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4

[인식론] 김기현 (2003), 제2장 “지식에 대한 전통적 정의 - 그 문제점 및 해결 방향” 요약 정리 (미완성)

[ 김기현, 「제2장. 지식에 대한 전통적 정의 - 그 문제점 및 해결 방향」, 『현대 인식론』 (민음사, 2003). ]

1. 정의의 대상과 구조

2. 지식에 대한 전통적 정의

3. 믿음 조건

4. 진리 조건

5. 인식정당성 조건

5-1. 평가적 성격

5-2. 진리 연관적 평가

5-3. 오류가능성

5-4. 근거의 두 유형

5-5. 인식정당성의 복합적 구조

6. 전통적 정의의 문제점: 게티어의 문제

7. 게티어의 문제의 해결책들

7-1. 거짓 전제의 배제

7-2. 사실과 믿음 사이의 인과

7-3. 격파 불가능성

8. 게티어 문제의 교훈: 지식과 우연적 참의 배제

1. 정의의 대상과 구조

명제로 표현하는 지식은 인식 주관에 상대적이며, 시간에 상대적이다. 인식 주관을 S, 지식의 내용을 이루는 명제를 P, S가 P를 아는 시점을 t라고 할 때, 인식론은 “S가 t에 P를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이다.(편의상 t는 생략한다)

지식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 철학에서 정의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의가 되는 항목을 피정의항definiendum, 정의를 수행하는 항목을 정의항definiens이라고 한다. 정의는 ①각 정의항이 피정의항의 필요조건이고, ②정의항이 함께 결합될 때 피정의항을 위한 충분조건을 이룬다.

ex)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정의가 있다면, 피정의항은 ‘인간’이고 정의항은 ‘이성적임’, ‘동물임’이다.

인식론은 지식을 위한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을 제시한다.

2. 지식에 대한 전통적 정의

지식에 대한 전통적 정의를 따르면, 지식은 인식적으로 정당한 참된 믿음이다. 다음 세 요소는 S가 P에 대한 지식을 갖기 위한 필요조건을 이루며, 지식을 위한 충분조건으로 제시된다.

(1) S는 P를 믿는다: 지식을 위한 믿음조건

(2) P가 참이다: 지식을 위한 진리조건

(3) P를 믿는 것이 S에게 인식적으로 정당하다: 지식을 위한 인식정당성의 조건

(S가 P를 적절한 근거에 의거하여 믿는다. S가 P를 적절한 근거에 의거하여 믿을 때만 S는 P를 안다고 할 수 있다.)

3. 믿음 조건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는 인식론 고유의 영역을 넘어서서 심리철학, 심리학, 인지과학 등에서 논의해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개괄적인 논의만 하기로 한다.

현대 심리철학에 따르면, 믿음은 인식 주관, 명제, 이들 사이의 관련방식, 이렇게 세 요소로 이루어지며, 인식주관이 인식 체계 내에서 저장된 명제와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성립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때 심리상태들은 명제와 일정한 관계를 맺는 심리적 태도라는 점에서 명제적 태도(propositional attitude)라고 불린다.)

인지과학에서는 믿음을 이루는 명제가 의식과 어떤 관련을 맺느냐에 따라 의식적 믿음과 무의식적 믿음으로 구분한다. 또, 나의 신체적 행위나 추론과 같은 인식적 행위에 인과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여부에 따라 활성화된 믿음(activated belief)과 활성화되지 않은 믿음(unactivated belief)으로 구분한다.

ex) 기하학의 정리를 증명할 때 공리에 대한 믿음이 활성화된 믿음이라면, 기하학의 정리를 증명할 때, 나의 어머니는 자상하다고 믿는 믿음은 활성화되지 않은 믿음이다.

이때 주목할 점은 의식적 믿음과 활성화된 믿음은 꼭 갖지는 않다는 것이다. 모든 의식적 믿음은 활성화된 믿음이다. 하지만 모든 활성화된 믿음이 의식적 믿음일 필요는 없다.

(대화하며 자동차를 운전할 때 주변 환경에 대한 믿음은 무의식적인 믿음이지만 활성화된 믿음이다.)

믿음은 그를 이루는 명제가 인식장치(기억)에 새겨져 있는가 아닌가로 다시 구분한다. 이미 받아들인 명제들에서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명제는 믿고, 그렇지 않으면 안 믿는다.

