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학교에 갔을 때 복도에서 동양과학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은 내가 몇 년째 겪는 일을 아셔서 안타깝게 생각하신다. 그래도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변호사 사무소 사무장 하면 잘 하겠다.” 집과 관련된 소송과 민원을 잘 처리하더라면서 위로의 뜻으로 농담을 하신 것이다.
그 선생님을 만나고 일주일쯤 후였나, 과학사와 과학기술학에 걸쳐 있는 대학원생을 만났다. 그 대학원생은 다른 과 수업을 들은 이야기를 했다. 과학사나 과학기술학 전공자들은 사회학과나 인류학과 쪽 전공 수업을 듣는데, 평가는 대체로 둘로 갈린다. 해당 수업들에서는 프랑스 철학을 다루는 모양인데, 이를 좋게 보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프랑스 철학을 안 좋게 보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연구에 도움이 될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와 만난 대학원생은 후자 쪽이었다. 그 대학원생은 이렇게 말했다.
“거기서는 프랑스 철학이 아예 자기 것인 줄 알더라니까요!”
프랑스 철학이 철학과 것이 아니고 자기네 것인 것처럼 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툭 나왔다.
“그게 부동산으로 치면 점유취득 같은 거예요. 점유취득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하나는 평온하게 점유해야 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공공연하게 점유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까 말한 그 과에서 프랑스 철학 같은 경우는 수업 개설할 때 철학과하고 싸우지 않았으니까 평온하게 점유한 것이고, 다른 과의 학생들도 올 정도로 대놓고 했으니까 공공연하게 한 것이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한 게 시간이 꽤 되죠? 그러면 그 과에서 거의 프랑스 철학을 자기네 것으로 등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이게 부동산에서는 그게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1995년에 나온 대법원 판례가 중요한데 [...]”
동양과학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을 잘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안다. 그래도 나도 웃으면서 그 선생님께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졸업하고 교수 되도록 해야죠. 안 되면 정말 사무장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어떻게 해봐야죠.”
(202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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