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를 오랜만에 들었다. 까마득히 오래전에 몇 번 듣고 안 듣다가 문상훈과 유병재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생각나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를 들었다. 15년 전쯤에 그 노래를 들었을 때는 들은 만은 한데 분위기가 대체로 우중충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슬퍼서 두 번 듣기 힘들 정도였다.
왜 그렇게 감상이 달라졌을까? 그 때는 20대였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망하기에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때와 이러다가 정말로 망하는 건 아닌지, 혹시 이미 망한 것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때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주인공은 네가 아니”라는 것은 20대에도 알았다. 내 주변을 보니까 주인공을 할 만한 사람은 몇 사람 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내가 주변 사람들보다 딱히 나은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유비도 아니고, 관우나 장비도 아니고, 제갈량도 아니고, 조조나 손권도 아니고, 타죽을 줄도 모르고 적벽에 끌려온 백만 대군 중 한 명 정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은 입대하기 전에도 했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다들 나 잘 났네 하고 살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는 게 거기서 거기고 능력이 딱히 출중하지도 않고 육체적으로도 아름답지 않고 기능도 대단치 않다. 다들 그러고 산다. 연애하는 커플이나 결혼한 부부를 봐도 그렇다.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지만 능력 없는 남자와 여자는 예뻐야 한다고 믿지만 예쁘지 않은 여자가 만나서, 능력 없는 아들이나 예쁘지 않은 딸을 낳고, 그래도 좋다고 다들 그럭저럭 살지 않나? 그래도 가슴 한 구석에는 어쩌면 멋지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품고 있는데,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그저 “키 작고 배 나온 닭배달 아저씨”의 모습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몇 곡을 유튜브로 들으니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다른 공연 영상도 보였다. MBC <문화콘서트 난장>의 썸네일에는 “절룩거리는 모든 청춘을 위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고 써있다. 청춘을 위하긴 뭘 위한단 말인가? 노래의 화자가 키 작고 배 나온 아저씨인데. 이진원은 1973년에 태어나 2010년에 향년 37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마침 내가 만 37세니까 노래 속 화자와 나이가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노래에 대한 감상이 달라졌나 보다.
노래를 들으면서 ‘그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날 거면 밝은 노래를 좀 부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수가 노래와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안 좋았다. 그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인기를 얻어서 100억 원짜리 건물을 사고 200억 원대의 자산가가 되었다면 좀 웃기기는 했겠지만, 노래와 딱 맞아떨어지는 삶을 살아서 슬픈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슬픈 기분에 젖지 말고 밝은 노래를 듣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 30대 후반에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을 보니, 노인네들이 경망스럽게 뽕짝뽕짝 하는 노래를 듣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 같다.
* 링크: [빠더너스 BDNS] 유병재와 함께 오지 않는 옛날 통닭을 기다리며
( www.youtube.com/watch?v=xagDOjzgOU4 )
(202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