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2

[과학사] 갈릴레오, 『대화』, 「첫째 날 대화」 요약 정리 (미완성)

   
[ 갈릴레오 갈릴레이, 『대화: 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 이무현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6). ]
  

■ 다른 물질에 대한 논쟁 
-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계에 두 개의 완전히 다른 물질들이 있다고 가정함.
• 하늘의 물질은 절대 변하지 않고 영원함.
• 지구의 기본 물질은 일시적으로 변할 수 있음.

■ 3은 완벽한 수이고 3차원은 완벽한 것
- 소요학파의 주장 
• 모든 것은 3으로 결정됨.
• 시작, 중간, 끝
• 3은 신에게 재물을 바칠 때 쓰는 수 
• 전부라는 말은 셋이 있을 때 씀.
- 소요학파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과학적 증명이 필요함.
• 살비아티의 3차원 증명 
• 이를 바탕으로 운동의 종류를 구분 

원 운동, 직선 운동
단순한 운동(선들 중에서 원과 직선이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 단순물질(불, 흙) 
중심을 향해 움직임, 중심에서 멀어짐, 중심을 따라 돎.

원+직선 운동: 섞인 운동 → 여러 물질 

■ 반론
- 자연계의 물질들 중에서 움직이는 물질만을 언급
• cf.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운동의 원리와 움직이지 않는 것의 원리’로 정의함.
- 단순한 운동이 자연스러운 운동이라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도 자연스런 운동임.
- 섞인 운동은 불가능함
• 여러 물질로 구성된 물체는 그 중 가장 큰 성분을 구성하는 물질의 성질에 따라 움직임.
• 곧은 직선을 따라 움직이는 운동도 어떤 경우에는 단순하고 어떤 경우에는 섞인 운동이 됨.


속력에 대한 논쟁 (직선 운동의 불필요함 증명) 
어떤 물체가 정지해 있다가 움직이기 시작해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질 때 그 물체는 어떤 속력보다 느린 모든 속력들의 단계를 거친다. 

■ 살비아티의 증명(1)
-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본성에 따라 움직이려고 하면, 반드시 원운동을 해야 함.
• 직선 운동을 하면 위치가 바뀌고 원래 위치에서 점점 멀어짐.
• 직선 움직임이 자연 원리에 맞는 운동이라면 처음에 자신에게 맞는 위치에 있지 않았음.
• 세상은 완전하고, 따라서 자리를 바꿀 수 없음.
- 어떤 물체가 움직이려는 본성이 있다면 어떤 특정한 곳을 향해서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어야만 움직임.
•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다면 그 물체는 점점 빨라짐.
- 정지 상태에서 어떤 속력을 얻으려면 그보다 느린 속력, 그것보다 더 느린 속력을 거쳐야 함.
- 속력이 계속 빨라지는 것은 이 물체가 계속해서 움직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고 목표지점이 있을 때 일어나고 가장 빠른 길을 택할 것.
• 그러므로 정지해 있는 물체에 어떤 속력을 주려고 하는 경우 직선운동을 하게 됨.
- 경사면으로 공을 굴리고 수직으로 떨어뜨렸을 때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이 빨리 떨어지지만 속도는 같다.(속도=거리/시간) 
- 무거운 물체가 정지해 있다가 움직일 때 어떤 속력을 얻으려면 그보다 느린 모든 속력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
• 경사를 극히 조금 세우면 공이 경사면을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얼마든지 길게 늘릴 수 있음.

■ 살비아티의 증명(2)
-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뀔 때, 두 상태가 서로 가깝다면 두 상태가 완전히 동떨어진 것보다 바뀌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쉽게 일어남.
• 정지한 것은 가장 느린 상태이고, 이것들은 느린 정도가 무한대임.
• 공이 점점 느려져 멈추기까지 그 공은 더욱더 느린 상태를 거치게 되고, 한 뼘 움직이는데 천 년 정도의 속력인 상태도 거치게 됨.
• 공이 정지 상태에서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공이 올라올 때 거쳤던 느린 속력의 단계들을 거꾸로 밟아 올라감.


