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9

강신주가 철학 대중화에 기여한 바



강신주 책을 읽고 강신주를 싫어하게 된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신주 책이 너무 이상하다고 하니까 친구는 ‘그래도 강신주는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더라구요.” 내가 보기에 강신주 때문에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은 일본 AV를 보다가 일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나 똑같다. 만화나 게임으로 일본어를 익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야동으로 일본어를 익힌 사람은 거의 못 봤다. 내가 알기로, 야동이 계기가 되어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익힌 사람은 <딴지일보>의 마사오와 미노루 뿐이다.

명작 만화나 명작 게임은 두고두고 감상할 가치가 있다. 감상을 거듭하다 보면 지난 번 감상 때 알아차리지 못했던 측면을 발견하게 되고, 더 높은 수준으로 즐기기 위해 그것에 파생되어 나오는 다른 작품과 그것의 모태가 되는 작품까지 접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다 보면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접근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포르노는 그런 게 없다. 욕구가 끓어오른다, 포르노를 본다, 욕구가 해소된다, 순간 판단을 잘못하여 포르노를 지운다, 또 욕구가 끓어오른다, 다른 포르노를 본다, 욕구가 해소된다, 또 포르노를 지운다, 다른 포르노를 본다, 이런 식이다. 포르노를 깊은 수준으로 감상하기 위해 일본의 성 풍속을 탐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일시적인 저차원적 충동을 해소하면 포르노를 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욕구가 고개를 치켜들 때 전반적으로 비슷하고 등장인물만 다른 포르노를 볼 뿐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감동 받은 뒤 셰익스피어 전집을 폐지함에 버리는 사람은 없지만, 끓어오르던 욕구를 포르노로 해소한 뒤 파일 모두 지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강신주는 사람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인문학 포르노를 만들었을 뿐이다. 강신주가 이상한 책 쓰고 이상한 이야기 하는 것을 왜 옹호하는지 모르겠다. 아키호 요시자와 팬임을 밝히는 것보다 강신주 팬임을 밝히는 것을 더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 링크: [BOOK DB] 강신주 “날 비판하는 사람들? 50년 후엔 나만 남는다”

( http://news.bookdb.co.kr/bdb/Interview.do?_method=InterviewDetail&sc.mreviewNo=72721 )

(2016.09.09.)


2016/11/06

남자라서 힘들다는 엄살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는 남자들에게 권력이 많은 만큼 책임도 크기 때문에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고통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는 다 개뻥이다. 역사가 증명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거부하고 성공한 사람이 종종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 고조 유방이다. 한 고조 유방은 호색 빼고는 당대 남성들이 요구받은 덕목을 지킨 게 없다. 자기 혼자 살려고 부인도 버리고 자식도 버렸고, 부모를 인질 잡고 죽인다고 협박해도 마음대로 하라고 했고, 항우하고 안 싸우기로 해놓고도 뒤에서 쳤고, 통일한 뒤에는 공신들의 뒤통수를 쳤다. 온갖 양아치짓을 했지만 성공했고 영웅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여자 중에서 당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을 거부하고 잘 된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가? 어쩌다 남성과 똑같은 방식으로 권력을 잡아도 악녀의 대명사로 역사에 낙인찍힌다. 여성 참정권 운동까지 안 가더라도 여성에 대한 사회 통념 때문에 억압받은 여성은 수없이 많다. 허난설헌은 시 좀 썼다고 시댁에서 죽을 때까지 구박받고 살았다.

오늘날 한국에 국한해도 남성이 받는 제약과 여성이 받는 제약은 다르다. 남성이 받는 제약은 주로 체면이나 눈치와 관련된다. 눈치는 안 보면 된다. 남자들은 눈치 안 보고 살려고 하면 적당히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 여성이 받는 제약은 직업 선택이나 임금 차별이나 외모나 행실에 대한 직간접적 제약 등 주로 비교적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제약이다.

외모만 놓고 봐도 그렇다. 짐승남이 인기든 말든 남자는 그냥 살면 된다. 지도교수나 직장 상사가 몸 키우라고 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회사 다니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여성의 화장은 예의와 직결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화장 안 하면 예의 운운하며 지적받는다고 한다. 남자는 눈코입 마음대로 자유분방하게 못 생겨도 남자답게 생겼다는 말을 듣지만 여자는 어떻게 나름대로 노력해서 뜯어고쳐도 성형 괴물이라는 소리 듣는다. 남자는 먹을 거 다 먹고 배 튀어나와도 배 두드리고 편하게 살지만 여자는 몸매 관리 안 하면 절제력을 의심받는다. 남자로 사는 게 그렇게나 힘든가?

엄살 좀 안 떨었으면 좋겠다. 남자라서 힘든 게 아니라, 회사를 안 다녀도 될 만큼 재산이 많지 않아서 힘든 것이고 능력이 없어서 힘든 것이고 남의 돈 벌어먹기가 힘든 것일 뿐이다. ‘남성으로서’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지고 산다고, 또 얼마나 ‘남성성’을 뽐내고 산다고 남성으로 사는 어려움을 토로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사는 건 힘들기 때문에, 가정 안 꾸리고 혼자 살아도 먹고 사는 건 어떻게든 힘들게 되어있다. 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남자라서 더 힘들게 산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6.09.06.)


2016/11/02

보건대에서 받은 혈압 검사



보건대에서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키・몸무게・근육량・체지방・복부지방・내장지방・혈압을 측정하고, 피를 뽑고, 간단한 설문 조사를 했다.

혈압을 측정할 때였다. 측정자의 지시에 따라 혈압 측정이 진행되었다. 간단한 검사라 별다른 절차라고 할 것도 없었고 금방 끝났다. 그런데 측정자의 목소리가 유독 포근했다. 하도 포근해서 봄이 온 줄 알았다. 평소에 혈압을 재면 정상 범위 안에 들기는 하는데 약간 낮은 편으로 나온다. 오늘도 혈압이 정상 범위로 나오기는 했는데 평소보다 약간 높게 나왔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건물을 나왔다. 가을이었다.

(2016.09.02.)


내가 철학 수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하고 있다는 증거

대학원 다니면서 들은 학부 수업에서 몇몇 선생님들은 수업 중간에 농담으로 반-직관적인 언어유희를 하곤 했다. 나는 이번 학기에 학부 <언어철학> 수업을 하면서 그런 식의 농담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나부터 그런 반-직관적인 언어유희에 재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