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술 후기

집에 있던 ‘단군술’이라는 북한 술을 다 마셨다. 의외로 괜찮은 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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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쯤 전에 부모님이 평양에서 관광하고 오면서 자잘한 북한 물품을 사 오셨는데, 그 중 하나가 단군술이었다. 아무도 그 술에 손대지 않아서 주방 찬장 한구석에 20년 동안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은 거의 술을 못 마신다. 아버지는 젊어서 과음으로 자주 실수하셨지만, 술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어서 집에서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혼자 술을 자주 마시지만 북한에서 만든 술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서 단군술에 손대지 않았다. 병 표면에 붙인 종이의 상태부터 안 좋아서, 술을 잘못 마시고 눈이라도 멀면 어쩌나 싶어서 손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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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년 동안 찬장 한구석에 술이 있는 것만 보다가 몇 주 전에 북한 술의 맛은 어떤지 괜히 궁금해졌다. 관광상품으로 판매한 것인데 설마 메탄올을 넣었을까 싶기도 했고, 약간 문제가 있어도 한 잔 정도는 먹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뚜껑을 열었는데, 뚜껑이 제대로 잠겨 있지 않았다. 누군가 뚜껑을 딴 게 아니라 처음부터 밀봉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잔 마셔보았다. 도수가 25도라고 써 있는데 별로 독하지 않았다. 알코올이 날아가서 그런가? 어머니께도 한 잔 권했다. 어머니는 목구멍부터 뱃속까지 뜨거운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알코올이 많이 날아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도 한 잔 더 마셔보았다. 맛도 괜찮고 향도 괜찮고 진로 소주보다 목 넘김도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반 병 정도 마셨고, 추석 연휴 때 나머지를 다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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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술 병에 붙은 종이에는 “고려 민족의 시조-단군이 마시던 아달샘으로 만든 도토리 술입니다”라고 써 있다. 단군릉 같은 것이나 만들어내는 북한 놈들이라고 해도 차마 단군이 마시던 술이라고는 못 하고(단군이 실존 인물이든 아니든 증류주를 마셨을 수는 없다), 단군이 마시던 샘으로 만든 술이라고 했다. 그런데 도토리 술이라니. 도토리로 묵이나 만드는 줄 알았지 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북한에는 쌀이 부족해서 도토리로 술을 만드나? 그렇다면, 밤농사 지역에서 벌레 먹은 밤으로 술을 빚고 증류해서 소주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은 아니고 언젠가 밤으로 소주를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나보고 미친 놈이라고 욕을 하셨다. 내가 대학원 그만 두고 술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장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하여간 나는 그렇게 욕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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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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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독서토론 프로그램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하여 교육청에서 열 시간 정도 연수를 받았다. 거기서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토론・토의 교육 사례들을 접했는데, 그 중 약간 충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가정 과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이상한 책을 읽고 남한과 북한이 통일하면 식문화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를 토론한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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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북한의 전통 음식이라면 모르겠지만, 해방 이후 북한에서 새로 만든 음식이라는 게 딱히 맛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니 통일이 된다고 해도 남한에서는 북한 음식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고기를 더 많이 먹을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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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해당 수업을 담당한 가정 교사는 통일이 되면 남・북한의 영양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다는 내용의 토론 자료를 학생들에게 제시했다. 남한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으니 고만 쳐먹고 살 좀 빼고, 북한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 못 먹으니 밥 좀 잘 먹이자고 하면 될 것을, 마치 남한 사람들의 영양 불균형과 북한 사람들의 영양 불균형이 대칭적이고 동등한 것처럼 서술한 뒤 통일되면 서로 보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NL식 통일 농업도 아니고,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교사가 최근까지도 교육 현장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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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술을 마셔보니, 그 가정 교사가 통일 농업 같은 소리 말고, 통일 주류사업 같은 소리를 했다면, 그래도 정상적인 이야기 비슷한 것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학생들 상대로 하는 토론 수업에서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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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6.)

[생물학의 철학] Mayr (1997), Ch 2 “What Is Sc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rnst Mayr (1997), This Is Biology: The Science of the Living World (Harvard University Press)

에른스트 마이어, 「2장. 과학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생물학이다』, 최재천 외 옮김 (바다출판사,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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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은 살아 있는 유기체 연구를 담당하는 분과 학문을 모두 포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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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고 체계와 구분되는 과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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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헉슬리: 과학은 단지 훈련되고 조직화된 상식

헉슬리는 다윈의 친구이자 다윈 이론을 대중화시킴.

상식은 흔히 과학에 의하여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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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 철학자들이 과학에 대한 합의된 정의를 이끌어내는 데 겪은 어려움을 설명하는 요소는 많음.