■ 다른 물질에 대한 구체적 논쟁
- 하늘의 물질들은 불변하고 땅의 물질들은 변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 증명
- 증명(1): 연역적 증명
• 어떤 것이 새로 생기거나 바뀌는 일은 반대되는 것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함.
• 반대되는 물질은 움직일 때 반대 방향으로 움직임.
• 원 운동은 그에 반대되는 운동이 없음(원운동은 다른 하나에 대해서만 반대 가능)
• 하늘에 있는 물체들은 원운동을 하기 때문에 반대되는 물질이 없음.
• 하늘의 물질은 불변함.
- 반론 
• 하늘의 물체들은 절대 생성되고 소멸되지 않으므로 그들은 반대되는 물체를 가짐.
• 반대되는 물체는 생성・소멸되는 물체를 말함.
• 그런데 반대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생성・소멸될 수 있음.
• 그러므로 하늘의 물체들은 생성・소멸됨.
- 증명(2): 귀납적 증명
• 지구의 물질들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하늘에 있는 물체들은 이런 일이 없음.(관찰, 증언, 기록에 의거)
• 하늘의 물체는 불변/땅의 물체는 계속 변화 => 둘은 서로 완전히 다름
• 어둡고 빛이 안 나는 물체 ↔ 밝게 빛나는 물체 
• 땅은 어둡고 빛이 없지만 하늘의 물체들은 밝고 빛남.
• 하늘과 땅의 물체는 서로 반대임.
- 반론 
• 하늘에 있는 물체는 변화가 없다는 주장에 관해 직접 눈으로 보거나 관찰할 수 있는 것만 믿는다면 중국이나 미국은 천체와 마찬가지.
• 그 곳의 변화를 본적이 없으니 거기에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는가?
• 게다가 달은 미국보다 수백 배 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관찰하기 더 힘듦.
- 재반론 
• 대홍수에 의한 지중해의 생성 과정과 같은 큰 변화가 달에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큰 변화는 관찰 가능했을 것.
• 그러나 달에서는 그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달은 불변.
- 재반론
• 대홍수 이전부터 지구에 생성・소멸의 과정이 있었던 것처럼 달에게도 그리한 큰 변화가 꼭 필요한 조건은 아님.

■ 하늘이 변화했다는 증거
- 달의 궤도보다 먼 곳에서 혜성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관측
- 1572년과 1604년에 두 개의 새로운 별이 태어났음을 관측 
- 흑점의 존재
  
■ 소요학파의 반론
- 반론(1): 행성이다. 
•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 돌다가 해 앞으로 지날 때 검게 보이는 것.
• 이들의 수가 매우 많아서 가끔 한데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함.
- 반론(2): 공기 중에 무언가 헛것이 생긴 것임.
- 반론(3): 망원경의 렌즈가 잘못되어 허상이 보이는 것임
- 반론(4): 여러 종류의 어두운 물체들이 모인 것이며 이 물체들은 해를 중심으로 돌고 있음 (심플리치오의 주된 견해)

■ 반론(4)에 대한 재반론
- 검은 점들이 해의 가운데에서 생기고, 사라질 때도 가장자리가 아닌 가운데에서 사라짐.
• 이것들이 새로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이들은 움직여서 나타나는 것이니 가장 자리에서 생기고 가장자리에서 사라져야 함.
- 검은 점의 생김새가 바뀌는 것과 검은 점의 속력이 바뀌는 것을 관찰해 보면, 이것들이 해의 표면에 붙어 있음을 알 수 있음.
• 가장 자리에서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해의 가운데에서 빨리 움직임.
• 생김새가 중심에 있을 때와 비교해 가장 자리로 가면 아주 가늘어짐.
• 그러므로 흑점이 해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원을 그린다는 이론은 틀림.
- 똑같은 검은 점들이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반드시 나타난다는 말도 확인된 바 없음.
-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측 결과는 이론이나 주장보다 더 우월하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보다 천체에 관해서 더 잘 관찰할 수 있고 더 잘 추론할 수 있을만한 근거가 있음.

