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도교수님이 나를 걱정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 지도교수님과 현 지도교수님이 가끔 같이 식사를 하시는데 최근에 전 지도교수님이 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현 지도교수님을 통해 들었다. 몇 달 전에 전 지도교수님을 조교 업무차 만났을 때도 나를 걱정하시기는 했다.
전 지도교수님이 정년퇴임을 얼마 앞두고 하셨던 말씀 중에, 교수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지도학생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 같은 것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괜한 걱정이었던 같기도 하고 알아서 잘 해서 그런지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고민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 지도교수님이 나에 대해 그렇게까지 걱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 지도교수님의 걱정은 아마도 두 가지 차원에서일 것이다. 하나는 현 지도교수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나를 박사과정생으로 뽑은 것은 전 지도교수님이고 현 지도교수님이 아니니 나의 졸업에 대한 책임은 일부분 자신에게 있다고 전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다른 하나는 나에 대한 책임감일지도 모르겠다. 직업 없이 대학원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인생을 망치는 일이니까 나 개인에 대한 걱정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신 적은 없다.
전 지도교수님이 내 걱정을 한다는 이야기를 대학원 선배한테 말하니 그 선배가 크게 웃었다. 그 선배도 전 지도교수님의 지도학생이었다. 선배는 농담으로 전 지도교수님이 제일 잘 한 일 중 하나가 나를 박사과정생으로 뽑아서 내가 한국 사회에 미칠 해악을 막은 것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내가 석사학위 취득 중에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박사과정생으로 안 받아줄 경우 <딴지일보>에 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딴지일보>에서 나를 받아주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받아주었다면 <딴지일보>의 일을 철학보다는 훨씬 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국의 음모론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졌을지 누가 아는가?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런데 내 걱정은 왜 안 해줘?” 그 선배는 아직 교수는 아니지만 박사학위는 받았으므로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전 지도교수님이 나를 걱정하신다니 웬만하면 박사학위를 받고, 혹시라도 학위를 못 받더라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체로 비행 청소년이나 성인 범죄자들의 일탈 원인 중 상당 부분은 유전자에 있을 것으로 믿어왔다. 환경의 영향도 있겠으나, 거지 같은 환경에 산다고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환경이 같다면 무엇이 그들의 차이를 만들겠는가? 유전자밖에 없다. 환경이 중요하기는 중요하겠지만, 거지 같은 환경을 뚫고 나오는 사람도 있고 아무 문제 없는 환경에서 알아서 자기 인생 망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들까지도 환경의 산물인가? 그런데 전 지도교수님의 소식을 들으니 비행 대학원생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비행 청소년들에게도 주변에 자신을 걱정하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차피 타고난 범죄적 성향이야 어쩔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일탈 행위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꽤나 낮아질지도 모르겠다.
(2023.03.1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