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건설업체의 탈세 혐의를 국세청에 제보하다



2월 26일(월)에 지방법원을 다녀왔다. 민사소송 1심 판결이 나온 뒤 원고 측이 항소했기 때문이다. 아직 정식 재판에 들어간 것은 아니고 변론준비기일에 법원 조정실에 출석했다.

1심 변론준비기일에는 원고 측에서 변호사, 물류창고 사장, 건설업체 관계자 두 명, 이렇게 네 명이 왔었는데, 이번에는 변호사와 물류창고 사장만 왔다. 건설업체는 다른 업체에 채권을 양도하고 이 공사에서 빠졌다고 한다.

원고 측 변호사가 판사에게 항소 이유를 설명할 때 습관인지 모르겠는데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계속 볼펜을 돌리고 있었다. 판사 앞인데 볼펜을 상당히 잘 돌렸다. 물류창고 사장은 살이 빠진 것인지 얼굴형이 바뀌었다. 동네에 물류창고 사장이 깡패라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5년 전에는 깡패처럼 생겨서 나도 약간 겁을 먹기는 했다. 5년 사이에 물류창고 사장 얼굴이 마치 시골 할아버지처럼 변하고 어깨가 굽어서 키가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내가 겁이 많은 편이지만 이제는 겁을 덜 먹게 되었다.

조정실에서 판사는 이 사건이 특이한 사례라고 말했다. 보통은 손해배상청구 금액이 분명하고 혐의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데, 이 사건은 피고 측이 혐의를 인정하는데 원고 측의 청구 금액이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원고 측 변호사가 항소 이유서를 늦게 제출하여 피고 측 변호사가 준비 서류를 아직 제출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판사는 항소 이유서만 보고서도 이 사건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원고 측 변호사는 1심 판결에서 나의 악의적인 민원과 관련된 경제적 피해가 인정되지 않았고 장기간 공사가 지연되어 손실이 추가로 발생했다는 점을 항소 이유로 들었다.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지 1년이 넘도록 공사를 못 하는 것은 애초부터 개발행위허가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악성 민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판사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토 작업 중 흙이 튄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었다고 공사가 1년 넘게 시작도 못 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작년 7월에 물류창고 업체는 어디서 흙을 구했는지 물류창고 부지에 성토 작업을 재개했다. 덤프트럭으로 흙을 몇 차례 들이붓지 않았는데도 그게 마을 주민의 하수로를 막아서 생활하수가 역류하고 난리가 났다. 친척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들 하나, 딸 하나에 손자 세 명, 손녀가 한 명이 있지만 자식들이 모두 멀리 떨어져 사는 데다 행정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두 분은 시골에서 평생 고생하고 살았는데 늙어서 이렇게 사니 분해서 잠도 못 잔다며 죽을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니 내가 손을 안 쓸 수 없다. 시청에 민원을 넣어서 배수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배수 문제가 정상적으로 해결된 것도 아니다. 애초에 손대면 안 되는 것을 괜히 건드려서 문제가 생긴 상황이라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업체는 근처에 있는 다른 논에 매설된 배수로에 하수관을 연결하려고 적은 비용으로 문제를 처리하려고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논 주인이 매설한 플라스틱 사각집수정을 부수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그걸 발견하고 논 주인에게 연락했고, 논 주인이 건설업체 사장에게 항의하니, 건설업체 사장은 논 주인을 겁박하여 협조하지 않으면 공사 중에 없어진 농로를 만들어 주지 않겠다고 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개발행위허가서대로 공사를 진행하면 그 논은 담벼락에 둘러싸여 맹지가 될 판이었다. 그렇게 남의 땅을 합법적으로 맹지로 만들고 헐값에 후려치려는 것이 보이니 안 나설 수 없었다. 내가 시청 관계자와 연락하여 농로 확보와 관련된 설계 변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준공 승인을 내주지 않게끔 하겠다는 확인서를 받아냈다.

작년만 해도 동네에 이런 난리가 있었는데, 원고 측 변호사는 내가 “성토 작업 때문에 흙이 튄다”는 민원을 넣어서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 것이다. 나는 그런 민원을 넣은 적이 없다.

판사는 나에게 1심 판결에 승복하느냐고 물었다. 피고는 아버지이지만 소송을 내가 주도하기 때문에 나에게 물은 것이었다. 나는 그 720만 원에서 정신적 위자료가 500만 원이라는 점이 석연치 않기는 하지만 판결이 그렇게 났으니 720만 원 내고 소송을 끝낼 생각이었다고 답했다. 판사는 나에게 “그렇다면 합의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0%입니다. 0.01%도 아니고 정확히 0%입니다.” 판사는 합의는 더 이상 권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원고 측 변호사는, 원래 배수로가 완공되면 물류창고 사장 이◯성이 건설업체인 (주)지◯씨◯디에 9800만 원을 지급하기로 계약했으나, 공사가 지연되며 건설업체에 손실이 발생하여 배수로가 완공되지 않았는데도 (주)지◯씨◯디에 9800만 원을 지급하고 다른 건설업체와 새로 계약하여 수천만 원의 손실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한다. 판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의구심을 표했다. “공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계약 금액을 다 주고 다른 업체와 새로 계약했다구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데요?” 원고 측은 수기로 작성한 영수증을 증거로 제출했다.

작년 10월에 이미 우리 측 변호사는 전자세금계산서가 아닌 수기로 작성한 영수증이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원고 측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멍청하고 감이 없지만 착하기는 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의심부터 하지 말고 일단 믿으라고 조언한다. 이번에는 나도 그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원고 측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런데 세금은? 9800만 원이나 받았는데 전자세금계산서가 없다? 이건 탈세다. 나는 원고 측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국세청에 넘기고 해당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요청했다.

세무조사 요청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이메일로 답변이 도착하지 않아서 국민신문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민원 처리 과정을 확인해 보았다. 일반 민원이 아니라 탈세 제보로 처리되어 민원 답변이 오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탈세 제보를 처음 해봐서 잘 몰랐다. 국민신문고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탈세를 제보할 수 있으나, 국세청 홈페이지에는 별도로 탈세 신고란이 있다. 다음에 탈세를 제보할 일이 있으면 국세청 홈페이지를 통해 제보해야겠다.

내가 세무조사 요청을 한 것은 2월 26일(월)이고 정식으로 접수된 것은 3일 뒤인 2월 29일(목)이다. 제보 후 정식 접수까지 왜 3일이 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국세청에서도 내가 제출한 증거를 믿을 만한 자료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제출한 자료는 법원 자료일 뿐 아니라 수기로 된 영수증에는 상호명, 지급일, 지급 액수가 정확히 나와 있으니 국세청에도 업체의 탈세 혐의를 비교적 쉽게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처리 예정일이 4월 9일이니 앞으로 한 달 간 업체에 무슨 일이 있기는 있지 않을까 싶다.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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