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3

외고에서 실천한 진로 교육

     

외고에서 <인지과학캠프>를 또 했다. 나는 똑같은 강의를 이틀 동안 여러 번 했다. 강의 끝내고 5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어떤 학생이 물었다. “대학에서 복수전공 하면 힘들어요?” 나는 “국문과로 들어갔는데 기계공학 같은 걸 복수전공 하면 죽는데 비슷한 것을 복수전공 하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라고 답했다. 다른 학생이 물었다. “복수전공 하면 학교를 더 오래 다니지 않아요?” 나는 “1년 정도 더 다닐 수도 있는데 어차피 대학 두 번 다닐 거 아니니까 한 번 할 때 더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더 했다. 고등학생들이 과에서 뭐 하는지도 모르고 과 이름에 꽂혀서 진학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 같다.
  
“기자되고 싶다고 신문방송학과 가는 학생이 종종 있는데 언론이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과 언론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건 별개입니다. 경제학과를 가는 게 낫습니다. 정치하고 싶다고 정치외교학과 가는 학생도 있는데, 정치제도 같은 거 알아봐야 그 제도에서 정치하는 건 전혀 다른 일입니다. 학부 졸업하고 로스쿨 가는 것이 정치인 되는 데는 더 유리합니다.
   
소설가 되고 싶다고 국문과 가는 사람도 있는데 국문과 출신 중에 맞춤법만 안 틀리고 글 못 쓰는 사람 상당히 많습니다. 글 쓰는 데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심지어 국문과 교수 중에 이상한 거 가르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글 잘 쓰고 싶으면 독학하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중요한 건데, 웬만하면 철학과는 안 가는 게 좋습니다. 애초부터 나는 똑똑하게 태어나서 물리학을 해도 되고 수학을 해도 되는데 철학이 땡긴다, 이러면 가도 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닌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경제학과를 다니다가 ‘경제 모형의 지위는 뭐지?’ 하는 물음이 든다든가 물리학과를 다니다가 ‘물리 법칙의 지위가 뭐지?’ 하는 물음이 들면, 그때 철학과를 복수전공을 하세요. 멋모르고 철학과 진학했다가 어느 날 문득 ‘아, 망했네’ 이런 생각이 들면 정말 망한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강의 전체 내용보다 강의 끝나기 전 5분 동안 말한 것이 학생들에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참교육을 실천했다.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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