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흄,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이태하 옮김 (나남, 2008). ]
합리적인 사람이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경우, 문제는 신의 존재가 아니라 신의 본성임.
어떤 것도 원인 없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신의 존재가 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음.
우리는 우주의 원천적 원인을 우리는 신이라고 부름.
그러나 완벽함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우리는 신성한 존재의 속성을 이해한다고 상상하거나 신의 완벽함이 인간 피조물의 완벽함과 닮았다고 생각하면 안 됨.
신은 우리의 제한된 견해와 이해보다 무한하게 우월함.
우리의 관념은 우리의 경험보다 더 나아가지 못함.
우리는 신성한 속성과 작용에 관한 어떠한 경험도 없음.
우리는 돌이 낙하한다는 것, 불이 탄다는 것, 땅이 단단하다는 것을 수천 번 관찰해왔음.
이러한 본성을 가진 새로운 사례가 제시되면, 우리는 주저없이 습관화된 추론을 함.
사례들의 정확한 유사성은 우리에게 유사한 사건에 대한 확신을 주며, 그래서 우리는 더 강한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고 찾지도 않음.
그러나 유사성을 잃으면 그만큼 증거를 잃음.
개구리와 물고기의 혈액 순환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의 순환을 가정하는 것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유비에서 나온 가정임.
동물의 혈액 순환에서 식물 수액의 순환을 추론한다면 유비 추론은 훨씬 더 약해짐.
불완전한 유비를 성급하게 따른 사람들은 더 정확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됨.
우리는 어떤 집을 보면 그것을 만든 건축가가 있다는 결론을 내림.
왜냐하면 이는 정확히 그런 종류의 원인으로부터 진행된 것으로 우리가 경험한 종류의 결과이기 때문임.
그러나 우주가 집과 그러한 유사성을 가지므로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유사한 원인을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며, 여기에서 유비가 온전하고 완벽하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임.
비-유사성이 너무 크기 때문임.
사실에 관한 모든 추론은 경험에 기초험.
모든 실험적 추론은 유사한 원인을 유사한 결과를 입증하고 유사한 결과는 유사한 원인을 입증한다는 가정에 기초함.
사례가 유사하지 않다면, 과거의 관찰을 어떤 특정한 현상에 적용할 수 없음.
우리가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게서 발견하는 생각, 기획, 지성은 [...] 우주의 기원과 원리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음.
그것은 자연의 어떤 특정한 부분이 다른 부분의 변화를 일으키는 능동인인 것은 맞지만, 부분들에서 전체로의 전이는 타당한 결론이 될 수 있는가?
커다란 불균형이 모든 비교와 추론을 가로막지 않는가?
머리카락의 성장을 보고 우리는 인간의 발생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뇌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 어떤 특권을 가지기에 우리가 그것을 전 우주의 모형으로 삼아야만 하는가?
이 거대한 체계(우주)의 매우 작은 부분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우리에게 매우 불완전하게 발견됨.
우리는 전체의 기원에 관하여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가?
자연의 일부는 그것보다 더 넓은 다른 부분의 규칙인가? 그것은 전체에 해당하는 규칙인가, 아니면 매우 작은 부분이 우주의 규칙인가?
한 상황에서의 자연이 그것과는 아주 다른 또다른 상황에서의 자연의 규칙인가?
(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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