(한 명제가 어느 정도로 쉽게 추론될 수 있어야 믿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아직 없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지도 아직 알 수 없다.)

ex) “인도에 사는 코끼리는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했다 칠하지 않는다”와 “교수 연구실에 있는 화분의 잎사귀가 73개이다”는 모두 내 인식체계에 새겨진 일이 없는데 전자는 믿고 후자는 믿지 않는다.

4. 진리 조건

진리의 본성에 대한 대표적인 이론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상응론: “P라는 믿음은 P라는 사실과 대응할 때 참”이라는 주장이다. 상식적인 견해와 부합하고 직관적인 호소력이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실이 무엇인지 먼저 밝혀야 하고, 우리의 인식체계와 독립적인 사실이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2) 확증이론: “P라는 믿음이 이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합리적이어서 충분히 받아들일 만할 때 참”이라는 주장이다.(이상적 수용가능성(ideal acceptability)과 동일시한다.)

한 믿음이 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다른 믿음들과 정합적인가로 결정된다고 하여 ‘정합론’이라고도 한다. 데카르트가 제시한 전능한 기만자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거짓된 믿음이 합리적인 믿음인지 설명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3) 실용론: “한 믿음이 유용할 때 참”이라는 주장이다. 한 믿음을 받아들여서 결과적으로 유용하면 참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실용성을 가진 믿음이 거짓인 경우가 있고, 참이지만 실용적 가치가 전혀 없는 믿음이 있다는 난점이 있다.

이는 형이상학, 그중에서 진리론에 속하는 주제이므로, 인식론의 고유 영역을 넘어서고, 진리의 본성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가는 이후 논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음.

5. 인식정당성 조건

5-1. 평가적 성격

평가적 개념이라는 것은 ‘옳다’, ‘그르다’, ‘바람직하다’, ‘바람직하지 않다’ 등으로 주어진 성질을 단순히 서술하는 서술적 개념과 구분된다. 한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하다는 판단은 그 믿음이 적절한 근거에 토대한 바람직한 또는 올바른 믿음이라는 판단을 포함한다.

5-2. 진리 연관적 평가

인식정당성의 가치판단은 진리에 기준을 둔 판단이다. 인식적 행위의 목표가 진리이며, 인식정당성의 평가는 진리의 목표에 기여하는가에 따른 평가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적 목표는 본유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간주한다.

(본유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았다.)

‘참을 최대한 획득’하는 게 인식적 행위의 목표라면, 이때 최상의 방법은 모든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면 참된 믿음과 더불어 거짓된 믿음도 갖는다. 이는 인식론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거짓을 극소회하고 참을 극대화하라’는 것을 인식적 평가에서 고려해야 한다.

개별적 믿음에 대한 인식적 목표(참을 추구하고 거짓을 피하라)와 믿음의 집합에 적용되는 인식적 목표(참의 수를 극대화하고 거짓의 수를 극소화하라)가 사실상 모순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노직이 지적한 예를 들 수 있다. 내가 똑똑하지 않고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할만한 이유가 많이 있는데도 내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그로 인해 자신감을 얻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이 결과로 내가 참된 믿음을 많이 얻었고 거짓도니 믿음을 피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경우에 내가 똑똑하다고 믿는 것은 개별적 믿음에 대한 인식적 목표에는 정당하지 않지만 믿음의 집합에 적용되는 인식적 목표에는 정당하다. Nozick(1993): 69 참조.)

그래서 인식적 목표를 진리와의 연관성 하에서 정의하는 것이 단순한 게 아니다. 인식적 목표를 믿음들의 집합에 적용할지 아니면 개별적 믿음에 적용할지 이것에 대한 균형이 필요하다.

5-3. 오류가능성

인식적으로 정당한 믿음이라고 해서 반드시 참일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인식정당성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인식적으로 정당한 믿음이 거짓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이를 ‘인식적으로 정당한 믿음의 오류가능성’이라고 하며, 흔히 줄여서 인식정당성의 오류가능성(Fallibiliry of Epistemic Justification)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지각적 믿음이 명제적 내용을 지닌 전제에서 추론하는 게 아니라 감각적 경험에 직접 의존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 감각적 경험의 존재는 그에 의거한 지각적 믿음이 반드시 참임을 보장하지 못한다.

