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5

고등학교에서 강의 요청을 받다

     

한 고등학교에서 인문학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한테 개인적으로 강의 요청이 들어온 건 아니고 철학과를 통해 들어온 것이다. 담당 대학원생은 강의 요청을 받고 제일 먼저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아직 석사도 못 받았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고등학생 앞에서 강의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주영처럼 조선소 짓기 전에 배 만들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석사 학위도 못 받은 놈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생들한테 강의하고 돈 몇 푼 받는 건 개인의 명예와 양심의 문제지만, 내가 강의를 안 하고 돈이 없어 굶어죽으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얼간이들이 내 죽음을 가지고 방송에 나와 덜 떨어진 소리를 하고 신문에 똥 같은 칼럼을 쓸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한국 사회를 위해 강의하기로 했다.
  
동료 대학원생의 연락을 받고 나서 며칠 후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〇〇〇 박사님이시죠?” 나는 깜짝 놀랐다. “〇〇〇은 맞는데 박사는 아닌데요.” 강의를 요청한 고등학교의 교감 선생님의 전화였다. “박사 과정도 아니구요 아직 석사도 못 받았습니다.”, “하하하, 곧 박사가 되시겠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른들은 사업체가 없는 사람도 사장님이라고 부른다더니 정말 그랬다. 선생님 소리를 듣기에 나는 어렸고 교사도 아니었다. 그래도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건 정말 아니었다.
   
교감 선생님은 강의를 총 5회 진행할 계획인데 5회 모두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정치외교학과 학생도 강의를 나눠서 한다고 알고 있었다. 강의 연락을 받았을 그 대학원생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그 학생이 굶어죽어도 사회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돈이 탐났지만 5회 중 3회만 하기로 했다. 교감 선생님은 이번에 특별한 문제만 없으면 내년에도 또 할 생각이고 그때는 올해 강의 들은 학생을 대상으로 심화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의 주제와 내용도 모두 나한테 맡겼다.
  
돈을 받기로 했으니 고객의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 100분씩 총 3회 강의고 인문학이 주제니까 첫 시간은 서양철학, 그 다음 시간은 동양철학, 마지막은 역사를 강의하면 될 것 같다. 공부하기 싫거나 공부가 잘 안 될 때 괜히 이것저것 읽거나 글 쓴 게 있으니 그런 걸 정리하면 강의 준비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첫 시간에는 철학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설명하며 지나가는 이야기로 강신주와 이지성을 욕한 다음 고대 그리스 철학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고 플라톤의 『메논』을 살펴볼 것이다. 두 번째 시간에는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를 소개하고, 『맹자』와 『순자』에서 지식에 관한 부분을 해설할 것이다. 세 번째 시간에는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나오는 몇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며 사마천의 인간관, 역사관, 도덕관 등을 설명할 생각이다.
  
생각난 김에 슬라이드를 몇 개 만들어보았다. 시험 삼아 만들어 본 것이라 강의 때 학생들한테 이걸 보여줄지는 확실하지 않다.
  
  
  
  
(201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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