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3

철학의 미래



철학의 여러 분야 중 윤리학만 빼고 나머지는 다른 학문에 편입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고 들었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단순하다. 지금의 분과 학문들은 철학에서 떨어져나온 것이고, 그렇게 되면서 철학이 다루는 영역도 줄어들었고,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이니, 언제일지는 모르더라도 결국 철학 고유의 영역으로 남는 것은 윤리학 정도일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철학과에서 다루어야 할 것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철학에는 형이상학, 윤리학, 인식론 같은 전통적인 분야 말고도 비교적 최근에 생긴 분과 학문에 대한 철학도 있다. 물리학의 철학, 생물학의 철학, 사회과학의 철학 등이 그것이다. Routledge Contemporary Introductions to Philosophy Series 등은 여러 분과 학문에 대한 철학을 소개한다.

이 시리즈에 심리철학이 있고 심리학의 철학도 있다. 이름은 비슷한데 내용은 전혀 다르다. 심리철학은 심리학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다루지 않는 메타적인 문제(심신문제 등)를 다루고, 심리학의 철학에서는 주로 심리학에서 다루는 문제 중 메타적인 문제를 다룬다.

경제학의 철학을 소개하는 책도 있다. 경제학의 철학은 게임이론처럼 경제학에서 다루는 주제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의 주제인 ‘인과’도 다룬다. “통화량 증가는 물가상승의 원인이다”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경제학에서 하는 설명 중 상당수는 인과적 설명이다. 그런데 ‘인과’는 무엇인가.

철학의 전통적인 주제인 ‘인과’는 대부분의 개별 학문의 철학에서 문제가 된다. 물리학의 철학에서도 인과를 다루어야 하고 생물학의 철학에서도 인과를 다루어야 하고 경제학의 철학에서도 인과를 다루어야 한다. 각 학과에서 인과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철학과에서 인과를 다루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봐도 효율적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아웃소싱인 셈인데, 이는 인과 같은 전통적인 문제가 각 분과 학문의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철학과가 별도의 학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과와 관련된 근대적인 논의의 시발점은 흄이다. 그런데 듣기로, 흄이 인과를 문제 삼은 계기 중 하나는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우인론이라고 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며, 이 사람들을 사학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고대철학부터 현대철학까지 한 세트로 철학과에 있어야 한다. 이는 철학과가 별도의 학과로 유지될 것이라는 또 다른 근거일 것이다.

철학에서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 같은 학문들이 분리되어 나갔다고 철학의 영역이 줄어든 게 아니다. 오히려 철학의 고유 분야들은 대부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았으며, 집 나갔다가 자식까지 달고 집에 되돌아오기도 한다.

과학철학의 주제 중 하나는 ‘과학적 설명’이다. 과학적 설명은 그렇지 않은 설명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20세기 중반에는 과학적 설명이 법칙을 포함하는 논증 형식을 띤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설명과 다르다고 보았다. 초기조건과 법칙을 결합하면 물리현상은 설명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생물학에는 법칙이 없다. 이들 학문에서의 설명은 왜 과학적 설명인가? 여기서 법칙 대신 등장하는 후보들이 ‘메커니즘’과 ‘모형’이다. 모형으로 생물학 뿐 아니라 물리학도 설명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메커니즘으로 생물학 뿐 아니라 사회과학도 설명할 수 있다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메커니즘이 뭔지, 모형이 뭔지, 그리고 얘네를 통해서 하는 설명이 왜 과학적 설명인지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칙이 무엇이냐는 문제도 해결이 된 게 아니다. 경제학에도 “법칙”이라고 부르는 게 있다. 이 법칙 중 일부는 경험적 일반화이고 일부는 분석적 참인 것 같다. 여기에 대해 카트라이트는 “인과역량”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물리법칙을 설명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제법칙을 설명하는데, 후버는 물리학의 이상화와 경제학의 모형제작이 다르다면서 “인과적 구조”를 주장한다. 경제학의 등장은 법칙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 범위를 넓혔다.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되지도 않은 채 해결해야 할 게 더 생긴 셈이다.

정리하자면, 철학에서 전통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언제 해결될지 그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분과 학문의 발달과 함께 그와 관련된 철학적 문제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분과 학문들이 발달할수록 철학의 영역도 확장될 것이라 믿는다. 몇몇 대학에서 철학과가 없어질 수는 있어도, 다른 학문이 있는 한 철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철학의 미래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내 미래만 걱정하고 있다.

(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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