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2

주제별 철학사 수업을 만든다면



일반적인 철학사 수업 이외에도 분석철학 쪽 학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철학사 수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한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분석철학을 이해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분석철학 쪽 수업을 들으면서 겪는 고통을 견딜 유인을 제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분석철학 쪽 수업들에서는 대부분 주제나 문제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보이게끔 가르친다. 이게 왜 중요한 건가 싶은 내용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나온다. 내가 학부 때 들었던 몇 안 되는 분석철학 수업도 그렇고, 대학원 와서 청강한 학부 수업도 그렇고, 다른 학교 학부 수업 강의록을 봐도 그렇고, 교재로 쓰는 책을 봐도 그렇다.

물론,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만 가르쳐도 수업 시간이 모자라고, 이전 시대의 철학사적인 맥락을 가르친다고 해서 해당 수업의 내용에 관한 이해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언어철학이면 프레게부터 배우면 되고, 인식론이면 게티어부터 배우면 된다.

그래도 분석철학의 주제들이 철학사에서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는 보여준다면, 학생들이 분석철학 수업을 들을 때 느낄 수도 있는 심리적 거부감 같은 것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중세 지칭이론부터 프레게 직전까지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 안다면, 처음부터 프레게를 배우는 것보다는 학습 의욕이 높아질 것이다.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부터 게티어 직전까지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 알아도 그와 비슷한 효과가 날 것이다.

한 학기 동안 다 배우고 전체적인 그림을 알게 된 후 그게 중요한 것인지 알려면, 일단 수업 시간에 앉아 있어야 하고, 수업 시간에 멀거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수업 내용을 이해하려는 의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철학사는 교육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레게나 게티어 이전의 분야별 철학사는 그 이후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 학기 초반 수업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일단 참고 배워보자는 마음을 먹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철학사 수업이라고 하면 보통은 고대철학, 중세철학, 근세철학 등 시대별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분야별로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제별 철학사 수업을 대학의 정규 수업으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분야별 선생님들이 특강 형식으로 하는 것을 모아서 유튜브 채널 같은 데 올리는 것은 (이것도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네이버 같은 데서 후원한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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