■ 달과 지구의 공통점
- 공통점(1): 둥글다.
• 보기에 그렇다.
• 햇빛을 받는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음.
• 달은 해를 향한 곳부터 빛을 받기 시작해서 차차 이웃한 부분들도 빛을 받으며, 그래서 보름이 되면 전체 둥근 원이 다 빛을 다 받게 됨.
- 공통점(2): 지구와 마찬가지로 어둡고 불투명함.
• 불투명하기 때문에 햇빛을 받아서 반사할 수 있음.
• 달이 투명하다면 일식을 설명할 수 없음.
- 공통점(3): 구성 물질들이 조밀하고 단단함.
• 달의 표면에서 상당히 넓은 부분들이 고르지 않음.
- 공통점(4): 지구가 바다와 땅으로 나뉘듯이 달도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으로 구별 가능.
• 달에서 지구를 보면 바다는 어둡게, 육지는 밝게 보일 것임.
- 공통점(5):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과, 그 주기는 지구와 같다.
• 지구에서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을 관찰할 때 나타나는 일들은 달에서 지구를 관찰할 때 다 나타남. 다만, 이 둘의 순서가 바뀌어 나타남.
- 공통점(6): 지구가 햇빛을 못 받을 때 달이 지구를 비춰주듯이(햇빛을 반사함으로써) 지구도 달에게 빛이 필요할 때 햇빛을 반사해서 비춰줌
- 공통점(7): 달과 지구는 서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서로 해를 끼치는 것도 마찬가지임. 
• 일식과 월식

■ 반론
- 반론(1): 지구와 마찬가지로 어둡고 불투명하다에 관해 
• 이 달이 불투명한 건 맞지만 어둡지는 않다.
• 초생달일 때 햇빛을 받아 빛나는 부분이 아닌 월면의 다른 부분에서 빛이 나는 것은 달이 직접 빛을 내는 것임.
• 지구에서 반사된 빛이 아님(∵ 지구는 어두워서 햇빛을 반사할 수 없다)
- 반론(2): 지구가 바다와 땅으로 나뉘듯이 달도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으로 구별 가능하다에 관해
• 멀리서 볼 때 지구의 밝고 어두운 부분은 반대가 될 것.
• 물은 투명하고 고르기 때문에 표면에서 빛을 반사해서 밝게 보일 것이고, 땅은 불투명하고 거치니까 빛을 반사하지 못해 어둡게 보일 것임.
- 반론(3): 지구도 달에게 빛이 필요할 때 햇빛을 반사해서 비추어준다는 것에 관하여
• 지구는 어둡고 불투명해서 햇빛을 반사할 수 없음.

■ 달에 관한 논쟁
- 달처럼 빛을 반사하려면, 빛을 반사하는 표면은 거울처럼 매끄럽고 윤이 나야하는가, 아니면 거칠고 울퉁불퉁하고 잘 닦지도 않은 것이어야 하는가.
- 거울 실험
• 거울과 벽 중에서 햇빛을 받았을 때 더 밝은 것은 벽임.
• 거울이 빛을 직접 반사하는 부분에서만 거울이 벽보다 훨씬 밝음.
• 그러나 벽이 반사하는 부분은 사방으로 퍼져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거울보다 더 밝음.
• 달이 빛을 반사하는 원리는 벽과 흡사함.
• 볼록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원리
- 거친 표면의 달이 밝게 보이는 이유
• 벽의 거친 표면은 수없이 많은 조그마한 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온갖 종류의 기울기로 놓임.
• 거친 물체 위로 빛이 내리쬐면, 그와 마주보고 있는 장소에서는 어느 곳이든 물체의 표면의 무수히 많은 조그마한 면에서 반사된 빛을 받게 됨.
• 광원으로부터 빛을 받는 물체와 마주보며 놓인 면은 모든 곳에 반사된 빛이 와 닿으므로 밝게 됨.
• 광원으로부터 빛을 받는 물체는 어느 곳에서 보든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음.
• 달의 표면은 매끄럽지 않고 거칠기 때문에 햇빛을 사방으로 반사하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정도로 밝게 보임.
- 표면이 불규칙할수록 빛을 더 강하게 반사하는 까닭
• 빛은 어떤 면의 수직으로 내리쬘수록 더 많은 빛을 받음.
• 달의 표면이 높은 산들로 덮여 있다고 가정하면(표면이 불규칙하면) 산봉우리나 산마루는 완벽한 공모양일 때의 표면과 비교해 높이 솟아있기 때문에 햇빛을 받는 면이 덜 기울어져 있게 됨.
• 다른 부분에 비해 더 밝아 보임.

■ 지구가 달처럼 햇빛을 밝게 반사하는 이유 
- 낮이나 밤이나 달의 밝기는 같은데 밤에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더 밝아 보임.
- 지구의 밝기와 달의 밝기를 올바르게 비교하려면 낮에 보이는 달빛과 지구의 빛을 비교해야함.
• 예) 낮의 구름과 밤의 구름
- 초생달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부분이 지구에서 반사된 빛이다.
• 행성들이 그들의 움직임과 빛을 비추는 것으로 지구에 영향을 끼친다면 역으로 지구도 그들에게 빛으로 혹은 움직임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음.

