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창과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그 동창은 교양 지식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회사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동창이 팟캐스트 이야기를 꺼냈다.
- 동창: “너는 <지대넓얕> 같은 거 하면 안 되냐?”
- 나: “아직 학위가 없어서 안 돼.”
- 동창: “그럼 나중에 학위 받으면 강신주 같이 할 수 있는 거야?”
- 나: “강신주? 멀쩡한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러면 안 돼.”
- 동창: “왜? 강신주 돈 잘 벌잖아.”
- 나: “그러면 학계에서 욕먹어.”
- 동창: “그게 그렇게 중요해?”
나는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가 성계탕 먹다 운 이야기를 했다. 이성계는 한 나라를 차지했는데도 개경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울면서 성계탕을 먹는다. 한 나라를 얻고도 국밥 먹다가 울 판인데, 나라를 얻는 것도 아니고 돈 몇 푼 벌려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 정도 명예심을 버릴 정도로 안 좋은 상황은 아니다. 내가 명예심 이야기를 하자 동창은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너 과학철학 하는데 쿤처럼 되면 안 되냐?”
흔히들 토마스 쿤을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만든 유명한 아저씨 정도로 안다. 한국에서 쿤의 인지도는 강신주나 채사장과 비슷하지만, 쿤은 그런 사람들과 비교될만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비유했다.
“쿤 같이 되면 좋지. 과학철학 전공자가 쿤 같이 된다는 게 어떤 거냐면 대충 이런 거야. 내가 신학교에 갔어. 예수님처럼 살아야지, 훌륭한 목사가 되어야지 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어. 그런데 신학교를 한참 다니다가 어느 날 알게 된 거지. ‘아, 내가 예수였네!’ 쿤 같이 된다는 건 그런 거야.”
동창은 과학철학에서 쿤이 차지하는 위치가 그 정도인 줄 몰랐다고 했다. 나는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의 내용이나 그 책이 나온 배경은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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