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프로젝트의 연구원으로 있는 대학원 선배가 최근 들어 자신이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업인데 자기가 연구자인지, 세금 도둑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고 했다. 쓸데없는 고민이다. 연구가 잘 되면 잘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무슨 놈의 정체성의 고민이란 말인가?
쥐뿔 연구도 아닌 것을 가지고 대단한 연구라도 하는 것처럼 심각하게 굴고 자빠진 놈들도 널렸고, 그딴 게 사회적인 어떠한 함축을 지닌다면서 마치 자기가 사회운동가라도 되는 듯 더럽게 뻐기는 놈들도 숱한데, 그런 놈들은 나랏돈으로 무슨 센터도 만들고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홍보도 하고 인류 문명의 미래를 자기네가 짊어진 것처럼 힘든 척 쇼하고 있는데, 나의 대학원 선배는 몇 푼 받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연구자냐 세금 도둑이냐 하면서 찌질하게 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그래서 큰일을 하겠나? 연구비를 더 받아내서 나처럼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 밥도 더 비싼 것을 더 자주 많이 사주어야. 그래서 나는 궁상맞은 소리나 하는 선배한테 이렇게 말했다. “선배님, 이왕이면 의적이라는 멋진 단어를 쓰십시오!” 의적이라는 말을 들은 대학원 선배는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대학원 선배는 자기가 아는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을 모아 일종의 연구 모임 같은 것을 만들고 프로젝트 예산을 지원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연구 모임 이름으로 ‘활빈당’을 제안했다. 나라의 곳간을 털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모임이라는 것이다. 연구 모임 참여 제안을 받은 다른 대학원생이 물었다. “그래서 누구를 구제한다는 거야?” 나는 답했다. “저요.”
대학원 선배는 활빈당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최근에 선배는 다른 대학원생들에게 연구 모임 참여를 제안하며 “활빈당에 참여하라”고 하고 있다. 조만간에 선배를 두령으로 추대해야겠다.
(202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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