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박사(진), 석사(진), 나, 이렇게 네 명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박사(진) 형님은 다음 학기에 처음으로 학부 전공수업을 하게 되어 박사 형님한테 수업 노하우를 물어보았다. 박사 형님은 100점 만점에서 출석과 태도 점수를 20-30점 정도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사(진) 형님은 다음 학기 수업에서 출석 점수를 5점으로 해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출석점수 비율이 다른 것은 수업에서 출석이 차지하는 의미가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사 형님은 수업에서 평가해야 할 것은 시험이나 과제 뿐 아니라 태도와 노력도 포함한다고 보지만, 박사(진) 형님은 수업에서 출석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경제학과에서도 출석에 대한 교수의 태도는 둘로 나뉜다. 학기 끝날 때 얼마나 아느냐가 중요하지 수업 출석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교수도 있고, 직장에서도 근무태도를 많이 본다면서 대학 교육이 학업 성취도 외에 다른 것(개인의 성실성 등)도 신경 써야 한다는 교수도 있다. 심지어 한 번도 자기 수업에 나오지 않은 학생에게도 A+를 준 교수도 있다. 그런데 학기 내내 한 번도 출석을 부르지 않았는데 교수는 그 학생이 자기 수업에 안 나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학기가 끝나고 A+를 받은 학생이 교수를 찾아와서 자백했다고 한다. 수업을 한 번도 안 들었는데 A+를 받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용서를 구하러 왔다는 것이다. 수업에서 요구하는 학습량도 많은데 학생은 그것을 어떻게 소화했는가? 학생은 MIT 등의 공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학생의 말에 교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나도 대학 수업에서 출석이 안 중요하다는 입장에 가깝다. 노력이 결과에 반영된다면 결과물 평가는 노력 평가를 포함하니까 노력을 굳이 따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 노력이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 있어 죽겠는 것이라면 더더욱 성적에 반영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데 왜 굳이 성적에까지 반영해야 하는가? 시험만 잘 보고 수업 안 들을 거면 인터넷 강의를 듣지 왜 수업을 듣느냐고 할 수 있겠는데, 그건 교수나 강사가 온라인 수업과 차별화된 오프라인 수업을 제공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지 수업을 듣는 학생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애도 아니고 스무 살 넘은 성인한테 근면성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굳이 학점에 반영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하다. 본인은 남의 결과물을 보고 판단하면서 남들이 본인의 노력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다 어울릴 법한 발상이다. 우리는 치킨이 맛있는지를 보고 치킨집에 가지 사장의 노력을 보고 치킨집에 가지 않는다.
철학과 수업 중에서도 <기호논리학> 같은 과목은 출석과 학점 간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박사 형님이 출석 점수 비중을 높인 것은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일부러 그러한 상관관계를 만든 것이다. 아마 내가 <기호논리학> 수업을 하면 첫 시간에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나오기 싫으면 안 나와도 됩니다. 그런데 결과가 안 좋지만 나는 노력했다면서 좋은 점수 달라고 떼쓰는 건 어른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결과가 꼭 좋은 건 아니에요. 세상은 원래 그렇습니다. 어른이 되었으면 동화는 그만 읽어야죠.”
나는 이런 식의 태도가 학생들의 인성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그런데 석사(진)은 나보고 재수 없다고 했다.
(201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