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인문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예가 안 되려면 인문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놀고들 있다.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 노예들이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어떤 이들은 경쟁 사회에서 인성함양을 하기 위해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조선시대 관료들은 인문학을 안 해서 당파싸움하고 사약 먹였나?
이제는 군대에서도 인문학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왜 군대에서 그런 걸 해야 할까? ‘왜 군인이 인문학을 해야 하느냐’를 생각할 수준만 된다면 그런 짓을 안 할 텐데.
육군 모 부대에서 결정권이 있는 한 간부는 병사들이 가혹행위를 하는 것은 인성교육을 안 하기 때문이라며 인성함양을 위해서 인문학을 해야 한다면서 부대에 책 읽을 공간을 전용 공간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책은 알아서 구입하고, 평가도 알아서 하고, 어쨌든 시행한 결과를 보고하라고 했다고 한다.
나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전한 간부는 그 회의에서 그 결정에 반대했다고 했다. 그 간부는 제대가 얼마 안 남은 간부이기 때문에 할 말을 다 했던 것이다. 장기근무 할 간부들은 입을 꾹 다물었고, 부대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떤 소위는 신이 나서 “부대에서 읽을 책을 정해준 다음, 그 책 내용을 시험을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우수자는 포상휴가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며 상황을 점점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인성은 개뿔. 책 읽은 걸 시험 봐서 부대별로 경쟁시키면 후임이 책 내용 못 외운다고 치약 먹이는 놈이 분명히 나온다.
결정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소양이 아니라 판단 능력이다. 유능한 경영자가 인문학적 소양도 갖추고 있다면, 그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서 경영 능력이 향상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판단능력이 남보다 뛰어나서 자기 전공도 다 잘하면서 인문학적 소양도 갖춘 것뿐이다. 인문학 서적을 읽어서 똥멍청이가 유능한 상관이 된 사례는 아직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다.
(201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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