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서 어떤 여자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여자는 키가 나와 비슷하고 말랐으며 화장기도 거의 없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보니, 그 여자의 복숭아뼈 옆에 엄지손톱만한 문신이 있었다. 반핵 표시? 보통은 글씨나 그림을 문신으로 새겨 넣는데, 그 여자의 문신은 반핵 표시였다. 문신으로 반핵 표시를 왜?
순간, 그 여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가? 내가 아는 활동가 중에 문신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반핵 문신을 새겨넣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인 것인가? 환경단체 회원인가, 채식주의자인가, 무슨 전공인가, 학부 때 무슨 활동을 했나? 아, 궁금하다.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을 걸면 첫 마디를 뭐라고 꺼내야 하나? 첫 마디를 문신 이야기로 꺼내면 나를 젊은 꼰대로 오인하고 도망가지 않을까? 그렇다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면 개수작 부리는 놈으로 알 텐데.
고개를 다시 들어 그 여자를 보았는데,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여자가 내렸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닫힘 버튼을 눌렀다.
(2013.10.27.)
댓글 없음:
댓글 쓰기