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6

현대프랑스철학 전공자는 맡을 수 없는 <철학에의 초대> 수업



강사 모집 공고를 찾아보던 중 약간 일반적이지 않은 자격 제한을 보게 되었다. <철학에의 초대>와 <인간과 윤리> 과목을 맡을 강사를 모집하는 공고였는데, “박사학위 소지자를 원칙으로 하되, 현대프랑스철학 전공자 제외”라고 하여 세부 지원자격을 제한한 것이었다.

<철학에의 초대>는 <철학개론> 수업일 것이고, <인간과 윤리>는 <윤리학개론> 수업일 것이다. 둘 다 개론 수업이니 철학이나 윤리교육학 전공자라면 큰 무리 없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분석철학이나 대륙철학이나 어차피 칸트까지는 공통 조상이라서 어느 전공에서 맡든 <철학개론> 수업에서 다루는 범위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철학개론> 수업을 맡을 강사를 모집할 때 박사학위 소지자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는 경우는 있으나, 특정 전공자를 우대한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동양철학 전공자가 <철학개론> 수업을 맡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특정 분야 전공자는 아예 지원도 못 한다고 명시했다. 나는 이런 자격 제한을 처음 보았다.

해당 학교에는 철학과가 없으니, 철학 교수들끼리 알력 다툼하느라 이런 제한을 붙인 것은 아니다. 모집 담당자가 프랑스철학 전공자에게 첫사랑이라도 빼앗겼나?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매우 낮을 것이다. 대륙철학 일반도 아니고 프랑스철학만 콕 집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전에 프랑스철학 전공자가 해당 수업을 맡았다가 문제를 크게 일으킨 것 말고는 그럴 법한 시나리오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학교의 해당 수업의 수업계획서를 찾아보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 수업계획서가 대단한 업무상 기밀도 아닌데, 꽤 많은 학교에서는 수업계획서를 꽁꽁 숨겨놓고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나도 괜히 내 전공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실에 어느 정도 신경 써야겠다.

* 뱀발

세부 지원자격에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를 원칙으로 하되, 현대프랑스철학 전공자 제외”가 현대프랑스철학 전공자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 분도 있었다. 분석철학 전공자는 박사학위를 받아야만 지원할 수 있지만, 현대프랑스철학 전공자는 박사학위가 없이 박사수료이기만 해도 지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중의적 해석도 말이 되는 것 같아서 다른 과목의 지원자격도 찾아보았다. 물리학 과목에는 “물리학 관련 박사학위 소지자를 원칙으로 하되, 석사학위 소지자는 해당분야 5년 이상의 강의 경력자”라고 써 있다. 프랑스철학 전공자는 지원하지 말라는 한 것이 맞나 보다.

(20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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