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1

토론 수업의 윤리 교육적 효과에 대한 의문



교수자의 개입 없는 자연스러운 토론을 통해 학생들의 윤리적인 의식을 고양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다. 그런 망상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는 모양인데, 본인이 몸소 그런 체험을 하고 나서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그러한 체험을 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대부분 망상은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은 <철학 입문> 같은 수업에서 들었던 소크라테스 식 산파술을 떠올리며 토론 수업을 구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주인공이 소크라테스니까 가능한 것이며, 마치 중국 무협영화 본 사람이 ‘영화 <엽문3>에서는 견자단이 영춘권으로 타이슨과 대등하게 싸우던데...’ 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플라톤의 『국가』 1권만 읽어도 그런 게 왜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논의할 때 트라시마코스가 난입해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물론,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지 소크라테스의 반박을 읽어보지 말고 생각해 보자. 단시간에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직관적이며 소크라테스의 반박은 직관적이지 않다. 현실의 토론 수업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트라시마코스가 이긴다는 말이다.

실제로 어느 대학교에서는 (논리력 향상이나 토론 예절 습득 같은 것이 아닌) 인성 함양을 목표로 하는 학부생 대상 토론대회를 얼었다고 한다. 토론대회의 개최 목적이 학부생들의 인성 함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기획 단계에서 높으신 분이 토론을 통한 인성 함양을 구상했다더라는 말을 건너 건너로 들었다. 그렇게 정한 토론 주제는 “올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였고 그딴 거 없다고 주장한 팀이 대상을 받았다. 트라시마코스가 이긴 것이다.

“올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처럼 토론 주제가 아예 추상적인 것이어서 현실적인 영향력이 거의 없는 것이라고 하면 그나마 괜찮을 수도 있다. 실제 생활과 관련된 구체적이면서 민감한 주제이고 동시에 반동적인 입장이 변론하기도 유리한 주제를 토론 주제로 골라놓고 별다른 준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학생들에게 토론을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학생들보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잘못을 저지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왜 반동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들에게 승리의 경험까지 제공하려고 하는가?

교수자의 개입 없는 자연스러운 토론 수업으로 학생들의 윤리적인 의식을 고양할 수 있다는 망상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에 대한 반응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외부의 이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지만 내부에서 어떤 물질이 생성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외부에서 어떤 생각이 유입되면 그에 대해 반발하게 되지만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지식에서 스스로 유도하여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그러한 생각에 저항감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암세포든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되는 이상 단백질)이든 우리 몸 내부에서 형성되듯이 반동적인 생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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