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5

일부 인문대 학부생들의 강의평가와 성적이의신청

     

아침부터 어떤 박사가 침울한 표정으로 연구실 복도를 배회했다. 서울 모 대학에서 학부 전공수업을 했는데, 형편없는 강의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어쩌면 그분은 본인의 학문적 수준과 무관하게 정말 못 가르쳤을지도 모른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똑똑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대체로 두 가지 방식(노잼 or 핵노잼)으로 말하기 때문에, 수업에서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의평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수강생 중 무려 3분의 1이나 “대학원 수업에서 다룰 내용을 학부 수업에서 가르쳤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그 수업에서 사용한 교재는 나도 안다. 번역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읽는 데 문제가 없고 내용도 좋은 책이다. 나는 그 책이 분석철학의 전반적인 주제를 잘 다루기 때문에 학부 전공수업 교재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그 책을 새로 번역해서 교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의 책이다. 그런데도 그 학교 학부생들은 대학원 수업 운운했다는 것이다.
  
대학원 수업 운운하는 것이 온당한 비판이 되려면, 우선 해당 학부생들은 대학원 수업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진행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것을 알겠는가?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1-2학년 학부생들이 방학 때 간혹 혼자서 개설서로 읽는 책인데, 그걸 가지고 대학원 수준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아는 것이 없고 본 것도 없단 말인가? 내가 알기로는 아무리 망한 대학원이어도 그 정도 학부 교재를 가지고 대학원 수업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황당한 건 이뿐이 아니다. 해당 수업에서는 교재의 영어본 3판, 영어본 4판, 번역본 3판 번역본 PDF 파일을 수업 게시판에 올리고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사용하도록 했다. 시효가 지나서 저작권 문제가 없는 자료라서 그렇게 한 것이다. 해당 수업의 강사는 해당 교재를 제본하든 인쇄하든 아이패드로 보든 학생이 편의대로 사용하도록 배려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이 “교재 파일을 제본하니 4만 원 정도 나온다. 제본한 건 중고로 팔 수도 없다.  교수는 강의록을 제본해서 4천 원에 파는데 그걸 참고했으면 좋겠다”고 강의평가에 써놓았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인가?
  
다른 수업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했다. 잘한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다른 학생보다 비교적 나은 편인 학생에게 A를 주었는데 해당 학생이 그 박사 분에게 성적 이의신청을 했다고 한다. “친구들한테 알아보니 이 수업에서 아무도 A+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수업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A+를 받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A를 A+로 올려 달라.” 결과에 상응해서 평가를 받아야지 노력에 비례해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사업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노력만 가지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다. 그런데 왜 공부만은 예외라고 생각할까?
   
이들은 왜 이 모양인가? 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미친 소리를 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학부 때 주변 사람들이 비슷한 짓을 하는 것을 보기는 했다.
    
꼭 성적이의신청 할 때가 되면 건강한 어머니가 환자가 되고(“어머니가 아프셔요”), 강남에 있는 아파트가 옥탑방이 되고, 룸펜이 생계부양자가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게 성적과 뭔 상관이냐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게 어느 정도는 통했는지 매 학기마다 그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것이 실제로 통한다는 일화를 선배가 후배에게 말하는 것도 옆에서 봤었다.
   
어떤 사람은 후배한테 학점 잘 받는 법이랍시고 “강의실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 중에 교수님 눈을 자주 맞추고, 별로 공감하지 않아도 눈을 마주칠 때 고개를 끄덕이고, 안 궁금한 것도 궁금한 척 질문하면 전보다 공부를 딱히 더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교수가 점수를 잘 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학점을 1점이나 올렸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학부를 다니던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생들 버릇을 더럽게 들여놓는 교수들이 문제의 원인인 것 같다. 공부를 한다고 쉽게 느는 것도 아니고 타고난 머리도 어쩔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좋은 것을 보고 알게 되면 최소한의 분별력은 생길 것인데, 교수들이 자기들 편하려고 학생들이 염병하는 것을 다 받아주니까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다 교수들 때문이다.
   
  
 * 한 줄 요약: “오냐 자식이 후레자식 된다.” - 이말년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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