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는 명문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진단을 전한다.
문제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매몰돼 인성교육이 등한시되는 교육 현실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학 입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점차 세속적인 도덕이나 규범에는 얽매이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성적과 균형 잡힌 인성은 완전히 별개”라며 “오히려 현재의 입시 제도 아래에서 정직함을 근거로 하는 좋은 인성은 학업 성취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컨대 대학 수시 모집을 살펴보면, 도저히 학생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며 “결국 (사교육 등)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학생은 정직함 등 많은 가치를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 인성 교육을 안 한다는데 왜 명문대생들이 일탈 행위를 할까? 상위권 학생이나 상위권이 아닌 학생이나 인성 교육을 안 받는 건 똑같으니 학교 교육 자체가 학생들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은 성적과 무관하다. 상위권 아닌 학생이라고 해서 입시 스트레스가 적은 것도 아니니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상위권 학생의 인성이 더 망가질 이유도 없다. 오히려 상위권 학생은 다른 학생보다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고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보다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입는 정신적인 상처가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입시 위주의 교육과 명문대생들의 일탈 행위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명문대생들이 일탈 행위를 한다고 하려면 명문대생들의 일탈행위 빈도가 비-명문대생들의 일탈행위보다 유의미하게 높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자료를 제시하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 아마도 가능성은 두 가지일 것이다. 비-명문대생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자료 자체를 안 만들었든지, 아니면 그러한 자료를 만들기는 했는데 유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자료라서 안 보여주는 것이다.
인성 교육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히 제시하는 사람도 없다. 일종의 도덕적 성향을 ‘인성’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인성을 어떻게 특정 방향으로 형성하게 하거나 교정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면 될까? 음악계 비리를 보면 음악이 인성 교정에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면 될까? 미술계에도 비리가 있다. 학생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면 될까? 체육계에는 비리와 더불어 구타가 있다. 예절교육을 하면 될까? 절차 따지는 개저씨는 충분히 많다. 윤리 교육을 하면 될까? 그건 몇 십 년간 해온 거라 딱히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미 경험으로 증명되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좋고 나쁜 자체를 몰라서 그런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학교에서 무슨 짓을 해야 학생들의 인성이 좋아질 수 있을까?
다른 나라에 인성 교육의 사례가 있다면 한국 언론에서 그런 걸 보도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보도를 본 적이 없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파업이나 노동권 같은 것을 배운다고 하는데, 그건 인성 교육이 아니라 그냥 사회 교육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를 가르친다고 한다면, 그건 인성 교육이 아니라 그냥 역사 교육이다. 정상적인 교육이라면 어느 과목이든 인성을 망가뜨릴 요소를 교육 과정에 집어넣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인성 교육이라는 게 있다면 입시 위주의 교육과 적어도 내용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똑같은 내용도 대충 설렁설렁 가르치고 등수 안 매기면 인성 교육이고 등수 매기고 경쟁시키면 입시 위주의 교육인가?
인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인성 교육이라는 것 자체는 개뻥이고 허구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잘 봐줘봐야 유교적인 관습의 찌끄러기에 불과하다. 법을 잘 만들고 나쁜 놈 잘 잡아내서 법대로 처리하면 되는 거지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무슨 놈의 인성 타령인가?
* 링크: [연합뉴스] 도 넘은 명문대생들의 일탈… “입시 위주 교육이 원인”
( 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21/0200000000AKR20160621147200061.HTML )
(2016.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