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4

출석에 대한 두 가지 의견



박사, 박사(진), 석사(진), 나, 이렇게 네 명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박사(진) 형님은 다음 학기에 처음으로 학부 전공수업을 하게 되어 박사 형님한테 수업 노하우를 물어보았다. 박사 형님은 100점 만점에서 출석과 태도 점수를 20-30점 정도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사(진) 형님은 다음 학기 수업에서 출석 점수를 5점으로 해야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출석점수 비율이 다른 것은 수업에서 출석이 차지하는 의미가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사 형님은 수업에서 평가해야 할 것은 시험이나 과제 뿐 아니라 태도와 노력도 포함한다고 보지만, 박사(진) 형님은 수업에서 출석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경제학과에서도 출석에 대한 교수의 태도는 둘로 나뉜다. 학기 끝날 때 얼마나 아느냐가 중요하지 수업 출석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교수도 있고, 직장에서도 근무태도를 많이 본다면서 대학 교육이 학업 성취도 외에 다른 것(개인의 성실성 등)도 신경 써야 한다는 교수도 있다. 심지어 한 번도 자기 수업에 나오지 않은 학생에게도 A+를 준 교수도 있다. 그런데 학기 내내 한 번도 출석을 부르지 않았는데 교수는 그 학생이 자기 수업에 안 나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학기가 끝나고 A+를 받은 학생이 교수를 찾아와서 자백했다고 한다. 수업을 한 번도 안 들었는데 A+를 받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용서를 구하러 왔다는 것이다. 수업에서 요구하는 학습량도 많은데 학생은 그것을 어떻게 소화했는가? 학생은 MIT 등의 공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학생의 말에 교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나도 대학 수업에서 출석이 안 중요하다는 입장에 가깝다. 노력이 결과에 반영된다면 결과물 평가는 노력 평가를 포함하니까 노력을 굳이 따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 노력이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가치 있어 죽겠는 것이라면 더더욱 성적에 반영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데 왜 굳이 성적에까지 반영해야 하는가? 시험만 잘 보고 수업 안 들을 거면 인터넷 강의를 듣지 왜 수업을 듣느냐고 할 수 있겠는데, 그건 교수나 강사가 온라인 수업과 차별화된 오프라인 수업을 제공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지 수업을 듣는 학생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애도 아니고 스무 살 넘은 성인한테 근면성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굳이 학점에 반영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하다. 본인은 남의 결과물을 보고 판단하면서 남들이 본인의 노력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다 어울릴 법한 발상이다. 우리는 치킨이 맛있는지를 보고 치킨집에 가지 사장의 노력을 보고 치킨집에 가지 않는다.

철학과 수업 중에서도 <기호논리학> 같은 과목은 출석과 학점 간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박사 형님이 출석 점수 비중을 높인 것은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일부러 그러한 상관관계를 만든 것이다. 아마 내가 <기호논리학> 수업을 하면 첫 시간에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나오기 싫으면 안 나와도 됩니다. 그런데 결과가 안 좋지만 나는 노력했다면서 좋은 점수 달라고 떼쓰는 건 어른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노력한다고 결과가 꼭 좋은 건 아니에요. 세상은 원래 그렇습니다. 어른이 되었으면 동화는 그만 읽어야죠.”

나는 이런 식의 태도가 학생들의 인성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그런데 석사(진)은 나보고 재수 없다고 했다.

(2016.08.24.)


2016/10/22

철학 교수의 주례사



같은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동료 대학원생 두 명이 부부가 되었다. 두 명 다 지도교수가 같아서 두 사람의 지도교수님이 주례를 맡으셨다.

 

주례사는 연구자 부부가 겪는 어려움에 관한 내용이었다. 철학은 근본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 철학을 한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좋은 일은 이루어지기 어렵고 난관 또한 많으니 두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잘 해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저출산 시대에 애 낳는 게 애국이라는 저질 주례사가 횡행하는 시대에 보기 드문, 훌륭한 주례사였다. 결혼식 전날, 선생님은 “누가 결혼식에서 주례사를 듣습니까”라고 하셨지만 결혼식 뒤풀이의 화제거리 중 하나는 주례사였다. 적어도 대학원생들은 그랬다.


