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4

한국은 이상한 수포자(수학포기자)의 나라인가



홈쇼핑에는 쉽고 힘 안 들이고 재미있게 살을 뺄 수 있다는 운동기구가 종종 나온다. 정말 그런 기구가 있다면 코카콜라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잘 팔릴 것이며 헬스클럽은 죄다 망할 것인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매번 새 기계가 나오고 예전 상품의 행방은 알 수 없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몸이 좋은 사람들은 절제와 인내를 강조한다. 닭가슴살이나 사료 같은 것을 먹으며 쇳덩이를 들고 기계 위에서 뛰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홈쇼핑 광고에서처럼 쉽고 재미있게 몸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다.

세상 일이 거의 다 그렇다. 웬만큼 재미있고 중독성 있는 일은 나쁜 일 아니면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다. 운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무언가를 배우거나 성취하는 일은 대부분 일정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거의 재미없다. 그리고 그렇게 참고 배운다고 해서 잘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가끔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겁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일을 잘하느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못하는 주제에 자기가 잘한다고 착각까지 해서 더더욱 실력이 안 느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자신이 못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그런 변태적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파인만이 “물리학은 재미있다”고 했다지만, 그건 파인만이니까 물리학이 재미있는 거지 물리학이 재미있어서 파인만이 된 것이 아니다.

세상 일이 다 그러한데 왜 공부만은 쉽고 재미있어야 할까? 피아노를 배울 때도 왼손 따로 오른손 따로 치며 지루함을 참고, 수영 배울 때도 물 먹어가며 참는데, 왜 공부는 즐기면서 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학업성취도 평가를 하면 한국이 1위, 핀란드가 2위를 한다고 한다. 한국 학생의 절반이 수학을 포기하는 데도 한국이 1위를 한다는 건, 다른 나라도 한국보다 사정이 낫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처럼 쥐어 짜내든 핀란드처럼 살살 달래가며 하든 절반 이상은 수학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수학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도는 32개국 중 한국이 28위, 핀란드가 29위다. 이는 수학교과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대부분의 지적 능력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개념을 이해하면 수학을 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학적인 개념을 쉽게 이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념을 이해하도록 하지 않고 문제부터 풀게 하는 게 문제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문제부터 풀게 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미지로 배우는 수학을 말한다. 그런데 이미지가 안 떠오르는 애들에게 이미지가 떠오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고등학교 때를 떠올려 보면 같은 선생님한테 배워도 잘하는 애들은 잘 이해했고 못하는 애들은 끝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한겨레>는 미국 뉴욕주에서 사용하는 수학교과서를 소개한다. 그 교과서는 소인수분해 단원을 ‘약수 찾기’ 게임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중1 수준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편미분이나 벡터 같은 건 어떻게 하나? 나도 그게 궁금하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같은 시민단체에서는 교과서의 범위와 수능의 범위를 지금보다 20-30%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수학을 포기할 것이며 상위권 학생들은 배울 것도 못 배우게 된다. 실제로 7차 교육과정에서 문과생한테 미적분을 안 가르쳤는데, 그때도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은 줄지 않았고 신입생들한테 미적분 가르치느라 괜히 대학만 고생했다.

수학을 포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학을 포기해서 대학을 못 가면 사람대접 못 받고 사는 것이 문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학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수학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건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하는 소리다. 머리 좋고 마음 착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들처럼 머리 좋은 줄 안다. 그건 학생들을 괴롭히자는 것밖에 안 된다. 그들은 TKO패 당할 선수한테 조금 더 노력하라는 건 그냥 맞아죽으라는 거라는 사실을 모른다. 수학을 포기하는 아이들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다.

* 링크(1): [한겨레] 재미없고, 범위는 넓고, 이상한 ‘수포자’들의 나라

( 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83286.html )

* 링크(2): [한겨레] ‘수포자’의 나라는 어디인가? / 김민형

( 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85033.html )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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