포퍼가 지적한 것처럼 과학 이론은 본성상 거짓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에 의거한 예측도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 정밀한 실험이라도 탐지할 수 없는 착오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자의 믿음은 거짓이 될 수 있다.

5-4. 근거의 두 유형

인식정당화의 기반이 되는 근거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인식정당성의 오류가능성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고, 인식론에서 널리 받아들이는 견해다. 논증은 연역적 논증과 귀납적 논증으로 나뉜다. 연역적 논증은 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필연적인 참이 되는 논증이고, 귀납적 논증은 전제들의 참이 결론의 참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결론이 참일 개연성을 높이는 논증이다.

추론이 연역적 구조를 가질 때 그 추론의 전제나 근거를 확정적 근거(conclusive reason)라고 하고, 추론이 귀납적 구조를 가질 때 그 근거를 비확정적 근거(inconclusive reason)라고 한다. 연역적 논증에서 결론의 내용은 이미 전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확정적 이유에 의거한 믿음은 인식적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지식을 확장할 수 없다. 비확정적 이유에 의거한 믿음은 전제가 참이라고 해도 거짓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비확정적인 이유를 통해 정당하게 되는 믿음을 인정하는 한, 인식적으로 정당한 믿음이 결과적으로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

5-5. 인식정당성의 복합적 구조

어떤 명제를 받아들일지 결정할 때 그 명제가 참임을 보이는 긍정적인 근거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근거(반대증거counter-evidence)들도 고려한다. 한 믿음의 인식정당성은 긍정적인 근거들의 총량에서 부정적인 근거들의 총량을 산술적으로 뺀 결과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두 근거가 입체적으로 상호작용하여 한 믿음의 인식정당성을 결정한다.

근거가 한 믿음의 정당성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① 논박적 격파자(rebutting defeater): 문제의 믿음을 직접 공격하는 부정적 근거

② 밑둥 자르는 격파자(undercutting defeater): 긍정적 근거와 문제의 믿음 사이의 지지 관계를 손상시키는 격파자

그런데 한 믿음이 추가적인 정보에 격파될 수 있듯이, 이 추가적인 정보도 또 다른 추가적인 정보에 격파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t1 시점에 PG라는 긍정적 근거에 의거해 정당하게 된 믿음 P는, t2 시점에 D라는 격파자에 의해 정당성이 소멸될 수 있지만, t3 시점에 D'라는 격파자가 D를 격파하여 믿음 P는 정당성을 회복할 수 있다.)

한 믿음과 관련하여 근거들이 얽혀 있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조를 탐구하는 분야를 인식 논리epistemic logic라고 하는데, 이는 과학철학의 확증이론과 연관이 있고 명제들 사이의 확률적지지 관계를 다루는 확률론이 중용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식론은 과학철학과 확률론과 무관하지 않다.

6. 전통적 정의의 문제점: 게티어의 문제

전통적 인식론자들이 받아들였던 지식에 대한 정의를 게티어(E.Gettier)가 1963년 발표한 3쪽짜리 논문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 지식인가?」(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이 깨뜨렸다. 게티어는 별다른 논증 없이 두 가지 예를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를 윤색해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 회사에서 영수와 철수 중 한 사람을 부장으로 진급시키기로 했다. 영수는 그 회사 사장이 누군가에게 철수가 진급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는, 철수의 주머니를 뒤져보고 그 속에 동전 5개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믿었다.

A. 철수가 진급할 것이다.

B. 철수의 주머니에는 동전 5개가 있다.

C. 진급할 사람은 그의 주머니에 동전 5개가 있다.

그런데 사실 진급하는 사람은 철수가 아니라 영수였다. 사장은 진급할 사람이 누구인지 비밀로 하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그리고 영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전 5개를 주머니에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인식적으로 정당한 참인 믿음이기는 하지만 지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경우를 반례로 든 것으로, 인식정당성, 참, 믿음이 각각 지식이 필요조건이더라도 지식을 위한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함을 의미한다.

