1주 남은 상황에서 나는 11월 28일에 수업 때 학생들에게 네 가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1) 한 주 더 수업하고 과학철학을 배운다.
(2) 한 주 더 수업하고 과학철학 아닌 것을 배운다.
(3) 오늘까지만 배운다.
(4) 기타
이렇게 칠판에 쓰고 익명으로 투표를 했다. 나는 모두 (3)번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여덟 명 중 두 명은 (2)번을 선택했고 한 명은 투표용지에 “기권”이라고 썼다. 내가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했더니 진심이 일부 통했나 보다.
(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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