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2

[과학철학] 이상욱 (2006), “대칭과 구성: 과학지식사회학의 딜레마” 요약 정리 (미완성)



[ 이상욱 (2006), 「대칭과 구성: 과학지식사회학의 딜레마」, 『철학적 분석』 14호, 67-93쪽. ]

1. 머리말

2. 초점을 흐리는 비판 걷어내기

3. 대칭적 연구방법의 힘과 대가: 사회과학으로서 과학지식사회학?

4. 구성의 힘과 대가: 철학으로서의 과학지식사회학?

5. 맺음말

1. 머리말

68

과학지식사회학(SSK: 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과학지식사회학이 사회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머튼식의 전통적 과학사회학이 사회학에서 차지하던 비중보다도 상대적으로 작음.

과학지식사회학이 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큼.

68-69

과학지식사회학의 주요 연구자들은 원래부터 철학적인 주제에 큰 관심을 가졌음.

콜린스: 주요 저작이 회의주의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함.

블로어: 오랜 기간 비트겐슈타인을 해석하는 문제에 매달려 있었음.

반즈: 토마스 쿤 과학철학의 방법론적 함축에 대한 책을 씀.

70

- 이상욱의 주장: 과학지식사회학의 연구방법 중 특별히 과학지식을 대칭적(symmetric)이고 구성적(constructive)으로 분석하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딜레마에 봉착하게 함.

2. 초점을 흐리는 비판 걷어내기

71

- 잘못된 비판(1):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이 반-과학적(anti-scientific)이라는 것

주로 과학자들이 내리는 평가

73

- 잘못된 비판(2):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이 자신들이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함부로 말함.

과학논쟁에 관련된 전문적 내용에 대해 올바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함부로 섣부른 상대주의적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것

74

해리 콜린스는 성공적인 과학사회학자가 되려면 ‘기여적 능력’은 아니더라도 ‘소통적 능력’은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고 함.

기여적 능력(contributive competence): 과학연구에 핵심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

소통적 능력(communicative competence): 전문가들에게조차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할 수 있는 능력

3. 대칭적 연구방법의 힘과 대가: 사회과학으로서 과학지식사회학?

75

블로어

대칭(symmetry): 현재 참이라고 믿는 지식이나 현재 거짓으로 결론이 난 지식 모두 동일한 인과적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그것의 전파와 수용을 설명해야 한다는 원칙

76-

대칭적 연구는 현재 참이라고 믿는 지식과 현재 거짓으로 판단된 지식 모두를 동일한 (사회적) 인과과정으로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과학 현상에 대한 인과적 설명에 있어서 일종의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음.

79

프리드만은 좀 더 원론적 관점에서 블로어의 비트겐슈타인 독해를 비판함.

81-82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철학으로 인정하는 순간 그들의 작업은 과학사의 연구 결과가 지닌다고 생각되는 중립적 자료로서의 역할을 잃게 됨.

대칭적 연구방법론과 관련된 과학사회학의 첫째 딜레마

82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의 철학적 논의는 종종 현대 철학의 진전된 논의를 무시한 채 덜 세련된 허수아비를 공격함.

4. 구성의 힘과 대가: 철학으로서의 과학지식사회학?

89

둘째 딜레마

과학지식사회학의 지적 참신함과 매력은 과학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대담한 주장에 거의 담겨있음.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여러 면에서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강하게 주장할 수 없는 것임이 드러남.

구성은 오직 전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얻는 경우가 많음.

구성은 특정 분석수준을 지칭하는 말이 될 수는 있어도 인과적 우월함을 제시한다고 이해될 수는 없음.

과학지식사회학의 핵심 주장이 일정한 지적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도 구성은 약화된 방식으로 이해되어야만 함.

그러나 구성을 약화된 방식으로 이해하면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이 추구하는 큰 주장은 설득력을잃게 됨.

5. 맺음말

(2025.01.30.)


2024/08/01

지역과 한 몸이 되려면



어느 국립대에 교수로 임용된 대학원 선배를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학위 취득 이후 교수로 임용되기까지 어떤 준비를 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선배는 수요자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구직자들이 간과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박사학위자들 대다수는 취업 준비를 해본 적 없이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요자 위주의 관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요자 위주의 관점이라는 게 누구나 아는 것 같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경우에 따라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선배는 해당 대학의 총장이 어떤 것을 요구할지 알기 위해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보았고 평소 총장이 “지역에 봉사하는 대학이 아닌, 지역과 한 몸이 되는 대학”을 강조했음을 파악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료 대학원생과 임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동료 대학원생은 과학철학 석사수료생인 목사님인데 최근 어느 국립대 연구교수가 되었다. 과학철학으로는 석사수료생이지만 신학박사라서 연구교수가 될 수 있었다. 나도 나중에 임용 준비를 할 때 해당 대학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그에 맞게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도대체 지역과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기술학 전공자라면, 비-인간 행위자와 결합되어 이전과 다른 존재, 즉 지역과 한 몸이 된 인간이 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목포에는 갯벌이 많으니까 갯벌에 몸을 반쯤 담그고 ‘갯벌 인간’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런데 왜 갯벌에 몸을 담가야 하나? 옆에서 목사님이 말했다. “갯벌이 의무통과점(obligatory passage point)이라고 하면 되죠.”

철학에서는 쩨쩨하게 물건 하나 들고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우기지 않는다. 정말로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가정한다. 데이비슨의 늪지인간(swampman)을 보자. 어느 날 갈대가 우거진 늪지의 나무 위에 벼락이 떨어져 엄청난 전류가 흐르고, 나무 옆에 서 있던 나의 몸은 분자 단위로 분해되고 나무의 분자들이 절묘하게 결합하여 물리적・기능적인 면에서 나와 완전히 똑같은 늪지인간이 생겨났다고 해 보자. 늪지인간은 나와 수적으로 구분될 뿐만 아니라, 그 구성분자들도 수적으로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졌지만, 현재의 인과적・성향적 속성의 차원에서 이 늪지인간은 나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여기서 약간만 변형하면 갯벌인간(mudflatman)이 될 것이다.

그런데 총장님이 원하는 지역인간은 갯벌인간과 달리, 나와 수적으로 구분되지 않으면서 물리적・기능적인 면에서 기존의 구직자들보다 나으면서 인과적・성향적 속성의 차원에서 대학과 지역의 이해관계에 부합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지역인간이 될 수 있을까? 나도 하루빨리 학위논문을 쓰고 지역인간이 되고 싶다.

(2024.06.01.)


한국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삼국지>를 만든다면

리들리 스콧의 영화 <나폴레옹>은 영화가 전반적으로 재미없다는 것을 다 떠나서 약간 놀라운 게 있는데, 바로 나폴레옹이 영어를 쓴다는 점이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처럼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아닌데, 나폴레옹이 주인공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