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문학으로 불리는 것은 (i) 전공으로서의 인문학 (ii) 학부 교양과목 수준의 교양 (iii) 자기계발이나 힐링, 이렇게 세 가지 정도다. 언론에 나오는 인문학에 관한 논의는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인문학-까나 인문학-빠나 언론에 나오는 사람들은 죄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섞어 쓴다.
<동아일보>에 실린 “청춘이여, 인문학 힐링 전도사에게 속지 마라”(김인규 교수)라는 칼럼과 이를 반박한 “청춘이여, 미래는 인문학에 있다”(김희원)라는 글은 둘 다 저질이지만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일종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 언론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논의하는 수준은 대체로 두 글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김인규 교수의 글은, 인문학(전공)을 배운 학생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은 인문학(힐링)이 용 잡는 소리나 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니 대학에서 인문학(전공) 전공자 정원을 줄이고 인문학 교양수업(교양)을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 김희원의 반론은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로 잡스와 주커버그를 들며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들먹인다. 그 놈의 잡스 타령, 주커버그 타령, 참 지겹다. 반론자는 인문학이 사치재라는 김인규 교수의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아마도 사치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인생의 의미 같은 소리나 하는데 무슨 수로 제대로 된 비판을 하겠는가?
인문학 위기의 핵심은 대학 구조조정이고, 대학 구조조정은 전공 인문학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구조조정에 찬성하는 입장은 명확하다. 대학의 문/사/철이 생산 활동에 도움이 안 되니 정리하자는 것이다. 이 입장에 동의하든 않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반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입장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인문학의 가치가 어떠니 자유가 어떠니 하는 예쁘고 뻔하고 내용 없는 소리나 하거나, 인문학을 배우면 통찰력이 생기고 창의성이 생긴다는 유사-의학 같은 소리나 하거나, 인문학을 하면 인성이 함양된다는 주자학 같은 소리나 하거나, 문화 컨텐츠로 돈 벌자는 저열한 소리나 하거나, 아니면 그냥 대책 없이 멍청하다.
흔히들 하는 착각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교육의 목적과 21세기 대학교육의 목적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은 오늘날 서울 ‘시민’의 시민이 아니라 노예를 부리는 지배계급이었다. 밥 먹고 사는 일은 노예들이 해결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리스 시민들의 교육은 밥 먹고 사는 일과 무관한 것일 수 있었다. 이는 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조선에서 공자왈 맹자왈 하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밥 벌어먹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선비 코스프레는 유가 전통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일례로, 퇴계 이황은 젊어서 가난했지만 결혼을 잘하는 바람에 노비 3천 명을 거느렸다. 근세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 당시 대학교육은 사회 상류층을 위한 교육이었다. 대학이 생산 활동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경영학이 20세기에야 등장한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대학 교육을 고대 그리스나 근세 유럽의 대학 교육과 비교한다는 것부터 비교 대상을 잘못 고른 것이다. 부모가 노예를 부리거나 봉건 영주거나 부르주아인 사람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업하든 사업하든 프리랜서를 하든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다들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은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유럽의 두 배이고 일본의 1.5배인데, 이건 한국의 산업구조가 유럽이나 일본보다 고도화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을 한국에서는 대학을 나와도 못한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만 해도 상당할 것이고, 이것이 한국 대학의 물적 기반을 위협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대학 구조조정이다.
대학 구조조정의 진짜 문제는, 자본의 논리가 개입한다는 게 아니라 자본의 논리조차 부합하지 않는 너무 엉성한 구조조정이라는 데 있다.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드는 게 IBM과 GE의 구조조정이다. IBM은 회사가 어려워지자 자발적인 퇴직자를 모집했다. 그러자 나가야 할 사람은 남고 남아야 할 사람이 나갔다. IBM은 이런 짓을 7년이나 계속했고 7년 동안 역-선택이 일어났다. GE은 필요한 인력만 남기고 화끈하게 구조조정을 한 뒤 회사를 안정시켰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대학 구조조정은 구조조정 중 최악의 형태다. 정부는 부실 대학들 보고 시간을 준 뒤 알아서 대책을 마련하라고 한다. 그러면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 인문학을 포함한 기초 학문을 줄이거나 없앤다. 정리될 대학이 이런 식으로 구조조정해서 퇴출을 피하면 그 대학보다 사정이 조금 나았던 대학이 퇴출될 것이다. 그러니 연쇄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결국 서울 시내에 있는 비교적 멀쩡한 대학들까지 인문학을 정리하게 된다.
만일 누군가 책임을 지고 화끈하게 대학 구조조정을 했다면 이런 연쇄적인 구조조정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과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대학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절반이든 3분의 1이든 화끈하게 정리했어야 했다. 찔끔찔끔 구조조정해서 기초 학문이 다 죽는 것보다는 대학 절반만 없애고 기초 학문이 다 사는 편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런 악당짓을 해서 두고두고 악명을 남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정치인이든 관료든 자신에게 손해되는 짓을 할 사람은 없다. 따지고 보면 그런 짓을 할 강력한 권한이 있는 사람도 아마도 없을 것이다.
대학 교수나 언론인이 대놓고 이런 말을 하면 나쁜 놈이 되니까 사석에서만 하지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상한 놈들은 항상 목소리가 크다. 그렇게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 링크(1): [동아일보] 청춘이여, 인문학 힐링 전도사에게 속지 마라 / 김인규
(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50228/69852847/1 )
* 링크(2): [동아일보] 청춘이여, 미래는 인문학에 있다 / 김희원
(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50303/69911821/1 )
* 링크(3): [성균관대 문과대학] 식민화하는 대학, 대항하는 인문학
( www.skku.edu/new_home/campus/skk_comm/notice_view.jsp?boardNum=28212 )
(2015.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