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9

내 휴가는 왜 아무도 안 묻나?


술 먹다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한테 애인 있냐고 대놓고 묻기 어려운 경우 다른 질문을 통해 해당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가령, 여름철 같은 경우 “이번 여름에 휴가 어떻게 보내세요?”라고 물어보면, 애인이 있으면 애인하고 휴가를 간다고 하고 애인이 없으면 친구들하고 보낸다고 하든지 등등의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아, 다른 사람들은 휴가를 애인하고 보내는 구나. 그런데 내 휴가 같은 것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 휴가를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 지도교수: “음... 〇〇이, 혹시 이번 여름에 어디 간다든지 하는 계획이 있나?”

- 나: “아직 별 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 지도교수: “방학 때는 어디서 지내나?”

- 나: “기숙사에서 지냅니다.”

- 지도교수: “아, 잘 됐구만. 그러면 나중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그 때 보기로 하지. 그리고 그 서류는 늦지 않게 전달해야 할 것 같네만.”

- 나: “네, 선생님.”



(2017.07.19.)


2017/09/18

한국 식 다큐멘터리



나는 한국 다큐멘터리를 별로 안 좋아한다. 다큐멘터리 치고 내용이 너무 없다. 주제나 대상을 치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서사를 덕지덕지 붙여서 시간을 때운다. 한국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도 드라마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인데도 주인공 역할을 하는 인물이나 동물이 등장한다. 그러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떤 공룡 다큐멘터리는 주인공인 아기 공룡이 대모험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아기 공룡 둘리>도 아니고 다큐멘터리인데 그런다. 어떤 다큐멘터리는 내용 중 절반은 오지에서 제작진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담는다. 제작진이 힘든 곳에서 힘든 일 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건 그 사람들 사정이다. 자기 동료들이나 가족들한테나 말할 일이지, 나는 그런 것이 하나도 안 궁금한데 왜 다큐멘터리에 쓸데없이 그런 것을 넣는가? <SBS 스페셜>은 심심하면 리얼리티 쇼 흉내를 내서 이걸 다큐멘터리로 보아야 할지 예능으로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EBS 다큐프라임>도 한국 식 다큐멘터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제 하나로 여러 편을 한 세트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한 세트에서 절반은 일반인들이 힘들다고 찡찡거리는 내용이고 나머지 절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늘어놓는 수준이다.

2014년 1월에 방영된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는 6부작으로 구성된다. 그 중 두 편은 대학생들이 찡찡거리는 것을 촬영해서 편집한 것이고, 두 편은 <인재의 탄생>이라고 제목을 달아놓고는 대학생 몇 명 뽑아서 리얼리티 쇼 하는 것이고, 두 편은 피상적인 분석과 실험을 하는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이 한국 사회를 주제로 다룰 때 쓰는 전형적인 구성이다.

<5부. 말문을 터라 I>에서는 G20 회담 폐막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었는데 한 명도 질문하지 못하고 중국 기자가 대신 질문한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일이마치 한국 교육의 한계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다룬다. 해당 편에서는 당시의 질문 장면을 EBS 기자들에게 보여준 뒤 소감을 묻고, 기자들이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아무 질문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답하는 장면도 나온다.

한국 기자들은 왜 오바마한테 아무 질문을 못했을까? 이런 일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지속적인 현상인지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계속 그랬는지, 예전에 괜찮았는데 이해찬 세대 이후로 그런 건지, 한국 사람한테는 질문을 잘하는데 외국 사람한테만 못하는 건지 알아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그런 것은 묻지도 않고 곧바로 EBS 기자들을 불러다가 오바마가 질문하라고 하면 질문하겠냐고 물어본다. 중국 기자가 질문한 것은 미국과 중국 간의 환율 문제였는데, EBS 교육 담당 기자한테 중국 기자처럼 질문할 수 있겠냐고 하면 당연히 질문할 것이 없을 수밖에 없다. 오바마한테 미국 교육을 물을 것인가, 한국 교육을 물을 것인가?

