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 교수가 경향신문 기사를 통해 소개한 ‘바바 사주로’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언어 천재의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 아니라 에도시대 일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에 주로 알려진 난학은 『해체신서』(解體新書) 같은 단편적인 사례와 관련된 것이지만, 실제로 일본인 난학자들은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온 유럽의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다고 한다. 김시덕 교수는 바바 사주로가 난학의 그러한 측면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바바 사주로는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어 통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를 배웠고 일찍부터 어학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808년 스물두 살의 바바 사주로는 도쿠가와 막부의 부름을 받고 에도로 갔고, 1811년에는 유럽 문헌을 번역하는 부서인 <화란서적화해어용>(和蘭書籍和解御用)의 책임자가 되었다. 1818년과 1822년에 에도 근처에 영국 배가 나타나자 그에 대한 대응을 담당했으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3개 국어(영어・네덜란드어・일본어) 대조 회화집인 <통역관필수영어집성>(譯司必用厄利亞語集成)을 집필했다. 이 뿐만 아니다. 바바 사주로는 청나라에서 수입한 만주어 사전을 독학하여 일본에 만주학을 만들었으며, 일본에 억류 중인 러시아인 바실리 골로브닌에게서 2년 간 러시아어를 배워 종두법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러시아학도 확립했다.
도쿠가와 막부 당시 일본은 신분 사회였고 바바 사주로는 평민이었다. 바바 사주로는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김시덕 교수는 이렇게 덧붙인다.
“평민 신분인 통역관이 어학 능력을 인정받아 사무라이 지위를 받고, 훗날 도쿄대학이 되는 정부부처가 오로지 그를 위해 설치되는 등 그는 사회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았고 사회를 위해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바바와 같은 인물의 존재는 동시대 비서구권의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 난학이 융성한 배경에는 세상을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한 공부를 중시하고,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은 신분을 막론하고 대우하는 사회구조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19세기 초반 일본의 이야기다. 그리고 다음은 21세기 초반 한국의 이야기다. 한국의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중은 개・돼지다.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 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처럼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 링크(1): [경향신문] 한국이 모르는 일본(5) - 바바 사주로, 에도시대 일본이 낳은 천재 (김시덕)
* 링크(2): [경향신문] 교육부 고위간부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 공고화해야”
(2016.07.0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