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상상하는 현자나 책사 같은 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이나 야사로 정조가 세손 시절일 때의 홍국영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전쟁터에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출전하는 사령관에게 비단 주머니를 주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치더라도, 영조가 『자치통감강목』 넷째 권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종이로 붙여서 전해주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을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아마 대부분의 경우라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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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를 만나고 온 세손 정조가 씩씩거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누구야? 누가 내 책에 이랬어? 누가 남의 책에 풀로 종이를 붙여? 어?”
홍국영이 쭈뼛쭈뼛 나서며 자기가 했다고 하고, 왜 그런 짓을 했냐는 물음에 그 책에 영조가 문제 삼을 구절이 있어서 가렸다고 답한다. 그러면 정조는 더 화를 냈을 것이다. “미친 놈이네, 이거? 우리 할아버지가 주원장이냐? 어? 이거 우리 할아버지가 정신병자라는 거잖아? 어?”
당황한 홍국영이 묻는다. “그러면 전하께서는 왜 그 책을 가져오라고 하셨답니까?”
정조는 황당해서 헛웃음을 짓는다. “내가 요새 『강목』 읽는다고 하니까 얼마나 열심히 읽었나 확인해본다고 책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책을 그 모양으로 만들어놓으니까 상황이 더 이상해지잖아? 책은 그냥 읽는 거지 그걸 왜 종이로 가려놓고 안 읽어? 어? 너는 책을 그렇게 읽냐? 어? 내가 너 때문에 이상한 의심이나 받았잖아? 어?”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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