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초 민주당 김준혁 의원이 주역을 풀어보고 탄핵 선고일이 4월 4일이 될 것임을 예언했다는 짤막한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나는 가슴이 약간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그런데 기사를 찾아서 읽어보니 영 실망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신비롭고 오묘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날짜까지 정확히 맞췄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준혁 의원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 전에는 정세 분석으로 3월 말 4월 초를 봤다. 주역에는 8괘가 있다. 하늘・땅・바람・연못・우레・물・산이다. 괘를 딱 뽑았는데 위에도 우레(모양), 아래도 우레(모양)인 ‘중뢰진괘’가 나온 거다. 얼른 ‘대산 주역 강의’(주역해설서)를 꺼내서 읽고, 또 제가 평소 존경하던 스승님께 연락해 자문했더니 ‘야 중뢰진이 뭐냐. 위도 4, 아래도 4 아니야’ 하시더라고요. 아, 4월 4일이구나.”
8괘에는 각 괘에 대응하는 수와 뜻이 있다. 8괘에서 첫 번째 괘는 건(乾, ☰)괘이고 뜻은 하늘(天)이다. 이를 짧게 줄여서 “일건천”(一乾天)이라고 한다. 두 번째 괘는 태(兌, ☱)괘이고 뜻은 연못(澤)이다. 같은 방식으로 “이태택”(二兌澤)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8괘를 일건천(一乾天), 이태택(二兌澤), 삼리화(三離火), 사진뢰(四震雷), 오손풍(五巽風), 육감수(六坎水), 칠간산(七艮山), 팔곤지(八坤地)라고 부른다.
64괘는 8괘 두 괘로 구성된다. 위에 있는 8괘를 “상괘”라고 하고, 아래에 있는 8괘를 “하괘”라고 한다. 64괘는 ‘상괘의 뜻+하괘의 뜻+전체 괘의 이름’으로 부른다. 가령, 64괘 중 열아홉 번째가 림(臨, ䷒)괘인데, 상괘인 곤괘(☷)의 뜻이 지(地)이고, 하괘인 태괘(☱)의 뜻이 택(澤)이라서 지택림(地澤臨)이라고 부른다. 한때 전 국민이 알게 된 천화동인과 화천대유는 64괘 중 각각 열세 번째 괘와 열네 번째 괘인데,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천화동인(天火同人)
상괘(☰)의 뜻이 천(天), 하괘(☲)의 뜻이 화(火), 괘의 이름이 동인(同人)
䷍ 화천대유(火天大有)
상괘(☲)의 뜻이 화(火), 하괘(☰)의 뜻이 천(天), 괘의 이름이 대유(大有)
상괘와 하괘가 같으면 같은 괘의 뜻을 두 번 부르지 않고 중(重)을 붙여 한 번만 말한다. 64괘 중 첫 번째 괘인 건(乾, ䷀)괘는 상괘(☰)와 하괘(☰)가 같다. 이를 ‘천천건’(天天乾)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천건’(重天乾)이라고 부른다. 김준혁 의원이 뽑았다는 ‘중뢰진’(重雷震)은 상괘와 하괘가 모두 8괘 중 네 번째 괘인 진(震, ☳)괘로 이루어진 괘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김준혁 의원은 64괘 중 쉰한 번째 괘인 중뢰진(重雷震)을 뽑아놓고 무슨 뜻인지 고민하다가, 상괘도 4이고 하괘도 4니까 4월 4일이 탄핵 선고일이라고 동료 의원들 앞에서 예언한 것이다. 이는 주사위 두 번 굴려서 4가 두 번 나온 것을 보고 나서 탄핵 선고일이 4월 4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만 주역이지 사실상 주사위 던지기를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김준혁 의원은 기자 앞에서 “주역은 철학이자 학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주역이 철학이자 학문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주역과 관련된 공자 이후의 학문적 작업 때문이다. 물론, 주역에도 수비학적인 측면이 있다. 변화에는 일정한 원리가 있고, 그 원리를 수리화할 수 있고, 따라서 그 수를 앎으로써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수와 관련된 일종의 주술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고대인들이 4가 두 번 나왔으니 4월 4일이라는 식으로 막 나가지는 않았다. 고대인들이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무속이 별게 아니다. “귀신을 섬겨 점을 보거나 굿을 하여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풍속”이면 무속이다. 가령, 기독교인이 성서를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은 무속이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나 성서를 무작위로 펴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하루의 길흉화복을 예고한다고 믿는다면 이는 일종의 무속적 행동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서가 기독교의 경전이냐가 아니라 행위자가 성서를 무속적으로 사용했느냐 여부이다. 주역이 철학이자 학문인 것과 별개로 김준혁 의원은 주역을 무속적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김준혁 의원의 진짜 문제는 무속이 아니다.