- 이유(1): 과학이 (과학자들이 하는) 행위인 동시에 (과학자들이 아는) 지식 체계라는 것

오늘날 대부분의 철학자는 과학을 정의할 때 과학자들의 활동(탐구, 설명, 시험)을 강조함.

다른 철학자들은 과학을 커가는 지식 체계(설명 원리에 기초한 지식의 구성과 분류)로 정의함.

귀납론자들은 개별 사실을 축적하여 일반화할 수 있고, 자연적 점화가 일어나듯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음.

현대 철학자들은 사실 자체가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순수한 사실 자체가 존재하는지를 두고 광범위한 논의를 벌임. “모든 관찰은 이론을 전제하지 않는가?”

“관찰에 어떤 의미라도 부여하자면 모든 관찰이 어떤 관점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무시해야 한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1861년 다윈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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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2): 사람들이 과학이라 이름 붙인 학문 행위가 여러 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변해왔음.

자연신학은 약 150년 전까지 합법적인 과학 분과로 간주됨.

자연신학은 신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

자연법칙에 대한 이해는 생명과학과 물리과학에서 모두 엄밀한 결정론적 견해에서 대체로 확률적인 입장으로 변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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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1

과학적 점진적 변화의 예

과학혁명을 이끈 강한 경험주의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중점을 둠.

반면, 새로운 개념의 전개가 과학의 진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주목하지 않았음.

오늘날 경쟁, 유전, 세력권, 이타주의 등의 개념은 생물학에서 중요함.

그러나 이런 개념들의 중요성은 최근까지 철저히 무시되었음.

이런 무시는 노벨상 규정에서 반영되었음.

노벨상이 생물학에도 주어진다고 해도, 다윈은 수상자가 되지 못했을 것임.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의 발전은 발견이 아니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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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과학혁명 동안 과학에 대한 개념을 형성한 분야는 수학, 역학,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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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6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에서 생물학의 위치를 둘러싼 세 가지 관점

- 관점(1): 생물학을 과학의 범주에서 제외

• 생물학이 물리학을 의미하는 ‘참된 과학’이 가지는 보편성, 법칙 구조화, 엄격한 정량성이 부족하기 때문.

- 관점(2): 생물학이 물리학과 동등하게 자율적 과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측면을 가짐

- 관점(3): 생물학은 국지적 과학(provincial science)

• 생물학이 보편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는 물리학이나 화학의 법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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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생물학은 자율적 과학인가?’라는 물음은 둘로 나누어짐.

- 물음(1): ‘물리학이나 화학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은 과학인가?’

- 물음(2): ‘생물학은 물리학과 같은 엄밀한 과학인가?’

- 물음(1)에 대한 대답: 어떤 활동이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존 무어(John Moore)의 여덟 가지 기준

• (1) 과학은 초자연적인 요소에 호소함 없이 현장이나 실험에 의해 수집된 자료에 기초해야 함.

• (2)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자료 수집은 필수적이며 추측을 강화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관찰을 수반해야 함.

• (3) 모든 가능한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객관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함.

• (4) 가설은 관찰과 일치해야 하고 일반적인 개념 틀에 적합해야 함.

• (5) 모든 가설은 검증되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경쟁할 만한 가설들을 개발해야 하고, 그 타당성의 정도(문제해결 능력)가 비교되어야 함.

• (6) 일반화는 특정 과학의 영역 안에서 보편적으로 타당해야 함. 특이한 현상을 초자연적 요소에 호소함 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함.

• (7) 실수할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실이나 발견은 다른 연구자에 의해 (반복해서) 확인된 경우에만 완전히 인정되어야 함.

• (8) 과학은 과학 이론을 꾸준히 개선하고, 결합이 있거나 불완전한 이론을 대체하며, 이전의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특성을 가짐.

-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생물학이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합법적인 과학이라고 결론내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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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생물학은 국지적 과학이며, 그래서 물리과학과 대등하지 못한가?

• 물리학의 법칙은 안드로메다 우주에서 지구에 이르기까지 타당해서 시공간의 한계가 없다고 말함.

• 우리가 아는 모든 생명은 오직 지구에만 존재했고 빅뱅 이래 단지 38억 년 동안만 존재했으므로, 생물학은 국지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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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널드 먼슨의 논박 (Ronald Munson 1975)

생물학의 모든 근본 법칙과 이론 및 원리의 적용 범위가 직・간접적으로 모두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되지 않음.

생명의 세계에는 상당한 유일성이 있음.

그러나 유일한 현상에 대한 모든 종류의 일반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

각 대양의 흐름은 유일하지만 해류에 대한 법칙과 이론을 확립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임.

보편성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생명은 지구에만 존재함.

생명에 관한 법칙과 원리는 그 존재가 알려진 영역(지구상)에서 타당하기 때문에 보편적임.

마이어는 적용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성립하는 원리를 보편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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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