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5

정치 뉴스의 자아 분열

  

 

현역 의원 공천 탈락률에 대해 어떤 뉴스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 앵커: “20대 총선을 앞두고, 개혁 공천을 공언했던 정치권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19대 국회 스스로,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자성까지 있었지만 각 당의 현역 의원 탈락 비율은, 국민들의 예상에 크게 못 미치고 있습니다. 정연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18대 총선 공천에서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현역의원의 39%를 탈락시켰습니다. 19대 총선 공천에서 새누리당의 물갈이 비율은 무려 46%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20대 총선 공천에서는 지금까지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의원이 17명으로 전체의 13%에 불과합니다.”


이 뉴스는 앞뒤가 안 맞는다. 18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 39%를 탈락시키고 19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 46%를 탈락시켰는데 19대 국회를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는 현역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새로운 사람을 영입한다고 해서 곧바로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뉴스는 현역 의원 탈락 비율이 낮아서 개혁이 안 된다고 보도한다.

현역 의원을 절반이나 바꿨는데도 국회가 엉망이라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내쫓고 이상한 사람을 데려왔다든지, 이상한 사람을 내쫓고 더 이상한 사람을 데려왔다든지, 이상한 사람을 내보내고 멀쩡한 사람을 데려왔지만 초선 의원 비율이 높아지고 이상한 다선 의원이 당의 주도권을 잡아서 당이 이상해졌다든지, 여의도가 원래 터가 안 좋아서 멀쩡한 사람도 맛이 간다든지, 하여간 무슨 설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뉴스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현역 의원 탈락률이 낮은 게 문제라고 보도한다. 도대체 왜 문제인가.

한국 언론의 정치 보도나 기사에는 ‘왜’가 없다. 초등학교에서 애들끼리 싸워도 왜 싸웠는지 이유를 물어볼 텐데 언론이라면서 ‘왜’를 안 물어본다. 이게 경마 중계인가, 뉴스 보도인가. 하다못해 경마꾼들도 경주마들 분석하고 기수들 분석하는데, 언론에서 아무 분석 없이 현역 의원 탈락률이 대단한 지표라도 되는 것처럼 다룬다. 전문가 인터뷰만 봐도 얼마나 피상적으로 접근하는지 알 수 있다. “여야 모두 당내 권력 투쟁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돼요. 좀 더 국민적 요구를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었지 않았나...” 동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교수한테 시킬 정도면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떤 분야든 앞뒤 안 가리고 구성원을 교체하면 이상한 사람이 남고 멀쩡한 사람이 떠나는 역-선택이 일어난다. 이건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를 극단적으로 잘 보여준 예가 안철수다. 안철수는 분명히 새 정치를 보여주었다. 이전까지 그런 식으로 정치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렇게 아방가르드 새 정치를 볼 수 있었다. 기존 정치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과 혐오가 만들어낸 괴물이 안철수다. 정치하는 놈들은 하나 같이 다 똑같은 놈이고 다 나쁜 놈이라는 정치 불신, 정치 혐오를 부추긴 언론은 여기에 책임이 없을까.

* 링크: [KBS] 국민기대 못 미친 공천 개혁… ‘물갈이’ 낙제점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248064 )

(201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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