한국 기자들이 정말로 수준이 떨어져서 그랬다고 치자. 그러면 왜 수준이 떨어지는지를 파악해야 할 것 아닌가? 업무가 과중해서 제대로 취재준비 할 여건이 안 되어서 그런 건지, 애초에 언론사에서 덜 떨어진 애를 기자로 뽑는 건지, 똑똑한 애를 기자로 뽑는데 언론사 내부에서 평가 체계가 고장 나서 일종의 역-선택이 일어나는 건지 등등. 그런데 다큐프라임은 대학에서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곧바로 결론을 내린다. 대학에서 제대로 못 배우면 인생이 망하나? 다시는 복구할 기회 자체가 없나? 언론사에서는 신입 기자 뽑아놓고 교육도 안 시키나?

그러든가 말든가 해당 방송은 그 다음 장면으로 곧바로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토론 수업을 보여준다. 그 학교의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고 수업 시간에 토론을 많이 한다는 것은 보여주지만, 그 학생들이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고 수업에서 어떤 질문을 하며, 교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하며 어떻게 수업 준비를 하는지 등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화면에 주로 나온 것은 그 학교를 다니는 한국 학생들의 소감이었다. 한국 학교와 분위기가 다르다, 이상한 질문을 할 까봐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등등. 세인트 존스 칼리지가 한국 학교와 다르다는 건 개나 소나 다 안다. 그 학교가 어떻게 다르며 왜 다른지를 다루어야 언론이지 그 학교는 토론 많이 해서 좋은 학교라고 하면 일반 블로거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을 모르기 때문에 왜 그런 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예산이 없는데 시간을 때워야 하니까 대충 만드는 건지, 뭐가 뭔지 잘 몰라서 그렇게 만드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다큐멘터리에서 서사가 넘치면 분석이 시원치 않아도 큰 무리 없이 시간을 때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건이 일어나고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과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원인이라는 것은 염연히 다른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둘의 차이를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므로, 아무거나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고 사람들이 원하는 결론을 보여주면 뭔가 지식을 얻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좋다. 사람들이 소설이나 몇 권 읽은 것 가지고 뭔가 대단한 지식을 얻은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2017.07.18.)


2017/09/17

최집사님네 개

     

최집사님네 개는 최집사님을 따라서 교회에 온다. 예배 시간에는 교회 현관문 앞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예배가 끝나면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닌다.
 
 
 
  
  
(2017.07.17.)
    

2017/09/16

교수가 되면 어떤 점이 좋을까

     

어떤 대학원생이 어떤 선생님과 술을 마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선생님은 교수가 되어서 좋은 점은 소득 수준이 비슷한 다른 사람들보다 한 단계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했는데, 술자리에 있었던 대학원생은 그 선생님이 대강 그 정도만 이야기하다가 다른 이야기를 해서 정확히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수가 1년에 얼마를 버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예전에 병원에 입원한 교수에게 듣기로 국립대 인문대학 근속 20년차 교수는 1년에 9200만 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나는 1년에 9200만 원 버는 집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는 집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해준 대학원생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았지만 교수가 되면 어떤 점에서 어떻게 좋다고 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대학원생에게 조선시대에 광화문 근처에 사는 거지들이 우리와 같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근처에 사는 거지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거 알아? 임금님은 제비집도 먹는대!”
“제비집? 제비집을 왜 먹어?”
“몰라, 친구 누나가 궁녀인데 임금님은 제비집도 먹는다고 그랬어.”
“미친놈아, 임금님이 왜 흙을 퍼먹어? 제비집을 먹는다고? 임금님이 땅거지냐?”
  
  
(2017.07.16.)
    

2017/09/15

전문가의 위엄 - 이준구 선생님 편



지난 달 학교에서 경제학자 이준구 선생님 북 콘서트를 했다. 법인세와 관련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법인세를 높이면 결국 그 부담이 기업이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논리로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법인세를 높이면 상품 가격이 높아져서 소비자가 부담하거나 근로자들의 소득이 낮아져서 근로자에게 전가가 되는데, 우리는 다들 소비자이거나 근로자니까 법인세의 부담을 떠안게 되는 거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저는 그런 사례가 실제 있었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어요. 내 전공이 재정학인데 내가 모르는 것을 신문 논설위원들이 어떻게 압니까.”


내가 모르는 것을 신문 논설위원들이 어떻게 아느냐니. 이런 것이 전문가의 위엄이 아닌가 싶다.



(2017.07.15.)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