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을 - Happy (Prod. Hedyy)
( www.youtube.com/watch?v=3ThmWULbffE )
(2024.06.04.)
[ Jaegwon Kim (2011), Philosophy of Mind, 3rd Edition (Routledge), pp. 129-.
김재권, 「제5장. 계산 기계로서의 마음: 기계 기능주의」, 『심리철학』, 권홍우・원치욱・이선형 옮김 (필로소픽, 2023), 209-쪽. ]
5.1 다수실현 가능성과 마음에 대한 기능성 이해
(Multiple Realizability and the Functional Conception of Mind)
5.2 기능적 속성과 기능적 속성의 실현: 정의
(Functional Properties and Their Realizers: Definitions)
5.3 기능주의와 행동주의
(Functionalism and Behaviorism)
5.4 튜링 기계 (Turing Machines)
5.5 튜링 기계의 물리적 실현자
(Physical Realizers of Turing Machines)
5.6 기계 기능주의: 동기와 주장
(Machine Functionalism: Motivations and Claims)
5.7 기능주의: 추가 쟁점들
(Machine Functionalism: Further Issues)
5.8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튜링 테스트
(Can Machines Think? The Turing Test)
5.9 계산주의와 “중국어 방”
(Computationalism and the “Chinese Room”)
(2024.10.06.)
망한 논문을 읽다가, 망한 논문 유형을 정리하는 것도 대학원 교육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 작동법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보통은 웬만한 기술을 가르칠 때는 정석적인 방법과 하면 안 되는 방법을 같이 가르치는데, 철학에서 그런 것을 따로 가르친다는 이야기는 거의 못 들어본 것 같다. 기초 논리학 같은 데서 가르치는 비-형식적 오류 같은 게 아닌 이상, 망한 논문 안 쓰는 법 같은 것은 따로 안 가르쳐주는 것 같다.
내가 망한 논문에 관한 유형 정리도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망한 논문을 읽어봐야 얻을 것이 없으니 고전 반열에 든 논문 위주로 읽고 그러한 논문에 근접한 논문을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낫다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고전 반열에 든 논문을 아무리 읽어봐야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쓰는 논문은 고전 반열 근처도 못 간다. 대학원생이 도태되지 않고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전 반열에 든 논문에 근접한 논문을 쓰느냐 만큼이나 얼마나 망한 논문을 적게 쓸 것인가도 중요할 것이다.
우선, 고전 반열에 든 논문, 망한 논문, 망하지는 않은 논문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고전 반열에 든 논문은 다음 세대 또는 그 이후에도 읽힐 가능성이 높은 논문이다. 망한 논문은 학술지에 실렸다고 해도 해당 저자의 논문 실적으로 인정된다는 것 이외에 어떤 사회적 효용이 없는 논문을 가리킨다. 망하지는 않은 논문은 고전 반열까지는 아니지만 일정 기간 정도는 학문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논문이다. 새로운 내용이 없더라도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잘 정리해도 되고,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다른 연구자들이 놓치는 부분을 짚어줘도 된다. 다음 세대는 그 논문이 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당대 연구자들에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망한 논문이란, 문제의식은 좋았지만 뒷심이 부족해서 유효한 비판점까지는 끌어내지 못한 논문 같은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 논문이다. 잘 될 수도 있었는데 망한 게 아니라 애초부터 망할 예정이었던 기획이 실현된 논문이다.
가장 일반적인 망한 유형 중 하나는, 어떤 학자의 관점으로 그 학자가 다루지 않은 분야를 본다고만 하는 식의 논문일 것이다. 어떤 학자의 연구에서 다른 사람들이 간과한 부분을 추출하거나 변형하여 그것을 다른 분야에 적용했을 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다면 성공한 논문이 될 수도 있겠으나, 망한 논문에서는 그런 것 없이 덮어놓고 그냥 그 학자의 눈으로 다른 분야를 보겠다고 하고, 정말 그렇게 보기만 하고 논문이 끝난다. 이런 게 극단적으로 진행되면 퇴계의 시선으로 본 코로나19 같은 식의 논문이 된다. 퇴계가 살아있었어도 코로나19를 그런 식으로 안 보았을 것인데 21세기를 사는 사람이 굳이 퇴계의 눈으로 코로나19를 보겠다고 하니 애초부터 망하기로 예정되었던 논문인 것이다.
어떤 학자의 관점으로 어떤 사안을 본다고 할 때, 그 학자가 했던 연구의 생명력이 시들시들해도 논문이 망하기 쉽고 연구의 생명력이 팔팔해도 논문이 망하기 쉽다. 연구의 생명력이 시들시들하다면 시들시들한 것으로 보아봐야 대부분의 경우 쓸모없는 소리만 하게 되니 망하게 되고, 생명력이 팔팔하다면 남들도 다 아는 내용일 테니 잘 해봐야 논문의 필자도 그 연구를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 망하게 된다. 생명력이 시들시들해 보이는 연구에서 생명력이 남은 부분을 잘 추출해서 그게 먹힐 만 하지만 아직 남들이 적용 안 한 분야에 접목하는 경우에만 논문이 안 망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어떻게 성공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어떻게 망하는지는 비교적 확실한 것 같다. 망하는 방법을 정리한다면 망하는 길에 들어선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들이 벗어나게 한다면 그들의 생산성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2024.03.29.)
연동이가 약간 이상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만 보면 들러붙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본숭만숭하고 사람이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사료도 잘 안 먹는다.
며칠 전에는 내가 학교 가느라 집을 비운 동안 하루 종일 연동이가 안 보여서 어머니가 걱정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사람을 따라다니며 일도 못 하게 귀찮게 굴어야 할 연동이가 보이지도 않으니 걱정했던 것이다. 연동이가 집을 나갔는지, 어디 구덩이 같은 데 가서 빠져 죽지나 않았는지, 불러도 대답도 안 하니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고 한다.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서 연동이가 하루 종일 안 보였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불안했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정말로 연동이가 없었다. 큰 소리로 연동이를 불렀다. 그러자 현관문 앞 고양이집에서 연동이가 뽀시락 뽀시락 하면서 기어 나왔다. 그걸 보고 어머니가 화를 냈다. 어머니가 그렇게 연동이를 부르고 찾아도 한 번 울지도 않더니 내 목소리를 듣고 고양이집에서 기어 나오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동이가 봄을 타는 것인가, 벌써 사춘기가 온 것인가, 아니면 수컷 고양이 한 마리만 키우니까 같이 같이 놀 고양이도 없고 외롭고 쓸쓸해서 그런 것인가? 특별히 섭섭할 일도 없었던 것 같은데, 연동이는 오늘도 사람을 봐도 본숭만숭하고 혼자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2024.03.27.)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