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감나무 이야기는 어린 이항복의 기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읽히고 있다. 나도 어렸을 때는 그 이야기가 어린 아이의 기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마흔 살이 넘어 다시 읽으니 그런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옆집 주인인 권철(권율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옆집 감나무가 내 집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내 토지를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옆집에서 감나무 가지가 넘어오지 않았다면 담장 근처 내 땅에 내 감나무를 심었을 수도 있는데, 옆집 감나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옆집에서 자기 집 감나무 가지를 치든지 나한테 양해를 구하든 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가을이 되니 옆집 하인들이 내 집으로 들어온다. 왜 왔냐고 하니 감 따러 왔단다. 화가 나겠는가, 안 나겠는가?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화가 나서 옆집 하인들을 쫓아냈더니 오밤중에 옆집 애새끼가 몰래 내 집에 들어와서는 창호지 문을 주먹으로 뚫고는 이 팔이 누구 팔이냐고 묻는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의 애새끼가 있나? 보통 사람이라면 “네 팔이니 네가 아프겠지?” 하면서 효자손 같은 것으로 손모가지를 후두려 패든지 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권철은 일조권을 침해한 집의 애새끼가 재물손괴까지 했는데도 하는 말이 이치에 맞다며 감까지 돌려준다.
이렇게 본다면, 어린 이항복의 기지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권철의 인내심과 아량이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링크: [지역N문화] 오성 이항복과 감나무
( https://ncms.nculture.org/traditional-stories/story/754 )
(202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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