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0.)
2017/02/10
2017/02/09
셰익스피어와 방어회
며칠 전에 방어회를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었다. 내가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처음 먹었다. 먹고 나서,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있다니, 그동안 어머니는 나한테 방어회를 왜 안 사줬을까,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어회를 먹으며 술을 마시고 나서 며칠 동안 술을 안 먹으니 아무래도 술을 먹어야할 것 같았다. 술을 먹어야겠는데 뭐 하고 먹어야 할까. 마침 숙소 근처에 횟집이 있었다. 방어회를 먹기로 했다. 마침 그날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
몇 주 전, 나는 어느 중고서점에서 <시공사 셰익스피어 선집 세트>를 사서 온라인 중고서점에 매물로 올려놓았다.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내가 읽을 생각이었다. 동료 대학원생이 내 상품을 보고 사고 싶어 했다. 동료는 매물로 올린 가격대로 사겠다고 책을 했지만, 아는 사람끼리 값대로 다 받는 것이 좀 그래서 나는 얼마 깎아서 팔았다. 그래도 밑지지 않고 몇 푼 남기기는 했다.
횟집에 가서 방어 반쪽에 채소와 초고추장 추가해서 1만 1천 원 주고 샀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맥주 맛은 잘 모르지만 회에는 독일 맥주보다는 일본 맥주를 마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350ml짜리 기린 맥주 다섯 캔을 1만원에 샀다.
숙소에 와서 혼자서 회에 맥주를 먹었다. 혼자 먹으면 무슨 맛이냐는 사람도 있는데, 좋은 음식은 혼자 먹어도 맛있다. 여럿이서 흥겹게 먹는 맛도 있지만 혼자서 멀거니 앉아 꼭꼭 씹어 먹는 맛도 있다.
가난했던 이덕무는 <한서> 한 질을 이불 삼고 <논어> 한 권을 병풍 삼아 겨울을 났다고 하니 반고와 공자 덕에 겨울을 난 셈이다. 나는 셰익스피어 덕분에 회 한 접시를 먹었다.
(2016.12.09.)
2017/02/08
트럼프 관련 자기계발서가 정말로 나오다
나는 트럼프 관련 자기계발서가 나올 것이라고 지난달에 예측했다. 내 예측이 실현되었다. 『트럼프: 승자의 생각법』이라는 책이 2016년 12월 5일에 출간되었다.
(2016.12.08.)
2017/02/06
성균관대 총동창회보를 보고
총동창회에서 동창회보가 온다. 동창회비 내라고 동창회보가 온다.
동창회보 1면에는 “모교 건학 618주년”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다. 성균관대와 조선시대 성균관 사이에 연속성에 대해서는 형이상학적인 탐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역사가 장구하다고 자랑한다. 그런 글을 보면 내가 쓴 글도 아닌데 괜히 남사스럽다.
조선시대 성균관과 성균관대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하면 조선시대 웬만한 인물들은 죄다 성균관대 출신이 된다. 정도전, 이황, 이이, 정약용, 김정희, 홍대용, 유형원 등이 자랑스러운 학교 선배가 되고, 세종은 대학 이사장이 된다. 학생들 공부 열심히 하고 교수들 연구 열심히 하고 동문들 열심히 산다고만 해도 총동창회보에 쓸 내용은 충분할 것 같은데, 그렇게도 학교에 자랑할 것이 없는지 총동창회보에는 항상 유구한 역사가 장강처럼 흐른다. 그런데 이조차도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동창회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2000년대 모교는 인재창출 요람으로 부상했다. 정홍원・이완구・황교안 국무총리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등장으로 역사 속 인물들의 맥을 잇고 있다.”
유구한 역사까지는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이건 아니다 싶다. 나는 지금까지 총동창회비를 안 냈는데 앞으로도 안 낼 거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도 절대로 총동창회비는 안 낼 거다.
내가 투덜투덜하니까 동료 대학원생이 이렇게 말했다. “〇〇씨, 그러지 마요. 저희 학교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서강대를 졸업했다.
(2016.12.06.)
2017/02/04
논술 캠프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한국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삼국지>를 만든다면
리들리 스콧의 영화 <나폴레옹>은 영화가 전반적으로 재미없다는 것을 다 떠나서 약간 놀라운 게 있는데, 바로 나폴레옹이 영어를 쓴다는 점이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처럼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아닌데, 나폴레옹이 주인공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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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되는 것이다> 짤은 『고우영 십팔사략』 10권 96쪽에 나온다. 후량-후당-후진-후한-후주-송으로 이어지는 5대 10국 시대에서 후한이 망할 때 풍도가 유빈을 죽인 일을 만화로 그린 것이다. 907년 주전충이 당을 멸망시키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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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는 학위를 받으면 학위 논문을 제본해서 주변 사람에게 주는 풍습이 있다. 예전과 달리 오늘날에는 논문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공개되지만 여전히 학위 논문을 제본해서 나누어주는 풍습이 남아있다. 어떤 행동 유형이 관례로 자리 잡으면 그 자체로 관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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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잘 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그에게 “문화 권력”이라는 수식어가 들러붙는다. “권력”이라는 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문화 권력”이라고 불리는 건 그냥 그 사람이 요새 잘 나간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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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는 교회에 다닌다고 한다. 생물학자가 어쩌다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인가? 『다윈 지능』에서 최재천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날 목사님(강원용 목사)은 설명을 마치고 일어서려는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최 교수는 진화론자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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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생들이 교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강사를 ‘강사님’이라고 부르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 부장을 ‘부장님’이라고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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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뿔나다’라는 표현이 있다. (i) 어떤 일에 별 관계도 없는 사람이 주제넘게 불쑥 나서는 행위나 (ii) 하는 일이나 모양이 유별나고 엉뚱한 경우를 가리키는 고유어라고 한다. ‘중뿔’은 가운데에 돋은 뿔이다. 소나 양, 염소 같은 가축은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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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는 정말 재미없는 책이다. 사전과 비슷한 책이라서 재미난 부분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다. 나는 그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칸트 직전까지만 두 번 읽었다. 나는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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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사랑방 욕실 벽에 청개구리가 붙어 있었다. 언제 어떻게 들어왔나 모르겠다. 작년 여름에 창문 틈으로 청개구리가 들어온 적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작년에 들어온 청개구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청개구리가 올해 들어왔다고 해도 이상하다. 내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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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갔던 수컷 고양이가 돌아왔다. 다섯 달만인가 싶다. 암컷 고양이는 주로 집에 있고 동네 마실을 다녀도 곧 집에 돌아오는데, 수컷 고양이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고 특히 발정기가 되면 며칠씩 집에 안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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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서 명령의 뜻을 나타내는 말투로는 해라체와 하라체가 있다. 해라체는 ‘동사 어간+어라/아라’ 형태의 구어체 명령형이고, 하라체는 ‘동사 어간+라/으라’ 형태의 문어체 명령형이다. 대화할 때 상대방에게 어떤 명령의 뜻을 전달할 때는 해라체를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