7. 게티어의 문제의 해결책들

게티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 인식론에서 생각한 인식정당성의 조건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인식정당성의 조건이 게티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강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 인식론의 인식정당성은 타당하기 때문에 게티어 문제의 해결책이 지식을 위한 별도의 필요조건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입장 중 어느 게 옳은지 판단하기 쉽지 않고 인식정당성이란 개념 자체가 상당히 애매하기 때문에 편의상 후자의 입장에서 논의를 진행하겠다.

7-1. 거짓 전제의 배제

게티어의 예에서 나타나는 특성은 문제의 믿음이 거짓 전제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몇몇 인식론자들은 추가적인 필요조건을 제시했다:

(E) S의 믿음 P를 정당하게 하는 전제들 내에 어떠한 거짓도 포함되지 않을 때에만, S는 P를 안다.(Clark 1963; Sosa 1964)

이는 게티어가 제시한 예가 왜 지식이 되지 못하는가를 잘 설명하지만, 이 조건은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명백히 지식인 경우조차 지식이 아닌 것으로 분류하게 된다. 다음의 예를 보자.

명수는 다음과 같은 네 전제들을 믿는다.

① 명희는 명수의 사무실에서 일한다.

② 명희는 어제 놀이동산에 놀러갔다.

③ 순희는 명수의 사무실에서 일한다.

④ 순희는 어제 놀이동산에 놀러갔다.

명수는 위의 네 전제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⑤ 사무실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어제 놀이동산에 놀러갔다.

그런데 명희만 어제 놀이동산에 놀러갔고 순희는 명수한테 거짓말을 했다.(Lehrer(1965), Saunders and Champawat(1964) 참조.)

①, ②에 결함이 없고 이를 전제로 한 추론에 결함이 없다면, ③, ④에 상관없이 ⑤는 지식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 믿음을 충분히 정당하게 만드는 전제들이 있다면, 추가적인 전제에 거짓이 포함되어 있어도 이미 확립된 지식의 지위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점이 위 반례의 요점이다. (E)의 기본 틀을 버리지 않으면서 위의 반례를 피하는 방향으로 다음과 같이 수정할 수 있다:

(E*) S의 믿음 P가 거짓 전제에 의존하지 않고서 정당하게 될 수 있는 한에서만, S는 P를 안다.(Harman (1976), 120-124 참조)

(E*)는 (E)에 제기된 반론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면서 게티어의 예에서 그것이 왜 지식이 되지 못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남는다.

철수 앞에 꽃병이 하나 있다. 철수와 꽃병 사이에 레이저 사진이 끼어서 철수의 시야를 가린다. 이 사진에 레이저 광선이 비추면 철수에게는 실제 꽃병처럼 보인다. 철수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며 레이저 광선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할만한 이유가 없다. 이 레이저의 작동에서 주어진 감각경험을 통하여 철수는 자기 앞에 꽃병이 있다고 믿는다.(이 예는 Goldman(1967)(Swain and Pappas(1978), 69에 재수록)에 나타난 것을 수정한 것이다.)

이것이 게티어의 예와 다른 점은, 어떤 다른 믿음을 전제로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각적 믿음은 일정한 감각경험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철수의 믿음을 정당하게 하는 근거는 단순한 감각경험이고 이는 참이나 거짓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며, 철수는 거짓 전제에 의존하지 않았다. 즉, (E*)는 실패한다.

거짓 전제의 배제를 통해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사람들은 단순한 지각적 믿음에도 무의식적인 믿음이 전제로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즉, 무의식중에 “주어진 감각경험은 실제 꽃병에서 주어졌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감각경험과 믿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매개적 믿음이 포함되어 있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인지과학자들은 우리의 인지과정에는 우리의 내성에 파악되지 않는 많은 반응들이 작용하며, 우리의 내성적 판단은 그리 신뢰할만한 것이 못 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의 내성에 파악되지 않는다고 해서 매개적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하먼은 내성의 신뢰성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다음과 같은 이론을 전개했다.

① 믿음 P는 정당하고 참이지만 지식이 아니다.

② 내성적 판단에 따르면, 믿음 P로의 추론은 거짓 전제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③ 한 믿음이 정당하고 참이며 그를 위한 추론이 거짓 전제를 포함하지 않고 오직 그러한 경우에만, 그 믿음은 지식이다.(Harman(1973): 120-172 참조.)