■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 소크라테스가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다?
- 인간의 지식의 정도는 두 가지가 있음.
• 지식의 넓이
• 지식의 깊이
- 지식의 넓이는 일일이 셀 수 없으며 그중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적기 때문에 0이나 마찬가지임.
- 지식의 깊이는 실제로 사람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여럿 있음.
• 이런 것들은 수학에서 나옴.
• 이런 지식은 신의 지식과 동등함.
• 사람의 지식으로도 필요한 것을 모두 이해하므로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음.

■ 사람의 지혜야말로 신이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임
  
  
(2020.04.30.)
    

2020/02/21

똥글 선호자의 최면 감수성에 관한 가설

   
문학이나 예술 쪽 종사자 중 일부는 글을 쓸 때 자유연상법을 즐겨 쓴다. 자유연상법을 즐겨 쓰는 정도가 아니라 자유연상법만으로 글을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영화 <혹성탈출>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보자. <혹성탈출>에는 원숭이가 나오고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간 건 사과고 사과는 맛있고 맛있는 건 바나나인데, 바나나하면 남근이 떠오르는데 김건모는 왜 그랬냐면서 글이 끝날지도 모른다. 아무 맥락 없이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이 등장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전문 분야에 대해 폼 잡고 기괴한 글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전문 용어를 도입해놓고 그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글쓴이가 어떤 의도로 그 용어를 쓰는지 설명하기 전에 다른 전문 용어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전문 용어를 계속 나열하기만 해서 글 한 편을 완성한다. 아무런 설명이나 분석 없이 어휘력을 자랑하다가 글이 끝나므로,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 없이도 글을 쓸 수 있다. 인공지능으로 그런 글을 쓴다고 해보자. 알파고 이야기하다가 강한 인공지능 이야기하다가 특이점 이야기하다가 계산주의/연결주의 이야기하다가 라이프니츠는 계산을 좋아했다고 하면 글 한 편이 뚝딱 나온다. 이거 개소리 아니냐고? 물론 개소리다. 그러든 말든 분량은 채웠으니 글 한 편이 나왔다고 우기면 된다.
  
건전한 판단을 하는 사람이 그런 글을 읽는다면 지금 무슨 똥을 본 것인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감이 없는 사람은 글쓴이가 전문적인 내용을 압축해서 썼다고 생각하고, 좀 독특한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감이 없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왜 독특한 사람들은 그런 똥 같은 글을 읽으며 야릇한 흥분을 느끼는가. 학부 때 나는 그 두 부류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둘 다 머리가 나빠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바뀐 것은, 대학원에 와서 여러 과를 돌아다니면서였다. 다른 것을 할 때는 굉장한 사람인데 똥글이나 똥발표 앞에서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똥글이나 똥발표에 대한 이상 반응은 단순히 지능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지능 차이 가설은 이미 오래전에 버렸다. 나의 새로운 가설은 ‘최면 감수성 차이 가설’이다. 최면 감수성의 차이가 반응 차이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최면 감수성이 높으면 최면에 잘 걸리고 최면 감수성이 낮으면 최면에 잘 안 걸린다고 한다. 똥글이나 똥발표에는 비-지시적 최면의 요소가 있고 그러한 요소가 최면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의 이상 증상을 유도한다는 것이 최면 감수성 차이 가설이다.
  
