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1

최재천 식 통섭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



최재천 교수가 주장하는 문・이과 통합은 이과가 중심이 되는 문과 통합이다. 현재 이과생이 배우는 것을 그대로 배우면서 문과 학생이 배우는 것까지 다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그래도 된다. 그런 학생들은 몇 문제 틀리지도 않으면서 한 문제 덜 틀리려고 안간힘을 쓰니까, 그럴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이과 통합을 실업계를 제외한 모든 문・이과 학생 모두에게 적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능력이 없어서 문과생이나 이과생이 된다. 수학을 못해서 문과생이 된 학생들 중 대부분은 글도 제대로 못 읽는다. 이과생 중에 상당수는 문과 상위권보다도 수학을 못한다. 최재천 교수 말대로 문・이과를 통합하면 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전보다 교육적 효과가 커지기는 할까? 아마도 여러 가지 사회적 비용만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문・이과 통합이 왜 필요한가? 최재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직업을 5~6번 갈아타야 하는데 그 직업이 가지런히 문과 직업으로만, 또는 이과 직업으로만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미래를 “내가 생각할 때 넌 과학을 공부할 필요 없다” 이렇게 말했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과학을 배우지 않아서 노숙자가 되면 누구의 책임인가?


용접, 미장, 특수차량 운전 등은 뒤늦게 배울 수도 있지만 과학은 어려서부터 배워도 어렵다고들 한다. 그런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게끔 교육과정을 바꾸는 것은 다르다. 과학에 재능이 있고 흥미를 느끼지만 어쩌다 실업계에 간 학생이 과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과학을 못해서 인문계에 갈 수밖에 없는 학생이 이과생만큼이나 수학과 과학을 배워야만 하게끔 만드는 것은 다르다. 문과에 온 학생들 중 상당수는 현재 문과 수학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그런 학생들이 이과 수학을 배우면 이과 직업을 가질 수 있나?

융합・통섭 이야기를 할 때는 꼭 외국 이야기를 한다. 외국의 훌륭한 사람 누구누구는 얼마나 박식했는지 이 분야 저 분야 여러 분야에 손댔다더라 어쨌다더라 이야기한다. 그건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안 훌륭한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사는가? 언론에서 문・이과 구분은 한국과 일본에서만 하는 거라고 해서, 정말 그런지 독일인 대학원생에게 물어보았다. 동료 대학원생은, 다른 나라는 모르겠고 독일의 경우 그런 구분은 딱히 없는데, 10학년까지는 공통으로 배우고 11학년, 12학년에는 선택 과목으로 갈라진다고 했다. 이건 문과, 이과라는 말만 없는 것이지 그 둘을 구분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다. 독일인이라고 머리를 하나씩 더 달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 대학원생은 경희대 어학원에서 한국어 배울 때 있었던 일을 나에게 말했다. 경영학과 학부생이 쇼팽과 관련한 수업을 수강하고 학점 인정받은 걸 보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영학과 학생한테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가르쳐요. 그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간 낭비예요.” 독일인 눈에 비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모습은 이러했다.

유럽을 돌아다니다 유럽 사람과 결혼한 후배의 말에 따르면, 보통의 유럽 사람은 보통의 한국 사람보다 아는 것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일도 안 한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은 왜 한국 사람보다 잘 살까? 왜 유럽 사람의 노동생산성은 한국 사람의 노동생산성보다 높을까? 아마도 산업 구조나 사회 구조가 한국과 달라서일 것이다.

한 나라의 능력은 그 나라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그 개인들의 능력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서 고도의 산업을 일으키기 어렵겠지만, 개인들의 지식 수준이 높다고 해서 곧바로 선진국이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나라의 성취는 조직적인 생산 활동에 의한 성취다. 시골에서 혼자 농사짓는 사람도 크게 놓고 보면 그 나라 농업기술이나 농업정책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 여타 산업 활동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구조에 대한 언급은 없고 항상 개인을 조지자고만 한다. 도대체 한국인은 얼마만큼 많이 배우고 많이 일해야 하는가?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든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든 다른 사람들이 더 적게 알고도 더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물건을 만든다. 헬스 트레이너들도 더 적게 운동하고 더 쉽게 근육 만드는 방법을 고안한다. 그런데 왜 배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못 괴롭혀서 안달일까.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남을 괴롭힌다는 사실도 모른다.

* 링크: [조선비즈] 도정일 對 최재천…인문학과 과학의 만남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1/2014103101071.html )

(201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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