(E*)를 부정하는 철학자들은 ②에 표현된 내성적 믿음을 신뢰하면 ①과 ②로부터 ③이 부정된다고 주장한다. 하먼은 게티어의 논증이 ③의 원리를 뒷받침한다고 해석하고, ③을 우리의 추론이 어떤 전제를 포함하고 있는지 해명하는 방법론적인 원리로 사용한다. 내성은 우리의 추론에 개입하는 많은 암묵적인 전제를 파악하는 방법으로서 무력하기 때문에 내성적 판단에 따라 ③을 평가하는 것은 본말이 바뀐 것이고 오히려 ③을 받아들여 우리의 추론에 어떤 전제가 포함되어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E*)를 부정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은 하먼식으로 논증을 전개한다면 거짓 전제의 배제라는 원리는 반증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7-2. 사실과 믿음 사이의 인과

골드만(A. Goldman)은 한 믿음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참이어야 하며, 그 믿음을 참이게 하는 사실과 적절한 인과적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지식에 대한 인과론이라고 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하먼의 예에서 철수의 믿음과 그 믿음을 참이게 하는 꽃병의 존재라는 사실은 인과적으로 단절되어서 지식이 되지 못한다. 이는 게티어가 제시한 예가 지식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진급할 사람의 주머니에 동전 5개가 있다는 영수의 믿음은 참이지만 영수 자신의 주머니에 동전이 있다는 사실과는 아무런 인과적 관계가 없기 때문에 지식이 되지 못한다.

골드만은 이러한 인과적 틀을 통해 게티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서, 미래의 사건에 대한 지식 등에서 나타나듯 단순히 믿음의 원인이 사실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인과적 분석의 틀에서 포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지식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인과적 연쇄를 사실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인과관계에 제한하지 않고 그 외 여러 유형을 제시했다.

그러나 인과적 연쇄의 틀을 통해 게티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몇 가지 난점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째, 믿음에 도달하는 과정에 논리적 추론이 포함될 경우, 사실과 믿음 사이에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곤란하다. 귀납적 추론은 개별적 사례들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일반적 사실에 대한 지식에 도달한다. 인과론에 따르면 일반적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 사실과 그에 대한 믿음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양자가 인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 귀납에서 일반적 사실에 대한 믿음은 개별적 사례에 대한 믿음들을 원인으로 하고, 이는 다시 개별적 사례들을 원인으로 하여 성립된다. 이때 일반적 사실들과 개별적 사례들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가적으로 필요한데 이러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믿음에 도달하는 과정에 연역적 추론이 포함될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P를 알고 Q를 알 때 이에 근거하여 “P 그리고 Q”를 알 수 있다. 인과론은 사실 P와 사실 Q가 각각 나의 믿음 P와 Q의 원인이며, 이 두 믿음이 나의 믿음 “P 그리고 Q”의 원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문제는 나의 믿음 “P 그리고 Q”와 사실 “P 그리고 Q”가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P 그리고 Q”라는 복합적 사실과 두 개별 사실 P, 사실 Q 사이의 인과관계가 필요한데, 이 인과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둘째, 이는 골드만 자신이 이후에 제시한 예이다.

명희가 운전하다가 길가에 있는 수많은 건축물을 보고 그것이 모두 기와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명희가 지목한 기와집만 실제 기와집이고 나머지는 모두 정교한 가짜 건물이었다.(Goldman (1976), 121-123)

명희는 정당한 근거(선명한 지각적 증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저것은 기와집이다”라는 믿음은 인식적으로 정당하다. 그리고 명희가 보는 건물은 실제 기와집이므로 그 믿음은 참이기도 하다. 명희의 믿음의 원인이고, 그 믿음과 그 믿음을 참이게 하는 사실이 그의 믿음의 원인이다. 그래서 그 믿음은 인식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사실과의 인과관계도 만족시킨다. 하지만 그 믿음은 지식이 되지 못한다.

7-3. 격파 불가능성

앞서 말한 격파자는 긍정적 근거에 의존하여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더 이상 정당하지 못하게 하는 새롭게 얻은 추가적인 정보를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격파자는 다소 다른 경우이다.

나는 아침에 나의 아내가 집에 있는 걸 보았고 외출할 계획이 전혀 없음을 알고 출근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내가 집에 머무르기 때문에 오전 11시에는 집에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의 아내는 나 모르게 오전 10시에 받은 이웃집의 초대전화에 응했다고 하자.(Dancy (1985), 29-30쪽 참조.)