주례사 내용 중에는 <공무도하가>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도 있었다. 선생님은 백수광부가 강을 건너려는 행위를 현실 세계에서 이상적인 세계로 나아가려는 노력 또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로, 백수광부의 아내가 백수광부를 말리는 행위를 그러한 노력이나 탐구의 좌절로 해석하셨다. <공무도하가>를 배울 때 나는 ‘고조선 때도 술이 문제였구나,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겠다’고만 생각했는데.


하여간 두 사람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2016.08.21.)


2016/10/17

미루는 습관



동료 대학원생이 미루는 습관을 고치겠다면서 『심리학, 미루는 습관을 바꾸다』, 『미루는 습관 버리기』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그런데 빌려놓기만 하고 읽는 것을 미루고 있어서 미루는 습관을 못 고치고 있다.

나는 기억을 잘 못해서 기억술 관련 서적을 몇 권 샀다. 그런데 그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해서 못 읽고 있다. 나는 여전히 기억력이 안 좋다.

(2016.08.17.)


2016/10/16

장거리 연애가 힘든 이유



장거리 연애는 힘들다고 한다. 내가 본 사람 중에 장거리 연애가 지속되어 결혼까지 이어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 군대에 있을 때도 대대에서 한 명 빼고는 대부분 군 복무 중에 헤어졌고 그 한 명도 제대하고 헤어졌다.

설화에 등장하는 장거리 연애의 대표적인 사례는 ‘견우직녀 설화’이다. 견우와 직녀는 1년에 한 번만 만나지만 그들 사이는 계속 유지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그들은 왜 변함없이 애틋할까. 견우 옆에는 소만 있고, 직녀 옆에는 베틀만 있다. 그들에게는 대안이 없다.

설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장거리 연애의 사례는 ‘망부석 설화’이다. 망부석 설화에서 남편은 죽고 아내는 돌이 된다. 아내가 돌이 되지 않았다면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현실 세계는 설화의 세계와 다르다. 장거리 연애를 하는 사람 주변에는 대안들이 돌아다닌다. 또한 사람은 돌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장거리 연애는 힘들다고 한다.

(2016.08.16.)


2016/10/14

고양이와 통나무



날씨가 너무 더우니 고양이들도 밖에 돌아다니지 않는다. 고양이들은 현관 앞 시멘트 바닥에 살을 대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기운을 차리면 일어나서 나무 바닥을 긁는다. 작년 여름 한창 더울 때도 고양이들은 뒤뜰에 가서 감나무 줄기를 긁었는데 올 여름은 마당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만큼 더우니까 현관문 앞에서 나무 바닥을 긁는다.





고양이들이 나무 바닥을 긁으면 나무 바닥의 수명이 줄어든다. 고양이 입장을 상상해 봐도 나무 바닥을 긁는 건 나무줄기를 긁는 것보다 긁는 맛이 덜할 것 같다. 나는 고양이들 긁으라고 창고에서 통나무 한 덩이를 꺼냈다.

창고에서 꺼낸 통나무는 몇 년 전 감나무를 베었을 때 남겨둔 것이다. 나중에 조각을 배울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창고에 두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나보고 또 창고에 이상한 거 넣는다고 미친놈이라고 욕했는데 그래도 나는 우기고 우겨서 겨우 창고에 통나무를 집어넣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앞으로도 내가 조각을 배울 것 같지는 않았다. 고양이들이 현관문 근처에서 발톱으로 긁으라고 통나무를 꺼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욕했다. 현관문 근처에 통나무가 있어서 치우려고 했는데 도대체 무거워서 들 수가 없다면서 나보고 당장 치우라고 소리쳤다. 통나무를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현관문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옮겼다. 그러자 고양이들은 통나무는 본 체도 안 하고 다시 나무 바닥을 긁었다. 통나무 옮기느라 힘만 들고 미친놈이라고 욕만 먹었다.

(2016.08.14.)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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