최면의 필수 요소로는 연상과 은유가 있다. 똥글이나 똥발표는 어떤가? 걸핏하면 무엇과 무엇이 비슷해 보인다고 한다. 아무 상관없는 것들을 늘어놓고는 그러한 것들끼리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다. 별반 상관없는 대상들은 연상과 은유를 통해 연관을 가진다. 어떤 대상의 본질적인 속성과 거리가 먼 속성을 부각하고, 그 속성을 부차적인 속성으로 가지는 다른 대상을 연달아 나열한다. 아무 관련 없는 것들을 나열하기만 해놓은 글을 읽고도 그 글이 어떤 대상을 분석했다고 생각하거나 심오한 함축을 가진다고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일반인보다 연상이나 은유를 쉽고 빈번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최면의 또 다른 필수 요소는 감각적 표현이다. 가령, 최면을 걸 때 피험자에게 “사과가 있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의 색상, 냄새, 감촉, 한 입 물었을 때의 아삭 하는 소리, 과즙 같은 것들을 생생하게 묘사해야 한다. 똥글은 어떤가? 감각적 표현이 불필요한 내용을 다루는 경우에도 감각적 표현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똥글에는 최면적 질문과 트랜스 유도성 탐색과 연관되는 부분도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한참 토론하다가 갑자기 “오늘은 며칠이죠?”라고 물으면 누구라도 잠시 멍해지는 경험을 한다. 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잠시 트랜스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똥글이나 똥발표에서도 비슷한 특징이 나타난다. 가뜩이나 별 내용도 없는 글인데 중간에 뜬금없는 소리가 나온다. 그런 때 최면 감수성이 낮은 사람은 ‘이거 미친 놈이네’ 하면서 글을 덮겠지만, 최면 감수성 높은 사람에게 그런 봉창 두드리는 소리는 트랜스 상태로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똥글 선호자들은 글에서 뜬금없는 소리하는 부분을 높게 평가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부분을 읽을 때 짜릿해하는 등의 이해하기 힘든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도 최면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비-지시적 최면에서는 상담자는 피-상담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일종의 라포를 형성하다가 대화의 방향을 바꾸면서 트랜스 상태로 빠뜨리는 것이다. 똥글이나 똥발표는, 개인 경험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도 개인의 경험을 그렇게 우라지게 강조한다. 최면 감수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경험담을 들으면서 동의의 반응을 격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트랜스를 유도하는 데는 여러 가지 화법이 있는데, 그 중에는 혼란 기법을 사용한 최면 유도도 있다. 똥글이나 똥발표를 보면, 사실은 하나도 놀라울 것이 없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마치 대단히 놀라운 일인 것 마냥 나열한다. 아무리 현란한 수식어나 쇼맨십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자명한 사실이라서 독자나 청자는 계속 그러한 내용에 수긍하게 된다. 일종의 예스 세트(yes set)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예스, 예스, 예스를 반복하다가 한순간 사람들을 혼란한 상황에 빠뜨린다. 사람들은 혼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심리적 저항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암시 화법에는 반어법을 사용한다든지, 함축적인 말을 쓴다든지, 어떤 권위 있는 말을 인용한다든지, 모호한 표현을 쓴다든지, 아무 내용 없는 빈 말을 한다든지, 혼란스러운 말을 한다든지, 대조적인 단어들을 나열해서 선택이 어렵게 만든다든지 하는 등이 있다. 실제 똥글이나 똥발표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매우 빈번히 등장한다.
  
내 가설을 어떤 방식으로 검증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 가설이 맞다면, 이는 글쓰기 교육과 관한 함축을 가질 것이다.
  
정상적인 글쓰기 교육에서 아무 이유 없이 저항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 그러한 학생들이 뭔가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수업에서 분탕을 치고 자꾸 소모적인 논쟁을 하려고 하거나 이상한 과제물을 제출하면 강사나 조교의 시간을 빼앗게 되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기존의 글쓰기 수업에서는 그런 학생들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지 않았다. 최면 감수성 차이 가설에 기반한 대응 매뉴얼을 갖추게 된다면 글쓰기 수업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많은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 수업 중에는, 똥글 선호자들의 이상 반응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극하는 요소들이 포함된 수업이 적지 않다. 보고서나 논문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체계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자기 이야기나 쓰게 하고 무절제한 연상 능력을 보여주는 글이나 쓰게 한다. 최면 감수성 차이 가설은 현행 글쓰기 수업이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2019.12.21.)
      

2020/02/19

[중국사] 사마천 『사기』 권1 「오제 본기」 요약 정리 (미완성)

   
[ 사마천, 『사기본기』,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5). ]
  
  
■ 
- 황제(黃帝)는 소전씨(少典氏)의 자손.
성은 공손(公孫)이고 이름은 헌원(軒轅).
아주 어려서도 말을 할 수 있었음.
어렸을 때는 생각이 빨랐고, 자라서는 인정 많고 사리에 많았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해박하고 기억력이 좋고 총명했음.

- 헌원이 살던 시대는 신농씨(神農氏)의 후손들이 쇠약했음.
제후들은 서로 침략을 일삼으며 백성들을 포악하게 대했으나 신농씨는 그들을 정벌하지 못함.
헌원은 방패와 창을 쓰는 법을 익혀서 조공하지 않는 자들을 정벌하자, 제후들이 모두 와서 복종함.
그러나 치우(蚩尤)는 포악하여 능히 토벌할 수 없었음.
- 주석
• 신농씨(神農氏): 농업의 신. 염제(炎帝), 즉 태양의 신이기도 함. 의약의 신으로도 받들어짐.