이때 10시에 이웃집에서 초대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내 믿음의 인식정당성을 실제로 격파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내가 내 아내가 집에 있다고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웃집의 전화 초대라는 사실은 나의 믿음의 인식정당성에 대한 현실적 격파자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긍정적 근거가 나의 믿음에 부여하는 인식정당성을 격파할 것이기 때문에 잠재적 격파자다.

몇몇 인식론자들은 한 믿음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잠재적 격자파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지식을 위한 추가적 조건으로 제시했다. 즉, 한 믿음은 인식적으로 정당한 참이면서 그를 위한 잠재적 격파자가 없을 때 지식이 된다. 이 이론은 게티어의 에 뿐만 아니라 지금가지 살펴본 것과 유사한 예들에 적절한 해답을 제시했다.

이 이론의 특징은 전통적 인식론에서 중요하게 간주해온 진리조건을 별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명제 P를 믿는데 이 명제가 거짓이라면 ‘P가 아니다’가 사실이다. ‘P가 아니다’라는 사실은 믿음 P에 대한 잠재적 격파자가 되는데, 내가 그 사실을 믿는다면 내가 P라고 믿는 것이 더 이상 정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잠재적 격파자가 없기 위해서는 그 믿음은 참인 믿음이어야 하는데, 잠재적 격파자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은 그 믿음이 참이라는 조건을 함축하게 된다. 즉, 잠재적 격파자가 없음을 지식의 조건을 내세우는 이론은 그 믿음이 참이어야만 한다는 조건을 별도로 포함할 필요가 없다. 이는 한 믿음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왜 참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8. 게티어 문제의 교훈: 지식과 우연적 참의 배제

게티어의 예는 한 믿음이 지식이 되려면 그 믿음이 참이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참됨이 우연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게티어 논증의 배경은 인식정당성이 우연적 참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티어 문제의 해결책으로 앞에 제시된 시도들도 우연적 참을 배제하려는 시도로 지해석할 수 있다.

(2023.04.20.)

2017/05/13

한국 사회의 인문학 소비와 도교

   
한국에서 인문학이 소비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자기계발과 힐링은 도교적인 전통에 맥이 닿아있는 것 같다. 심오한 무언가를 깨달아서 신비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서사는 자기계발로 이어지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속세의 근심을 벗어던진다는 서사는 힐링으로 이어진다.
   
“한국 대표 인문학자 13인에게 배우는 살아서 신선이 되는 법”이라는 홍보 문구는 한국 사회의 인문학 소비 형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인문학 특강』은 지역 MBC에서 한 인문학 강의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인데, 도대체 어떤 강의를 했길래 살아서 신선이 되는 법은 배운다는 것인가. 연단술이라도 가르치나? 강사 중에 신선이 없을 텐데도 “살아서 신선이 되는 법”을 배운다고 강의를 홍보한다.
  
이런 추세면 ‘19금 인문학’이라고 하면서 도교 방중술을 소개하는 사람도 등장할 법하다.
  
  
  
  
(2017.03.13.)
   

2017/05/12

심리학자 로버트 엡스타인의 박사논문 면제

     

로버트 엡스타인(Robert Epstein)은 10대 후반에 랍비가 되라는 부름을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이스라엘로 떠났다. 거기서 엡스타인은 계시를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6개월 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인류에 의미 있고 장기적인 공헌을 하기로 마음먹은 엡스타인은 하버드대에 진학하여 4년 동안 심리학 논문을 스물한 편 발표했다. 그러자 심리학부 학장은 적절한 시점에 논문을 묶어서 출판하라고 조언하면서 박사논문을 면제해주었다. 엡스타인은 계시를 정말 잘못 해석했던 모양이다.
  
미국 대학이 우수해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건지, 우수한 인재가 미국 대학으로 몰려드니까 미국 대학이 우수해진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미국 대학에서는 학부 다니면서 논문을 스무 편쯤 발표하면 박사 논문을 면제받을 수도 있다.
  
  
* 참고 문헌: 리처드 와이즈먼, 『립잇업』, 박세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3), 98쪽.
  
  
(2017.03.1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