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2

근거를 드는 것과 사례를 드는 것



고등학생들이 어떤 사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밝히는 글쓰기를 한 것을 보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다른 나라도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하든가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몇 개라는 것을 든다. 케이블에서 하는 대학생 토론배틀 같은 프로그램을 봐도, 대학생이라는 사람들이 고등학생들하고 별반 다를 바 없는 소리를 한다. 도대체 대학은 뭐하는 곳인가 모르겠다.

원래부터 있던 제도는 없다. 지구상의 모든 제도는 아무도 안 하던 것을 누군가 처음 만들어서 생겼다. 그러니 다른 나라가 무슨 제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는 참고자료에 불과할 뿐, 어떤 제도를 시행하느냐 마느냐 여부에 대한 정당성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가 많은 나라들이 사형을 폐지했기 때문이라면, 지금까지 어떠한 나라도 사형을 폐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 사형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세상에 사형제 없는 나라가 어디 있냐?”는 반론에 막혔다면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사형제를 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몇 나라나 사형제도를 폐지했느냐?’가 아니라 ‘왜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가?’이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봐도 고등학생이나 고등학생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대학생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외국이 어쨌다더라, 선진국이 어쨌다더라 하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한국은 그 나라가 아닌데.

어떤 사람은 스웨덴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한국과 스웨덴은 비슷한 점을 찾기 매우 어렵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복지예산이나 교육예산 등이 OECD 평균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1인당 GDP도 OECD 국가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유럽에서 1인당 GDP 1만 달러일 때 시작한 정책을 한국은 아직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당시 1만 달러와 지금의 1만 달러는 가치가 다르다. 6.25 때 미군들이 해안포를 쏠 때 “캐딜락 날아간다”면서 쏘았다고 하는데, 그 당시 해안포 한 발 값과 캐딜락 값이 둘 다 1만 달러였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지금 캐딜락은 5500-7000만 원 사이라고 한다. 이게 맞다면 그 당시 1만 달러는 지금의 4-5만 달러에 해당될 것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4달 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최근에 유럽에서 일요일에도 가게 영업하도록 했다고 한다. 경제난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유럽도 그러는 마당에 한국도 규제를 더욱 풀어야 한다고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유럽에서는 원래부터 그만큼 해오다가 지금 그러는 것이고 한국은 애초부터 그런 게 없었다고 할 것이다. 둘 다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일 뿐이다. 자기 주장에 대한 근거를 대야지 사례를 드는 것과 근거를 드는 것을 착각하면 안 된다. 유럽이 어쩌든 말든 미국이 어쩌든 말든, 한국에 관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한국 이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한 근거를 대야 한다.

* 링크: [아주경제] 파리 일요일 가게 허용… 경제난 극복 위한 조치

( www.ajunews.com/view/20141012223934949 )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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