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30

고등학생에게 들려준 피타고라스의 일화

     

주말에 아르바이트로 고등학교에서 강의했다. 나는 아직 석사 학위도 없지만 일단 먹고 살아야 학위 논문을 쓰니까 고등학교에서 강의했다.
   
첫 시간이어서 강의 100분 중 전반부 60분은 철학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설명했고 후반부 40분은 『메논』 내용을 소개하고 논증을 분석했다. 전반부는 내가 예전에 다른 고등학교에서 강의했던 것과 페이스북에 썼던 내용을 정리하면 되는 거라서 별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학생들에게 『메논』을 읽어오라고 해놓고는 정작 내가 『메논』을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메논』을 두 번 읽고 강의 자료를 강의 전날 밤에 만들었다. 강의 자료만 만들고 예행연습도 안 해보고 잤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바로 강의했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강의 전날 학교에서 강의 인원을 76명으로 늘리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의 당일 고등학교에 가서 보니 방 안에 열일곱 살 남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남자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으면 분위기가 좋기 힘들다(군대 생활을 떠올려 보자. 그게 어렵다면 방청객이 죄다 남자인 방송 프로그램을 상상해보자). 그래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고, 나는 진박처럼 진심을 담아 강의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론에 등장하는 인문학을 소개한 뒤 그러한 것들이 왜 개뻥이며 개소리인지 진심을 담아 욕을 했다. 그런 다음 철학, 분과학문, 분과학문의 철학이 어떻게 성립했으며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 설명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분명히 학생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철학을 알아야 하는가? 나는 피타고라스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대강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이렇게 철학과 분과학문과 분과학문의 철학이 어떤 관계인지 이해하면 철학이 왜 사회에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거 아니에요? ‘그래, 철학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지?’ 우주 개발 한다고 하면 나라에서 나사 같은 데에 돈 퍼주고 연구원들이 열심히 연구하면 되잖아요. 우리가 원자력공학을 몰라도 전기를 쓰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전기료만 제때 내면 된다고. 그런데 왜 철학을 알아야 하느냐? 정확히 말하자면 철학책을 보면 어떤 점이 좋으냐? 나는 피타고라스의 일화가 여기에 답을 준다고 봐요.
  
보통, 철학자 하면 미친놈처럼 혼자서 골똘히 고민하는 줄 아는데 실제로 철학자들은 모여서 연구해요. 그건 지금도 그렇고 옛날에도 마찬가지예요. 
  
피타고라스가 사모스 섬인가 하여간 무슨 섬에서 혼자 지낸 적이 있어요. 혼자 지내니까 심심했는지 어떤 애를 꼬십니다. 애한테 제안을 해요. ‘내가 심심하니까 너 내 강의 좀 들어라. 그러면 강의 들을 때마다 3오블씩 주마.’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이렇게 강의를 하는데 여러분들이 나한테 돈을 주는 게 아니고 내가 여러분들한테 3만원씩 준다는 거예요. 좋죠? 그 애도 좋았겠지. 그래서 피타고라스한테 매일 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피타고라스가 그 애한테 말해요. ‘야, 내가 더 이상 돈이 없다. 그냥 가라.’ 이 때 애가 뭐라고 했을까?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라고 했을까요? 애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돈을 드릴 테니 부디 강의를 해주십시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 동안 돈 받은 거 가지고 빵 사먹고 재미있게 놀면 되잖아요. ‘에이, 이 아저씨 거지네. 같이 놀지 말아야지.’ 이러고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애는 왜 다시 돈을 돌려주면서까지 다시 강의를 듣겠다고 한 거냐는 거예요.
  
피타고라스는 인간 영혼이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고 보았어요. 이성, 기개, 정념, 이렇게 셋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게 나중에 플라톤한테까지 이어져요. [...] 기개나 정념을 통한 즐거움은 짐승도 알아요. 옆집 개도 내가 자기 영역 침범하면 컹컹 짖어요. 우리집 고양이도 옆집 고양이랑 재미있게 놀고 새끼도 낳고 막 그런다고. 이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비슷해요. 그런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지 않느냐는 거죠. 그게 바로 이성의 측면에서 본 즐거움이 아닌가 하는 거예요.
  
언론에 나오는 인문학 이야기를 들어봐요. 다 잘 먹고 잘 살고 돈 많이 버는 이야기뿐이야. 그런데 다 개소리고 개뻥이잖요. 왜 걔네는 삶의 질이나 학문의 즐거움 같은 건 말을 안 하냐고? 걔네는 쥐뿔도 모르니까. 그리고 사실, 입학사정관제로 대학 가는 게 말이 안 돼요. 왜? 입학사정관이라는 사람들도 믿을 수가 없다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부 입학사정관은 취직 못 하고 할 일 없는 애들을 대학에서 대충 뽑은 거예요, 그것도 계약직으로. 걔네가 뭘 알 거 같아요? 나는 걔네들 수준을 안 믿어요. (곳곳에서 탄성과 한숨이 터져 나옴) 그러니까 입학사정관제에서 떨어져도 그게 여러분들 능력 밖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나는 대학 입시 같은 거 몰라요. 그걸 염두에 두고 강의를 준비한 게 아니에요. 이 강의의 목표는 삶의 질을 높이자는 거예요. 대학 입시 관련된 건 넘치잖아요. 나는 이 강의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메논』을 봅시다.”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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