“5대째 천주교 집안이다. 다만 사학과 출신에 정조 연구자이지 않나. 정조가 주역의 대가다. 정조를 공부하면서 정조가 공부한 주역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다. 또 사서삼경의 마지막 단계가 역경(주역)이다. 주역 공부를 오래 했고, 너무 나라가 위급하다고 느껴질 때 주역을 보곤 한다.”
주역을 본 것이 무속 논란으로 번질 것을 우려했다면 “주사위 굴리기 정도로 해본 것이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런데 주사위 굴리기 수준으로 주역을 봐놓고는 김준혁 의원 자신은 “정조 연구자”이고, “정조가 주역의 대가”라서 “주역 공부를 오래 했”고 “사서삼경의 마지막 단계가 역경(주역)”이라고 말했다. 이 사람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주역 공부를 오래 했다면서 왜 괘사나 효사에 관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을까? 주역을 제대로 공부한 것도 아니면서 남들 앞에서 괜히 허세나 부리려고 주역을 팔아먹고 다닌 것은 아닐까?
김준혁 의원이 주역을 언급한 다른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올해 2월 <오마이TV>에서 방송한 영상에서도 김준혁 의원은 주역을 언급했다. 이번에는 더 실망스러웠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을 여섯 번, ‘이재명’을 열여덟 번 언급한 것을 두고 김준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재명 언급을) 열여덟 번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끝났다(고 생각했다), 왜 끝났냐? 18이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느냐? ‘살이 썩어서 곪아 썩어지고 구더기가 가득하다’라는 의미가 담겨진 숫자예요. 주역에 64괘 중에 열여덟 번째 괘가 ‘산풍고’(山風蠱)라고 아주 썩어 문드러져서 아주 안 좋은 거야. 그거 나오면 아주 끝나는 건데, 그래서 열여덟 번 (언급)했다길래 ‘스스로가 망할 것을 자기 입으로 예언했구나’ 하는 생각을 아까 혼자 해봤죠.”(18-19분)
이재명을 열여덟 번 언급했다는 것에서 주역의 64괘 중 열여덟 번째 괘로 이어지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데, 산풍고괘의 아주 간략한 뜻만 말하고는 그것을 국민의힘의 망조와 억지로 연결한다. 주역을 오래 공부했다는 사람이 주역을 이렇게 아무 데나 막 갖다 붙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기 이야기 듣는 사람들이 잠깐 기분 좋으라고 자기가 오랫동안 공부한 것을 아무 데나 막 갖다 붙이는 사람을 지적으로 신뢰하기는 힘들다. 주역을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오래 공부했다면서 뻥 치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자기 전공과 관련하여 어떤 것을 오래 공부했다고 말하는 것조차도 믿음이 안 가는 판인데, 국회의원으로서 자기 전공과 아무 관련 없는 분야에 대해 아무 말이나 하고 다닌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링크(1): [중앙일보] 3월초에 “선고 4월4일”…딱 맞춘 친명 김준혁 “주역 풀어봤다”
( www.joongang.co.kr/article/25328120 )
* 링크(2): [오마이TV] 김준혁 “윤석열 권성동은 선조?” 주역(周易) 좀 아는 김준혁, ‘18’ 숫자에 “끝났네, 끝났어!” 국힘 이재명에 쫄았다 / 곽수산의 정치라이브
( www.youtube.com/watch?v=II1dNjYvC0A )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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