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공무원이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문서 444개를 삭제한 사건이 있었다. 검찰 조사에서 해당 공무원은 자신이 “신 내림을 받은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신 내림이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지만, 삭제한 문서가 마침 444개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찝찝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신 내림은 그냥 넘어가자.
해당 공무원이 관련 문서를 삭제한 것은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월성 원전 1호기를 가동 중단할 때와 대비하여 계속 가동할 때의 경제성을 일부러 낮게 평가하도록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해당 공무원은 관련 문서를 임의로 삭제했다. 이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3년 전에 있었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2017년 당시 건설 중인 신고리 원전 5・6호기를 건설 중단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공론화위원회에서 건설 중단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했고,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은 건설 재개로 나왔다. 왜 그랬을까? 내가 관련 자료를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관련 연구자에게 들은 바로는 대충 다음과 같다고 한다.
찬반 동수로 맞추어 층화추출방식으로 선정된 시민대표참여단은, 2박 3일 동안 건설 중단 측과 건설 재개 측의 발표를 번갈아 듣고 중간 중간에 시민들끼리 토론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대표참여단의 의견이 점점 원전 건설 재개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건설 재개 쪽으로 기울어진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중 하나는 건설 중단 측의 전문성 부족이다. 건설재개 측에서는 원자력 관련 전문가들이 나와서 설명을 잘한 반면, 건설 중단 측에서는 환경 운동가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설명을 하거나 흔히 말하는 감성팔이 같은 것이나 했다는 것이다.
공론화위원회에서 나온 결론이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것이 아니고, 공론화위원회 자체도 어떠한 법적인 근거가 있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면 공론화위원회를 왜 만들었는가? 대통령이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그냥 만들어본 것이다.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니 새로 짓던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못하게 해야겠는데, 그러기에는 이미 들어간 돈이 너무 많아서 그냥 공사를 중단시키면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 뜻이라고 하면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면,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당시 여론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공론화위원회를 하면, 설사 찬반동수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도, 결국 건설 중단 쪽으로 결론이 도출될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의의는 그냥 시험적으로 공론화위원회라는 해보았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시민들의 싸워가며 얻어낸 민주주의의 산물도 아니다. 정부가 자기들이 정책을 집행하는 데에 유리할 줄 알고 했다가 뒤통수 맞은 것뿐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당시 전문가들의 평가는 나 같은 무식쟁이의 시각과는 다소 달랐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두고 숙의 민주주의가 어쨌다는 둥, 무슨 거버넌스가 어쨌다는 둥, 집단 지성이 발휘가 됐네 안 됐네, 시민 권력이 탄생했네 어쩌네,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신뢰가 어쩌고 하는, 온갖 의미를 부여했다. 신문 칼럼도 아니고 KCI 등재지에 게재된 학술논문에서 그런 소리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함축은 어디에서 어떻게 도출되었는가? 그러한 결론이 도출될 만한 구석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누구나 접근가능한 자료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의 연구들은, 애초부터 입증도 안 되고 반증도 안 되게 되어있기 때문에 반론에도 취약하지 않다. 해석상의 차이라고 하거나 그런 의미가 있다고 거듭 주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꽃을 ‘꽃’이라고 불러서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냐고 우긴다면, 그에 대해 뭐라고 반박하겠는가. 그런데 가끔씩 이번 문서 삭제 사건 같은 것이 터져서 그러한 연구의 허구성이 들통나기도 한다.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에 조작 의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조작된 것이라면, 그리고 신 내림을 받아서가 아니라 윗선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관한 온갖 의미부여는 그저 새 정부에 대한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이거나 “시민권력의 탄생” 같은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면,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같은 것도 공론화위원회 같은 데서 공개적으로 처리했겠지 왜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려고 했겠는가?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이후에 변변한 공론화위원회가 없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한국 사회에 갈등이 없었던 것이 아닌데, 공론화위원회가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면 그 동안 공론화위원회가 왜 제대로 열리지 않았는가? 이에 대한 최선의 설명은, 애초에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하는 일을 시민을 동원하여 쉽게 처리하려고 만든 것이 공론화위원회인데 예상과는 달리 정부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니까 그 이후에는 안 만들었다는 것이다.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문서를 왜 삭제한 것인지, 누구의 지시를 받고 했는지는 검찰이 밝히든 말든 할 거니까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다. 여기서 내 관심사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사실 관계를 밝히는 것도 아니고,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것도 아니고, 숨겨진 어떠한 함축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고, 누구라도 약간의 시간만 들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에다가 의미부여나 하는 것이 왜 연구라고 불리는가? 사춘기를 세게 겪는 청소년도 아닌데 왜 그들은 자신의 의미부여 활동을 마치 연구 활동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인가?
* 링크: [조선일보] 감사 전날 밤 원전파일 삭제...공무원, 윗선 묻자 “신 내림 받았나봐”
( 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0/12/02/2UZ2ZHHO5VD3NGJLJU33UCJ2GQ )
(20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