염제(炎帝)가 제후들을 쳐서 없애려고 하자 제후들이 모두 헌원에게 귀의함.
헌원은 덕을 쌓고 군사를 정돈하고, 사계절의 변화와 오기(五氣)를 다스리고, 오곡(五穀)을 심어 만백성을 어루만졌으며, 사방의 토지를 측량함.
웅비, 비휴, 살쾡이, 호랑이를 훈련시켜 판천(阪泉)의 들판에서 염제(炎帝)와 싸움.
세 번의 싸움 끝에 황제는 그 뜻을 이룸.
- 주석
• 오기(五氣): 오행(五行)의 기를 의미한다는 설과 청(淸), 우(雨). 냉(冷). 열(熱). 풍(風) 등의 다섯 가지의 기상 상태를 의미한다는 설이 있음.
• 웅비(熊羆): 웅은 곰이고 비는 큰곰 또는 말곰.

치우가 난을 일으켜 황제(헌원)의 명을 따르지 않음.
황제는 제후들의 군사를 징집하여 탁록(涿鹿)에서 싸워 치우를 사로잡아 죽임.
제후들은 헌원을 천자로 추대하여 신농씨(神農氏)를 대신하게 하니, 이가 황제(黃帝)임.
황제는 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들을 쫓아가 정벌하고 평정되면 떠났으며, 산을 개간하여 길을 뚫느라 편하게 지난 적이 없었음.

동쪽으로 나가 바다에 이르자 환산(丸山)에 오르고 대종(岱宗)까지 나아감.
서쪽으로는 공동산(空桐山)에 이르렀다가 계두산(雞頭山)에 오름.
남쪽으로는 강수(江水)에 이르렀다가 웅산(熊山)과 상산(湘山)에 오름.
북쪽으로는 훈육(葷粥)을 쫓아내고 부산(釜山)에서 부절을 맞추어보았으며 탁록산(涿鹿山) 밑의 평원에 도읍을 정함.
- 주석
• 환산(丸山): 범산(凡山)이라고도 함. 지금의 산동성 유방시(濰坊市) 창락현(昌樂縣)과 임구현(臨胊縣) 사이에 있는 산.
• 대종(岱宗): 태산(泰山)을 말함.
• 훈육(葷粥): 흉노의 요임금 때 명칭. 주나라 때는 험윤(獫狁), 진한(秦漢) 때는 흉노라 부름.


(2020.02.20.)
   

경제학자 부부가 쓸 수 있는 애정 표현?

   
“all else being equal”, “all other things being equal”, “everything else being equal” 같은 표현은 경제학 논문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일 것이다. 논문 저자가 모형을 설명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해당 모형이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다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상황에 적용되는 것임을 밝힐 때 쓴다.
  
한국에 오는 해외 경제학자들을 보면 부부 경제학자들도 드물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 중에 애정 표현할 때도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없을까? 가령, 구애하거나 청혼할 때 이런 표현을 쓸 수도 있겠다. “당신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소.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이렇게 말하면 나중에 왜 사람이 달라졌느냐, 사랑이 식었느냐는 등의 물음에도 적절한 답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건이 달라졌으니까”라고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직 경제학자의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은 아직 경제학자들 중 사랑에 대하여 그러한 표현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고 하셨다. 아마 경제학자들도 다분히 로맨틱해서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그 분의 말씀이다. 사랑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충격(shock)으로 설정하는 경제학 모형은 있다고 한다.
  
  
(2019.12.19.)
    

2020/02/16

[외국 가요] 산타 에스메랄다 (Santa Esmeralda)



Santa Esmeralda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영화 <킬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배경음악]

www.youtube.com/watch?v=uvXeeus94GY )


Santa Esmeralda - You’re My Everything

www.youtube.com/watch?v=V5pSQFG_nD4 )



(2021.10.01.)


한국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삼국지>를 만든다면

리들리 스콧의 영화 <나폴레옹>은 영화가 전반적으로 재미없다는 것을 다 떠나서 약간 놀라운 게 있는데, 바로 나폴레옹이 영어를 쓴다는 점이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처럼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아닌데, 나폴레옹이 주인공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