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2

이공계 내 글쓰기 교육 인력 육성의 필요성



이공계에서는 수학은 과학의 언어라고 하면서 떠받들면서, 자연 언어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신이 수학자라고 해도, 이론이든 실험이든 내가 얻은 결과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쓰는 것은 결국 자연 언어일 텐데, 왜 자연 언어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쓸까?

동료 대학원생의 소개로 과목 연계 글쓰기 과목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학부 공통 글쓰기 수업의 경우, 프로그램 자체에 결함이 있어서 학생이 글을 못 쓴다고 해도 그게 학생 잘못인지 프로그램 잘못인지 가리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교과목 연계 글쓰기 과목은 전공 수업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학부 공통 글쓰기 수업보다 프로그램 자체의 결함이 비교적 적을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학생이 글 쓰다 누워버리면 역시나 답이 없다.

나도 학생이라 글 쓰다 누워버리는 그 마음을 대강은 이해한다. 다른 중요하고 급한 과목에서 과제가 쏟아지는데,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글쓰기를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손댈 수 없는 글을 냅다 내버리면 어쩌라는 것인가?

나는 손댈 수 없는 글을 낸 학생에게 예상 독자가 누구냐고 물어본다. 똘똘한 고등학생이냐, 학부 저학년이냐, 학부 고학년이냐, 대학원생이냐, 교수냐 등등. 그러면 우물쭈물하다 그 중 하나를 정하기 마련인데 가끔은 당당하게 대학원생이나 교수라고 답하는 학생이 있다. 내가 해당 분야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리뷰 페이퍼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는 안 쓸 것 같은 느낌은 받는데, 내가 해당 분야를 전혀 모르므로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 학생을 족칠 수가 없다. 해당 내용만 알았어도 이러저러한 내용을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기술해야지 왜 이런 식으로 글을 쓰냐고 족쳤을 텐데, 물증이 없으니 “이 글을 어떻게 하죠?”라고 말하다가 40분이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글쓰기 조교가 준비를 안 해오고 대충 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대충한 건 맞는데, 그래도 그런 글은 건당 20만 원을 준다고 해도 손대기 힘들다.(참고로 글쓰기 지도 한 건당 4만 원이다.)

손댈 수 없는 글을 읽다가 ‘내가 왜 이런 글을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전공 대학원생 중 한 명에게 글쓰기 조교 일을 시켰다면, 나처럼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어 학생을 못 족치는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아무래도 이공계 쪽에는 글쓰기 조교 일을 할 인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다.

어떤 분야가 학문 분야라면, 이공계가 아니라 예체능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분야 전공 수업의 글쓰기 조교를 할 인력이 없다는 것은 이상한 일일 것이다. 글쓰기 조교를 다른 과에서 데려온다는 것은, 경제학과로 비유하자면, 경제수학 수업의 조교를 수학과에서 데려오고 경제통계학 수업의 조교를 통계학과에서 데려온다는 것과 비슷하다. 수학이나 통계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라면 모르겠으나 학부생 지도 관련해서는 경제학과 내에서 다 해결된다. 그런데 왜 글쓰기는 그렇지 않은가?

중요성만 놓고 보면, 다른 요소보다 글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수학을 많이 쓸 수도 있고 적게 쓸 수도 있으나, 어떠한 경우에도 글은 안 쓸 수가 없다.

(2024.04.22.)


2024/06/17

밭에 있는 배수로 보강하기



작년에는 땅에 묻혀 있던 흄관을 재활용하여 밭의 배수 상태를 개선했다. 마당에서 뽑아낸 PE배수로를 흄관 앞에 덧붙이고 300mm 이중관을 흄관 뒤에 넣어서 배수로를 추가로 확보했다.

1년 동안 보니 새로 만든 배수로에 사소한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흄관 앞에 묻은 PE배수로 주변의 흙이 파였다는 점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신경 쓰일 만했다. 다른 하나는 흄관 일부와 PE배수로가 노출된 농로 한가운데에 사실상 구덩이가 파여있다는 점이다. 해당 구간을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데다 내가 흄관을 새로 묻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두고 시비를 걸 사람이 없기는 했지만, 지나가다가 발이라도 헛딛으면 다칠 수도 있었다.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간단한 방법은 흄관 앞에 이중관을 넣고 흄관과 이중관 전체를 흙으로 덮는 것이다. 별로 어려운 방법은 아니지만 문제는 사소하고 해결책을 실행하기는 귀찮아서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람도 거의 안 다니는 농로이니 전체를 흙으로 덮어 구덩이를 메우면 해당 구간을 공터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농어촌공사 땅이니 나무나 기타 작물을 심을 수는 없겠지만, 밭에서 추수한 것을 널어놓거나 사람들을 초대해서 놀거나 할 때 나름대로 유용할 것 같았다. 흄관 앞에 묻었던 PE배수로를 드러내고 이중관을 새로 연결하여 묻기로 했다.

PE배수로를 묻을 때 이미 땅을 웬만큼 파놓았기 때문에 이중관을 새로 연결할 때 땅을 그렇게 많이 팔 필요는 없었다. 내가 신경 쓴 것은, 흄관 앞에 연결한 이중관과 흄관 뒤에 연결한 이중관이 일직선에 가깝게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 배수관 중간에 흙이 덜 쌓인다. 흄관 앞 이중관의 입구에서 보았을 때 이중관 출구 쪽 논이 보이는 각도를 맞출 때까지 계속 흙을 파냈다. PE배수로 묻을 때는 경사가 약 45도 정도였다면, 이번에 이중관을 묻을 때는 경사가 약 30도 정도였다.

새로 묻는 이중관의 각도를 잘 맞추어도 이후에 흙으로 덮을 때 이중관의 각도가 틀어지거나 흙의 무게 때문에 위아래로 휠 수 있다. 그것을 막으려면, 이중관 전체를 흙으로 덮기 전에 이중관의 양 옆을 흙으로 메우면서 동시에 이중관의 바닥 부분도 흙으로 채워야 한다.

이중관과 흄관 사이에 틈이 있었는데, 건물 공사 같으면 발포 스티로폼 같은 것으로 그 틈을 메워야 하겠지만, 이건 밭의 배수로이기 때문에 진흙으로 적당히 메워도 별로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었다. 근처 논에서 진흙을 퍼와서 틈을 막았다.

이 정도 해놓으면 흙으로 바로 덮어도 되는데, 필요한 흙이 대충 2제곱미터 정도였다. 흙의 비중이 약 1.5니까 2제곱미터면 무게가 3톤 정도 된다. 뒤란에 축대 쌓으면서 흙이 계속 나올 때마다 구덩이를 메우면 되니까 별도로 흙을 퍼오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밭에서 일하는 내내 연동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곁에 있었다기보다는 보강하는 배수로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연동이 입장에서는 내가 자기 놀이터를 새로 만들어주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흙을 파고 이중관 각도를 맞추고 흙으로 이중관을 고정하는 내내, 연동이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중관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고, 힘들면 잠깐 쉬고 쉬다가 힘이 나면 다시 뛰어다녔다.


(2024.04.17.)


이공계 내 글쓰기 교육 인력 육성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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